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쿠팡이 쓰는 '위기관리 실패 교과서'[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 진정한 브랜드가 되려면, 지금이라도 고객을 진정성 가지고 바라봐야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편리함을 팔았지만 고객을 존중하는 문화는 없었다”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앞으로 모든 PR 교과서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모범적 실패 사례로 다룰 것이다. 늦장 대응, 용어 축소, 최고경영자 부재,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브랜드 위기 관리에서 '하지 말아야 할 모든 것'의 완벽한 레퍼런스다. 3370만건의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보안사고가 아니다. 이것은 기업이 스스로 브랜드를 파괴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준 생생한 기록이다.
2021년 화재 대응의 데자뷔
쿠팡의 위기 대응 패턴은 4년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2021년 6월 17일, 경기도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 1명의 소방관이 순직하고 4000억원대 재산 피해가 발생한 대형 참사였다. 당시 쿠팡의 대응을 보자.
첫째, 최고경영자의 부재. 김범석 의장은 화재 당일 모든 직위에서 사임을 발표했다. 책임 회피 논란이 일자 "사임일은 5월 31일로 화재 17일 전"이라고 해명했지만, 공교롭게도 발표 시점은 화재 당일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김범석은 또다시 국회 청문회 불출석으로 모습을 감췄다.
둘째, 안전 관리 소홀. 화재 발생 후 8분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관리 업체 직원들이 화재경보를 6차례나 끄며 "평소처럼 오작동"이라 판단했다. 현장 근로자들은 화재 위험을 지속적으로 지적했지만 쿠팡은 근본적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셋째, 형식적 사과. 강한승 대표이사 명의 입장문만 냈을 뿐, 김범석은 나흘이 지나서야 짧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직접 나서지 않았다. "순직 소방관 유족 평생 지원" 같은 보상 대책은 내놓았지만, 사고의 본질인 안전 불감증 문화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어떤가. 11일 늦은 통보, '노출'이라는 용어 축소, 29일 뒤의 뒤늦은 사과, 국회 청문회 불참. 2021년 화재와 판박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쿠팡이라는 기업의 DNA, 고객보다 성장을 우선하고 위기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가 만든 필연이다.
미국 기업이라는 방패 뒤의 착각
쿠팡은 은연중에 '미국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정치적 공격을 받는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자.
1982년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을 살펴보면, 존슨앤드존슨 CEO 제임스 버크는 사건 발생 즉시 전국의 모든 타이레놀 제품 3100만병을 회수했다. 1억 달러 손실을 감수했다. 직접 TV에 출연해 사과하고 새로운 안전포장을 개발했다. 결과는? 1년만에 시장점유율 회복, 가장 신뢰받는 기업으로의 도약이었다.
2018년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을 살펴보자. 8700만명의 페이스북 개인정보가 무단 수집됐다. 마크 저커버그는 5일 만에 직접 사과했고,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11시간 동안 질의응답을 받았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페이스북을 만들었고 제가 운영하며,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제가 책임집니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미국 기업이라서 책임을 회피하는가? 아니다. 진정한 글로벌 기업일수록 위기 앞에서 더 투명하고 신속하게 대응한다. 쿠팡의 지배구조는 어떤가. 미국 법인 쿠팡Inc가 한국 법인을 100% 소유하고, 김범석 의장은 지분 10.6%로 의결권 75.3%를 행사한다. 전략적 의사결정은 미국 본사에서 하되, 규제와 책임은 한국 법인이 지는 기형적 구조다. 이것은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 책임 회피 시스템이다.
쿠팡에 모든 것이 있지만, 고객은 없다
더글라스 홀트 교수는 "브랜드는 제품이 아니라 문화를 판다"고 했다.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편리함을 팔았지만 고객을 존중하는 문화는 없었다. 4년 전 화재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2021년 6월 칼럼에서 필자는 이렇게 썼다. "쿠팡이 태워버린 것이 단지 덕평의 4만평 규모 건물과 1600만개 상품뿐일까. 수조원을 쏟아 투자한 '로켓배송'의 값진 고객 경험이 만든 브랜드 자산도 하루아침에 그 연기 속에 불타 사라졌다. 더불어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고객의 신뢰는 '고객의 분노'라는 불길 속에 좀처럼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불길은 4년이 지난 지금도 꺼지지 않았다. 아니, 더 크게 번지고 있다. '탈팡' 운동이 전국민적으로 확산되는 이유다. 쿠팡의 일간활성이용자수는 12월 셋째 주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물류센터 배송 물량은 10~20% 줄었다. 반면 G마켓, 네이버, 컬리, SSG는 일제히 고객 유입이 늘어났다.
JP모건은 "한국 시장에서 쿠팡의 입지를 흔들 경쟁사가 없다"며 낙관론을 폈다. 하지만 시장의 심판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고객들은 더 이상 편리함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자신을 존중하는 기업, 잘못했을 때 책임지는 기업을 원한다.
브랜드 회생의 열쇠는 단 하나다. 고객 중심의 진정성 있는 해결이다. 타이레놀은 전 제품 회수로, 메타는 CEO의 직접 사과와 투명한 대응으로 신뢰를 회복했다. 반면 쿠팡은 1조6850억원의 구매이용권을 내놓으며 보상이라 했지만, 이것은 현금이 아니라 자사 플랫폼에서만 쓸 수 있는 쿠폰이다. 또 다른 락인(lock-in) 전략일 뿐이다.
실수와 실패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브랜드를 만든다. 고객 없는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기술과 자본이 아무리 거대해도, 고객의 신뢰 없이는 모래성이다. 쿠팡이 진정한 브랜드가 되려면, 지금이라도 고객을 진정성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현재 모든 것이 다 있는 쿠팡에 없는 단하나의 것. 바로 ‘고객존중의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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