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우승민 기자] 현금 사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엔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현실화했다. 한국이 여전히 법적 근거 마련 단계에 머무는 사이, 일본은 금융 당국의 승인을 거쳐 스테이블코인을 정식 발행하며 디지털 결제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엔화와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JPYC'가 지난 27일(현지시간) 일본 금융 당국 심사를 통과해 정식 발행됐다. 일본에서 규제를 준수하는 최초의 엔화 스테이블코인이 탄생한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와 달러, 엔화 등 법정화폐와 1대1로 가치가 고정된 가상자산 일종이다. 흔히 알려진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변동성이 높은 기존 가상자산과 달리 가격 안정성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시총) 1위를 차지하는 테더(USDT)는 미국 달러와 1대1로 가치가 연동돼 있다. 1UDST는 1USD다.

JPYC 탄생이 가능했던 이유는 규제 명확성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일본에서 시행된 개정 자금결제법(Payment Services Act)을 통과하면서다.

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만 반복 중인 한국에 시사점을 던진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른바 '현금 왕국'으로 불리며 디지털 결제 인프라 확산이 더뎠던 일본이 한국보다 빠르게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한 점은 금융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은행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스테이블코인을 금지할까'가 아닌 '어떻게 제도 안에서 허용할까'를 택했다. 이는 디지털 결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며 "만약 일본이 JPYC 등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국제 결제 및 무역 금융 수단 등으로 확장한다면 원화는 아시아 내 통화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메가뱅크'도 엔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참전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미쓰비시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즈호은행 등 일본 3대 메가뱅크는 규격을 통일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논의 중이다.

이들이 발행하는 엔화 스테이블코인은 우선 미쓰비시상사의 사내 자금 결제용으로 사용될 방침이다. 이후 송금용으로 활용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도쿄 핀테크 기업이 발행한 JPYC와 다른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는 게 현지 업계 평가다.

국내 역시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참여한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는 블록체인 기술사와 협업, 국내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필요한 개념검증 사업 등을 추진하고 실증데이터를 축적할 방침이다. 또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방식을 논의 중이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결국 일본이 나선 것은 미국 주도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자국에서 확산할 수 있다는 경계감에서 비롯했다"며 "한국 역시 명확한 법적 틀을 마련해 제도권 안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축통화인 달러를 기반으로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과 다르게 원화 및 엔화를 기반으로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은 용처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8월 열린 '디지털 G2를 향한 첫 걸음' 포럼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풀어야 할 숙제는 확장성을 발휘하는 용처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CBDC·지역화폐 등과 통합하면 수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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