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구경이 아니라 머무는 경험에서 완성” [길에서 만난 사람들]
- 경북 군위 사유원 유지연 회장
덜 받는 경제학이 만드는 프리미엄
사유원이 증명한 ‘캐링캐퍼시티 경영’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관광 산업에서 가격은 통상 수요를 자극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가격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은 방문객을 유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전 세계 주요 관광지는 이제 정반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얼마나 많이 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게 덜 받을 것인가다. 경북 군위의 사유원은 이 질문을 가장 분명한 운영 원칙으로 구현한 사례다.
사유원의 입장료는 평일 기준 5만원, 주말에는 6만9000원 수준이다. 여기에 하루 정원제가 더해진다. 유지연 사유원 회장은 이를 두고 “가격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붐비지 않는 정원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설명한다.
그는 “사유원의 경험은 구경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에서 완성된다”며 “사람이 많아지는 순간 그 경험의 전제 조건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유원의 가격 정책이 단순한 프리미엄 전략이 아니라, 운영 목표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공간의 신뢰 지키는 사유원
사유원의 수용 인원은 감각이 아니라 계산에서 출발했다. 공간 조성 단계에서 공간역학 전문가를 통해 ‘이 숲에서 개인이 홀로 사유할 수 있는 밀도’를 분석했고, 그 결과 적정 수용 인원은 약 300명 수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유지연 회장은 “정원제는 희소성을 연출하기 위한 마케팅이 아니라, 공간의 물리적·정서적 수용력을 지키기 위한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사유원의 운영 원칙은 이 수치를 토대로 설정돼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가격을 통한 수요 관리 전략이다. 가격은 수익 극대화 수단이 아니라, 방문 목적과 체류 의도가 분명한 수요를 선별하는 신호로 작동한다.
그 결과 사유원의 방문객 구성은 뚜렷하다. 전체 방문객의 약 80%가 외지인이다. 이는 지역 기반의 일상적 소비가 아니라, 경험의 질이 이동 비용을 상쇄하는 구조임을 의미한다. 가격 민감도가 낮고 체류 시간이 긴 수요가 자연스럽게 남는다.
이는 ‘캐링캐퍼시티’(carrying capacity)를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전환한다. 다수의 관광지는 수용 한계를 넘는 순간 혼잡과 유지 비용 증가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한다. 반면 사유원은 수용력을 기준으로 운영을 설계함으로써, 혼잡으로 인한 가치 훼손을 사전에 차단한다.
유 회장은 “더 많이 받는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매출을 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간의 신뢰를 갉아먹는다”며 “사유원은 그 길을 택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덜 받는 경제학’은 해외 관광지에서도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탄이다. 부탄은 '고부가가치, 저용량‘(High Value, Low Volume) 정책을 공식 관광 전략으로 채택하고, 국제 방문객에게 1인 1박 기준 100달러(약 14만5800원)의 지속가능발전부담금(SDF)을 부과한다.
이 제도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다. 관광으로 발생하는 환경·사회적 비용을 가격에 내부화하는 장치다. 부탄 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방문객 수를 제한하면서도 1인당 관광 수입을 높이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도시 관광지에서는 베네치아가 유사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베네치아는 역사 도심으로 유입되는 당일치기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전 예약과 접근료 제도를 도입했다. 조기 결제 시 5유로(약 8600원), 성수기·비혼잡 관리일에는 최대 10유로(약 1만7200원)까지 부과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수입 자체보다도 ▲언제 ▲누가 ▲얼마나 들어오는지를 데이터로 관리하는 데 있다. 베네치아는 이를 통해 특정 날짜와 시간대의 혼잡을 완화하고, 거주 환경 악화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세계 유산 단위에서는 마추픽추가 대표적이다. 페루 정부는 하루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시간대별 티켓과 동선 분리 방식을 운영한다. 하루 최대 수용 인원은 수천 명 단위로 관리되며, 방문객은 정해진 시간대에만 입장이 가능하다.
유산 보호와 방문객 경험을 동시에 고려한 캐링캐퍼시티 관리 사례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관광의 병목은 수요 부족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수요라는 인식이다.
사유원의 차별성은 이러한 전략이 공공 규제가 아니라 민간 운영 원칙으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 유 회장은 “확장하자는 요구는 늘 있었지만, 그때마다 기준은 하나였다”며 “고요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확장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단기 수익을 포기하는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훼손 리스크를 줄이는 결정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미래의 유지 비용과 가치 하락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투자에 가깝다.
관광 산업의 성과 지표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방문객 수 증가는 측정이 쉽고 정치적으로도 명확한 지표다. 혼잡으로 인한 경험 가치 하락, 환경 비용, 지역 주민의 피로도는 숫자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유원의 사례는 성과를 ‘몇 명이 왔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태가 유지되는가’로 전환해야 함을 보여준다. 캐링캐퍼시티를 지키는 운영은 단기 성장을 늦출 수 있지만, 브랜드 프리미엄을 축적하는 데는 유리하다.
유지원 회장은 사유원의 운영을 이렇게 정리한다. 유 회장은 “사유원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기보다 더 깊은 시간을 허용하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사유원이 택한 경제학의 요약에 가깝다. 가격은 배제의 도구가 아니라 질을 지키는 신호이고, 정원제는 마케팅이 아니라 운영 인프라다. 관광 산업에서 프리미엄은 화려한 콘텐츠가 아니라, 수용력을 관리하는 규칙에서 만들어진다. 사유원이 보여주는 ‘덜 받는 경제학’은 성장의 속도보다 지속의 구조가 더 중요해진 시대에 유효한 하나의 답안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면봉 개수 → 오겜2 참가자 세기.. 최도전, 정직해서 재밌다 [김지혜의 ★튜브]](https://image.isplus.com/data/isp/image/2025/12/21/isp20251221000019.400.0.jpg)
![갓 잡은 갈치를 입속에... 현대판 ‘나는 자연인이다’ 준아 [김지혜의 ★튜브]](https://image.isplus.com/data/isp/image/2025/11/21/isp20251121000010.400.0.jpg)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연말 주춤한 중국 경제, 연 5% 성장 목표 달성할까[e차이나]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강민호, 2년 최대 20억원 '종신 삼성' 선언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좀비기업 상폐 빨라지고 우량 IPO 늘고…코스닥이 달라졌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리매각…최대 채권자 메리츠로 쏠리는 눈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AI신약개발 국내 최초 빅파마와 계약 체결한 갤럭스…베링거가 선택한 이유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