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미디어 산업 ‘왕좌의 게임’ 승자는?[한세희 테크&라이프]
- ‘해리 포터’와 ‘프렌즈’, ‘왕좌의 게임’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게 될까.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최근 넷플릭스가 미국 대표 영화제작사 중 하나인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WBD)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넷플릭스가 제시한 가격은 827억달러, 우리 돈 약 120조원에 이른다. 인수 금액은 WBD 주식 1주당 현금 23.3달러와 4.5달러 상당의 넷플릭스 주식이 결합된 형태로 지급된다. 넷플릭스는 WBD의 여러 자산 중 영화 및 TV 제작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HBO맥스 등 핵심 자산을 인수한다. ▲CNN ▲TNT ▲디스커버리 등 방송사업 부문을 분사한 후 남는 부분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해리 포터·배트맨·톰과 제리가 넷플릭스에
WBD가 가진 해리 포터 시리즈, 배트맨과 슈퍼맨 등 인기 캐릭터를 가진 DC코믹스, 시트콤의 고전 프렌즈, 왕좌의 게임 같은 인기 TV 시리즈 등이 모두 넷플릭스에 들어간다. ▲톰과 제리 ▲플린스톤 가족 ▲릭 앤 모티 같은 인기 애니메이션도 확보하고, 워너브라더스게임즈의 역량을 활용해 넷플릭스 인기 지식재산권(IP) 기반 게임도 만들 수 있다.
넷플릭스 라이브러리를 더욱 풍성하게 할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제작 역량을 가진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새롭게 확보한 것이다. 반면, 돈이 안 되는 케이블 방송 사업은 떠안지 않는다.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기존 헐리우드 영화 산업을 궁지에 몰아넣은 넷플릭스가 헐리우드의 아이콘이라 할 WBD를 인수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테크와 미디어가 결합된 새로운 방식의 미디어 소비가 전통적 영화 시스템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거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읽힌다.
넷플릭스는 세계 3억명 이상의 구독자에서 나오는 강력한 배급 역량을 갖고 있고, 이를 노리는 세계 곳곳의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콘텐츠가 넷플릭스에 모여든다. 이는 다시 넷플릭스의 경쟁력을 높여 다른 미디어 기업이나 플랫폼과 격차를 벌리는 요인이 된다. ‘오징어 게임’이나 ‘K팝 데몬 헌터스’ 같은 개성 있는 콘텐츠가 넷플릭스 아니었으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좋은 콘텐츠를 띄우는 넷플릭스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넷플릭스 서비스에 이제 할리우드 핵심 콘텐츠 자산과 제작 역량이 더해지는 것이다. DVD를 우편으로 받아본다는, 후엔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본다는 당시로선 기이한 아이디어로 시작한 넷플릭스가 30년이 채 안 돼 미디어 업계의 판을 바꿔버렸다.
‘현금이 왕’…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의 적대적 인수 시도
하지만 넷플릭스의 WBD 인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당초 가장 유력한 WBD 인수 후보는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였다. 파라마운트는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의 아들 데이빗 엘리슨이 설립한 영화사 스카이댄스에 인수돼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가 됐다. ▲파라마운트픽처스 ▲미라맥스 등 영화사와 ▲니켈레디온 ▲MTV 등 케이블 채널, 스트리밍 서비스 ▲파라마운트+, 지상파 방송 ▲CBS 등을 보유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탑건’ 등이 대표작이다.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는 넷플릭스에 WBD를 가로채기(?) 당한 후 포기하지 않고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섰다. 주당 30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지불하겠다며 WBD 주주들을 설득했다. 알짜 자산만 가져가는 넷플릭스와 달리 ▲CNN ▲TNT ▲디스커버리 등 방송 부문까지 포함한 회사 전체를 1084억달러(약 160조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이다.
새해 들어 WBD 이사회는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의 제안이 “심각한 비용 및 불확실성 문제가 있다”며 이를 만장일치로 거부하고, 넷플릭스와 인수합병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래리 엘리슨이 절친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넷플릭스와 WBD 합병은 시장 독점을 일으키리란 우려를 전하는 등 적극적 설득 작업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넷플릭스 CEO도 만나는 등 양측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으나, “(두 회사가) 합병 후 차지할 시장 점유율이 크다”며 개입 의사를 비추기도 했다.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가 WBD를 인수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라고 종종 비난하는 CNN에 보수 세력의 입김을 넣을 수 있다는 점도 행정부의 의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넷플릭스의 길, 엘리슨의 길
넷플릭스의 WBD 인수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CC)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넷플릭스라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제작사를 인수하는 수직적 합병에 중점을 두면 상대적으로 쉽게 승인이 날 수 있지만, HBO맥스라는 경쟁 스트리밍 서비스를 인수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독점 우려가 강해질 수 있다.
시장을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라 유튜브나 틱톡을 포함한 인터넷 콘텐츠 전반으로 규정한다면 독점 우려로 인한 불승인 가능성은 거의 사라질 전망이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이번 WBD 인수합병은 기술 산업이 전통적 미디어 콘텐츠 산업을 집어삼키며 사람들의 시간과 관심을 더 많이 확보하려 하는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인터넷 스트리밍의 틀 안에 콘텐츠 제작까지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는 보다 전통적인 영화 및 TV 제작과 유통 분야에서 덩치를 키우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 역시 단지 미디어 기업의 대마불사 전략을 쫓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실질적 자금원인 래리 엘리슨은 AI와 데이터, 클라우드를 바라보고 있다. 오라클의 기업맞춤형 AI 서비스 인프라는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라더스 같은 엔터테인먼트, CNN 같은 뉴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데이터로 더욱 정교하게 학습시킬 수 있다. 오라클은 이미 중국에서 떨어져 나온 틱톡 미국 서비스에 IT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20세기 미디어 대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제작과 유통 경로를 통합해 활로를 찾았다면, 이젠 빅테크들이 기술과 콘텐츠, 데이터와 인프라를 통합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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