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정책에서 '균형발전'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지방을 위한 시혜' 혹은 '수도권의 양보'로 오독돼 왔다. 하지만 지금의 수도권 일극 체제는 효율의 임계점을 넘어 '수확 체감'의 단계에 진입했다. 더 이상 수도권 하나로는 대한민국을 이끌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지난 20년의 뼈아픈 실패를 먼저 복기해야 한다. 수백조 원을 들여 혁신도시를 짓고 공공기관을 '점' 단위로 지방에 이식했지만, 결과는 주변과 단절된 '고립된 섬'의 양산이었다. 수도권 인구의 분산 대신 기존 지방도심의 인구만 혁신도시로 분산됐고 지방 소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5개 메가시티, 3개 특별자치도)' 구상은 바로 이 실패의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구역 개편이 아니라, 파편화된 도시들을 하나의 거대한 '면(Area)'으로 묶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시도이자, 꺼져가는 국가 성장 엔진을 1개에서 5개로 늘리려는 생존 전략이다.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이 거대한 구상이 대한민국 재도약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이제 '지도 그리기'가 아닌, '권한'과 '실행'의 이야기를 시작한다.5극3특 실행 동력, ‘권한’ 이양과 돈의 흐름 바꿔야‘5극3특’은 국토를 5개의 초광역 메가시티(수도권·중부권·호남권·대경권·동남권)와 3개의 특별자치권(강원·전북·제주)으로 재편해 각각을 독립적인 ‘경제 엔진’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집적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를 수도권 밖에서 구현하겠다는 시도다. 이 시나리오가 작동한다면 수도권으로만 쏠리던 자원과 인재의 흐름이 5개의 강력한 자석(Magnet)으로 분산된다. 단순히 인구를 나누는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비행기에 1개뿐이던 엔진을 5개, 8개로 늘려 국가 전체의 GDP 총량을 키우는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실행 동력이다. 단순히 행정구역을 묶어 ‘메가시티’라고 이름 붙인다고 해서 기업과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5극3특이 과거 실패한 정책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권한’과 ‘돈’의 흐름을 바꾸는 작업이 선행돼 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네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먼저, 통제형 재정에서 자율형 재정으로의 전환이다. 현재 지방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은 중앙정부가 사용처를 지정한 국고보조금이다. 돈은 내려보내지만 쓰는 방법은 중앙이 정한다. 이 구조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는 창의적 사업이 불가능하다. 중앙의 간섭 없이 권역별로 전략 산업과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는 ‘포괄보조금’(Block Grant)과 ‘권역별 특별회계’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일단 이재명 정부는 자율형 재정의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돈줄을 쥐고 흔드는 중앙의 기득권부터 내려놓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그러나 돈만 내려보내서는 안된다. 과감한 규제 권한의 이양이 동반돼야 한다. 산업단지 입지, 대학 정원, 연구개발(R&D) 투자 분야의 결정권이 여전히 중앙 부처에 있다. 기업이 투자를 하려 해도 중앙의 심의를 기다리다 포기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5극3특의 특별지자체에는 입지, 환경, 교육, 산업 진흥과 관련된 핵심 규제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 각 권역이 “우리 지역에 오면 이런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기업에 직접 세일즈 할 수 있어야 한다.세번째는 물리적 거리를 삭제하는 교통 인프라다. 메가시티의 전제 조건은 ‘1시간 생활권’이다. 통근, 통학, 물류가 하나의 도시처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으면 규모의 경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광역철도(GTX급 지방 광역망)와 순환도로망 구축은 복지가 아니라 경제권 통합을 위한 필수 투자다. 통합 환승 체계와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심리적 거리감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이미 수도권은 GTX-A를 통해 이동 속도 단축이 가져오는 지역 간 네트워크 강화 효과를 얻고 있다. GTX-B, C까지 완성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지방의 광역철도가 시급한 이유이다.네번째는 강력한 거버넌스의 구축이다. 현재 논의되는 특별지방자치단체나 광역연합이 지자체장들의 ‘친목회’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산 편성권과 인사권, 계획 수립권을 가진 실질적인 의사결정 기구가 돼야 한다. 책임을 지고 리더십을 발휘할 주체가 불분명하면, 5극3특은 또다시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하고 표류할 공산이 크다. 수도권 광역고속철도방에 의한 빨대효과를 최소화하는 것 역시 지역내 거버넌스 구축에 달렸다.민간 투자의 물꼬를 트는 법, '기획자'로서의 지방정부이 모든 논의의 성패는 결국 ‘민간(기업)의 이동’에 달려 있다. 공공기관 이전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함을 우리는 배웠다. 기업이 지방 이전을 꺼리는 이유는 세금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인재를 구할 수 없고, 인프라가 부족하며, 정책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5극3특은 기업에 단순한 조세 감면을 넘어선 ‘패키지 딜’(Package Deal)을 제공해야 한다. 원하는 인재를 공급해 줄 지역 대학의 맞춤형 학과 신설, 직원들이 거주할 정주 여건, R&D 센터 설립 지원, 그리고 이 모든 약속을 정권이 바뀌어도 지키겠다는 법적 확약이 필요하다. 지방정부 역시 ‘기획자’이자 ‘사업가’로 변신해야 한다. 재정분권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분산이기도 하다. 5극3특은 대한민국이 ‘수도권 일극’이라는 낡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탈피(脫皮)의 과정이다. 이것은 지방을 살리는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을 탈출해 재도약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중앙정부가 쥐고 있던 ‘권한의 빗장’을 풀고, 그 열린 문으로 지방정부가 설계한 혁신의 생태계에 기업이 뛰어들게 해야 한다. 5극3특이 정권의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제 구상은 끝내고 실행으로 답해야 한다. 1개의 엔진이 힘에 부쳐 헐떡이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8개의 심장이 힘차게 박동하는 역동적인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