은행
횡재세 입법 논의 수차례 불발…‘상생금융기여금’부터 교육세까지
- [횡재세 논란]②
외부 요인으로 기업이 큰돈 벌어 “초과이익 사회와 나눠야”
“초과이익 기준 모호, 금융사에만 부담 주면 형평성 논란 우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가 교육세법 개정을 예고하면서 ‘횡재세’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지난 8월 1일 정부는 금융사 수익금액 1조원 초과분에 적용하는 교육세율을 현행 0.5%에서 1.0%로 상향하는 교육세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횡재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은행권의 ‘이자놀이’ 비판이 나온 직후 나온 증세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왜 ‘횡재세’ 대신 교육세율 인상을 통해 증세에 나선 것일까. 횡재세 논의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2년 금리 급등으로 은행들이 최고 실적을 올리고 고유가에 정유사 수익이 급증하자 정치권에서는 “초과이익을 사회와 나눠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이른바 횡재세 논의의 시작이었다.
2022년 상반기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GS칼텍스·현대오일뱅크)는 1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 정유사들은 큰 손실을 냈는데,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정제마진이 확대되면서 기록할 만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국제 원유 가격 변동이라는 외부 요인 덕에 얻은 일시적 수익은 횡재에 가깝다. 사회적 환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유사에 초과이윤세를 부과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유업계는 반발했다. “시장의 위험을 감수하며 수년간 투자해 얻은 결과”라는 항변이었다. 특정 시기의 이익만 떼어내 과세하는 것은 ‘징벌적 조세’라고 맞섰다. 하반기 경기 침체와 유가 하락으로 실적이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세웠다.
같은 해 8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른바 ‘한국판 횡재세법’을 대표 발의했다. 정유사 4곳과 16개 시중은행을 과세 대상으로 지정하고, 최근 실적이 직전 5개년 평균을 10~20% 초과할 경우 그 초과분의 절반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었다. 예상 세수는 최대 4조원으로, 에너지·금융 취약계층을 위한 ‘초과이득공유기금’에 편입하자는 구상이었다.
이듬해 11월 민주당은 ‘상생 금융기여금’ 법안을 발의했다. 일각에서는 세금이 아닌 기여금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사실상 횡재세가 아니냐는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유가 상승과 고금리로 정유사와 은행들이 사상 최고 이익을 거두고 있다”며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했었기 때문이다.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부담금 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금융회사가 지난 5년 동안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 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가 환수한 기여금은 금융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의 금융부담 완화에 사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법안 발의에는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이개호 정책위의장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 강성희 진보당 원내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 야당 의원 55명이 동참했다.

이복현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것이냐”
횡재세 도입 움직임에 대해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법조계에서는 특정 업종에만 초과과세를 하는 것은 조세평등 원칙 위반이라는 견해가 나왔고 ‘초과이익’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허점이 있었다. 정유업계의 경우 경기 변동에 따라 손익 폭이 크고 금융권은 이자율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과세 기준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학계는 “이익 구조를 세밀히 분석하지 않은 채 단순 평균 대비 초과분을 과세하면 왜곡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대한석유협회는 성명을 내고 “정치적 구호에 기반한 세금은 기업의 투자 위축과 탈한국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은행권에서도 “수익을 환수하면 가계·중소기업 대출 여력이 줄고 금융 안정성이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는 논리가 제기됐다.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횡재세 논의에 대해 “거위 배를 가르자는 게 아니냐. 금융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2023년 11월 ‘금융투자협회 70주년 기념식’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난 이 금감원장은 “최근 (기업) 거액의 이익에 대해 다양한 사회공헌 방안이나 손해 분담과 관련해 세계 각국에서 기여금이나 분담금 형태이건, 횡재세 형태이건 논의가 있었다. 그런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하다”면서도 횡재세와 관련해서는 “마을에 수십 년 만에 기근이 들어 한알 한알을 알토란 같이 나눠 쓰자는 상황에서 거위 배를 가르자는 논의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근 논의되는 횡재세안은 개별 금융기관 사정에 대한 고려가 없고 일률적이며 항구적으로 이익을 뺏겠다는 내용이 주된 틀”이라고도 했다.
2023년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발표한 ‘횡재세 주요 쟁점과 시사점’ 보고서는 유럽에서 횡재세가 추진되는 상황과 한국의 상황은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연합(EU)의 국방비 지출 부담이 커진 준전시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화석연료 기업이 상당한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들 국가는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출과 국방비 지출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재정수요에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횡재세 부과 대상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또 유럽중앙은행(ECB)은 횡재세로 자금중개기능이 위축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회사가 횡재세 기준에 근접할 경우 전략적인 규제회피적 영업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다른 기업도 어떤 우연적 이유로 뜻하지 않게 큰 이익이 발생한 경우가 있는데 합리적 이유 없이 금융회사에만 횡재세를 부과하면 헌법상 평등권(헌법 제11조)이나 조세평등주의에 위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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