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다단계 하청의 이중 착취, 죽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 통계 개선과 현실 괴리…소규모·하청 현장 사각지대
제도 있지만 이행력 부족…산업현장 안전 관리 한계

[오현주 대신경제연구소 ESG리서치센터장(행정학 박사/정부행정역량평가위원)] 산업현장의 죽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2년 644명 ▲2023년 598명 ▲2024년 589명으로 집계됐고, 동기간 사망사고 건수 역시 감소하고 있다.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란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의미한다.
산재 사망 줄었지만…소규모·하청 현장은 여전히 사각지대
이 배경에는 뿌리 깊은 다단계 하청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많은 현장, 특히 건설·조선·제조업의 경우 원청에서 1·2·3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가 ‘위험의 외주화’를 양산해 반복적으로 대형 참사가 터지고 있다. 이는 ‘사고’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다.
고위험 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기면서 원청의 관리와 책임은 소홀해진다. 고용은 불안정하고, 가장 위험한 작업에 집중 투입됨에도 원청이 지급한 대금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내려오면서 쪼개져 근로자가 손에 쥐는 임금은 원청이 지급한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현상은 파견뿐 아니라 사내하청·도급·용역 등 간접고용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다. 거기에 하청업체는 인건비와 납기 압박에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한다.
실제 사례를 보자. 올해 6월, 7년 전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8년 베테랑 기술자가 기계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비정규직이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기에 같은 발전소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회사 명의가 매년 바뀌는 ‘쪼개기 계약’이 일상화됐다. 재하청 업체 노동자였던 그는 밤 10시 이후, 심지어 자정 넘어서까지 작업 지시를 받았다. 당진 대한전선 공장에서는 하청업체 소속 40대 노동자가 떨어진 작업대에 깔려 숨졌다. 그의 업무는 납기마다 달라졌다.
7월에는 구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베트남 출신 20대 노동자가 폭염에 체온 40도가 넘는 상태로 숨졌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조기 출근하여 1시에 퇴근했지만 외국인 일용직 하청 노동자였던 사망자는 폭염 속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세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해 고용부의 특별 감독을 받았던 포스코이앤씨에서는 7~8월에도 사고가 이어졌고, 대부분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제도 부족·현장 근로자 안이한 시각 문제
법제도 역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는 도급인(원청) 사업장에서 관계수급인(하청업체 등)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 원청은 물론 하청업체 근로자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원청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함을 규정하고 있다. 동법에 따라 ‘도급인이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조치·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는 근로자 파견의 징표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과 고용노동부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불법파견’ 판정 논란 등으로 원청의 감독이 소극적으로 이뤄진다.
임금 착취 구조와 관련해서는 지난 2019년 건설 공공부문에 공공발주자가 임금 및 하도급 대금 등을 직접 지급하는 ‘임금 직접 지급제’가 도입됐으나 전반적인 산업현장에서의 전면 도입은 요원하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이 2024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지만 하청업체들의 안전비용 투자나 인력 충원은 언감생심이다. 제도 이행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현장 근로자들의 안이한 시각에도 일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현장에 방문해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 중의 하나인 지게차 작업 시 안전모 착용을 권하면, 현장 근로자들은 “개활지에서는 법적 의무가 아니잖아요”라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지침상으로는 그렇죠. 근데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코너 돌다가 넘어져서 지게차에서 튕겨 나가 떨어지면요? 매년 지게차 사고로 1000명 이상이 다치거나 죽고 있는데 선생님이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라고 다소 강하게 말하면 그렇게나 사고가 많이 일어나냐며 놀라곤 한다. 공장 출입구에 긴 파이프 더미가 적재돼 있어 지적하면, 현장 근로자에게선 “잠깐 놓은 것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화재 등 비상시 탈출에 방해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안이한 인식도 결국은 잘 정비된 제도와 강화된 관리·감독 및 교육훈련을 통해 바꿔 나가야 할 부분이다.
결국 다단계 하청의 이중 착취 구조가 지속되고 원청의 관리·감독이 소홀하며, 정부가 법제도를 정비하고 적극 대처하지 않는 한 산업현장의 죽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려면 원청의 책임 강화, 하청 단계 제한과 적정 이윤 보장, 실질적 안전비용 지원, 원청이 적극적으로 사업장 내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해소하는 방향으로의 법제도 정비와 강력한 시행 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또다른 노동자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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