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경복궁 담벼락 낙서'와 '숭례문 화재'...훼손과 처벌, 그 이후 이야기 [백세희의 컬처&로(LAW)]
- 물리적·화학적 방법 모두 동원되는 복원 작업
불타버린 숭례문 복원을 둘러싼 민·형사 소송

사건이 일어난 그 겨울, 몇몇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실형을 선고받을지, 받는다면 몇 년 정도의 형을 받을지 등 주로 처벌의 정도에 대한 것들이었다.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의 경우에 미루어, 길어봤자 징역 5년을 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비공식적인 답변을 했던 것 같다. 과거 숭례문 방화범은 징역 10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숭례문은 불에 활활 타 전소됐는데 징역 10년이 나왔다. 그러니 강 씨의 경우 5년 이상의 실형이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담벼락을 완전히 파괴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낙서의 주범 강 씨는 필자의 예상을 뒤엎고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문화유산 파괴의 정도를 주로 고려했던 예측과 달리, 재판부는 범행의 동기와 범행 후 수사 및 재판에 임하는 태도까지 모두 반영해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복궁이라는 상징적 문화재를 더럽힌 점에서 상당한 사회적 충격을 줬다”며 “불법 사이트 이용자를 통해 범죄수익을 올리기 위한 범죄였다는 점에서 범행 동기와 행태에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사 중 도주하기도 했고, 법정에 이르기까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등 범행 후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고도 했다. 이어 “모방 범죄가 바로 다음 날 발생하기도 했다”며 “담벼락 복구는 상당 예산과 인원을 들여 이뤄졌으나 완전한 복구가 어렵고 1억3000만원이 넘는 복구 비용이 들었다”고도 설시했다.
훼손한 자에 대한 처벌, 그 다음은?
강 씨를 비롯한 가담자들은 훼손에 따른 처벌을 받는 중이다. 이제 복구의 문제가 남았다. 경복궁 담벼락은 돌담이므로 스프레이 락커가 울퉁불퉁한 표면에 스며들어 돌을 깎아내지 않고 화학적인 방법으로만 낙서를 지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결국 물리적·화학적 방법이 모두 동원돼야 한다.
다만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이 나설 필요는 적어 보인다. 화강암 위의 페인트를 지우는 작업이 고되기는 하지만, 그 자체에 고도의 예술성까지 요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과거 전소된 숭례문 복원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숭례문 사건의 경우 복원에 여러 무형문화재(현재 용어는 ‘무형유산’이다)의 개입이 필수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또 터지고 만다. 어떤 사고였는지 살펴보자.
숭례문 복원을 둘러싼 민·형사 판결들
벌써 17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시뻘건 불꽃을 내뿜으며 타오르던 국보 제1호 숭례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 역시 2008년 2월 10일 밤 9시쯤부터 시작된 생중계 뉴스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힌 기억이 있다. 특별히 문화유산 사랑이 남달랐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숭례문 방화사건은 당시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다. 아쉽게도 숭례문의 복원 작업에서 실망스러운 뉴스는 계속 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12월 공사에 참여할 장인으로 홍 모 단청장을 선정해 2012년 8월 본격적인 복원 공사에 돌입했다. 숭례문 복원은 기와, 단청 등 여러 부분의 장인들이 작업 영역을 나누어 진행했다.
문제는 단청 복구공사에서 발생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 홍 모 씨가 전통기법과 도구만을 사용하기로 한 약정을 깨고 사용이 금지된 화학접착제(아크릴 에멀전)과 화학 안료(지당)을 몰래 사용한 것이다.

홍 씨는 값싼 화학 재료를 섞어 사용하고 이 사실을 모르는 건설회사 측에 전통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계산한 비용을 청구해 실제 비용과의 차액 수억 원을 빼돌렸다. 2015년 5월 구속된 홍 씨는 2016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의 2심 재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2017년 8월 30일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홍 씨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자격을 박탈했다. 여기까지가 숭례문의 복원을 둘러싼 형사적 판단이다.
민사소송은 복구공사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러 개시된다. 2013년경 단청공사가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숭례문 곳곳에 하자가 발생했다. 복구된 지 3개월 만에 색칠된 단청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감사원의 감사 과정 등을 거친 후 2017년 3월 홍 단청장과 제자인 한 모 씨를 상대로 11억8000여만원의 배상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무려 5년 5개월여의 긴 재판 끝에 2022년 8월 10일 판결이 나왔다. 1심 법원은 피고들의 책임을 80%가량 인정한 9억4500여만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선고했다.
왜 정부가 주장한 금액의 80%만 인정된 것일까? 피고들이 ‘단청 박락은 화학 안료 등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전문 기관의 감정 결과 화학 안료의 사용이 하자의 유일하고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는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고려됐기 때문이다. 국가가 홍 단청장의 경험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빠른 공사 완성을 요구했던 정황도 고려됐다. 하자 발생에는 국가의 과실도 20% 존재한다는 뜻이다.
단순 교통사고의 과실 비율에도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국보 제1호의 복원을 둘러싼 법원의 과실 비율 결정에 양 당사자가 쉽게 수긍할 리 만무하다. 과실 비율에 대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홍 씨 측도 국가도 1심의 과실 비율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이 상당했고, 결국 재판은 항소심으로 이어졌다.
2023년 7월 14일 항소심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8억2700여만원으로 더 줄여 판결했다. 홍 씨 측이 전통 재료를 사용하면 하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문화재청에 공사 기한 연장과 화학 재료 사용을 건의했는데도 문화재청이 이를 배제하고 전통기법에 따른 공사를 강행한 점을 고려해 1심보다 손해배상금을 1억원가량 줄인 것이다.

처벌 이후의 적절한 복구에 대한 관심 필요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숭례문 전소 장면과 비교해, 앞서 소개한 복구와 관련한 사기와 손해배상 사건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한 번 사그라지면 다시 쉽게 불타오르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원형에 가까운 회복을 위해서는 적절한 복원이 이뤄지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스프레이 세례를 받았던 경복궁 담벼락은 어떻게 되었을까? 올봄에 전체의 80% 정도 복구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었으니, 지금은 아마도 복원을 완료했을 것 같다. 경복궁 담벼락은 옛 모습을 되찾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문화유산의 복원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수리중’ 팻말이 걸려있는 바람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해 아쉬운 관람객이 있다면, 문화유산의 복원은 결코 간단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라는 걸 떠올려보자. 조금은 덜 속상할 수도 있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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