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낡고 낡은 전자금융법' 적용하는 핀테크...업계는 "변화할 때" 지적
- [K핀테크, 어디까지 왔나]③
금융사 중심 규제에 핀테크는 뒷전...전문 규제 체계 필요
"모든 것을 기존 법에 맞는지 따지면 혁신 어려워"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의 성장 이면에는 늘 규제 문제가 따라붙었다. 국내 금융 규제 체계가 전통 금융사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 탓에, 핀테크 기업들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성장해야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제라도 핀테크 산업을 전제로 한 법과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핀테크 산업은 컸지만...규율 법은 ‘전무’
지난 10여 년간 국내에서 설립된 핀테크 기업은 수백 곳에 달한다. 간편결제와 송금에서 출발한 핀테크는 ▲커머스 금융 ▲중소상공인 결제 인프라 ▲데이터 기반 금융 서비스 등으로 외연을 넓혀왔다.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를 중심으로 대중적 금융 서비스의 디지털 전환도 빠르게 진행됐다. 특히 네이버·카카오·토스는 전통 금융사들의 견제 속에서도 여러 금융서비스에서 큰 혁신을 이뤄내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앞으로 핀테크 산업이 더욱 육성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카토처럼 공룡급 핀테크가 아닌 체력이 약한 중소형 핀테크사들도 리스크 걱정 없이 마음껏 기술 역량을 펼치려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제6대 회장으로 단독 추대된 김종현 쿠콘 대표는 “핀테크협회에는 가입 회원사만 400~500개에 달하지만 네카토 정도의 회사 빼고는 아직 큰 성장을 이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마이데이터 사업만 해도 범위가 제한적이다보니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규제 완화와 관련해 여러 제도들이 잘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핀테크 산업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핀테크 산업과 가장 맞닿아있는 전자금융거래법은 2007년부터 시행됐지만, 전자거래기본법(1999년)과 은행법 등은 레거시 금융법 체계를 바탕으로 설계돼, 오늘날의 플랫폼·핀테크 환경과는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핀테크업계가 10년 넘게 성장했는데도 핀테크 관련 법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며 “지금도 1990년대에 제정된 전자거래 관련법과 기존 금융·이커머스 관련 법을 준용해 판단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나의 업권으로 성장했음에도 명확한 법적 지위와 규제 틀이 없다 보니, 핀테크 기업들은 2년짜리 혁신금융서비스(규제샌드박스)에 의존해 ‘연명’하는 구조”라며 “2년 뒤 사업 지속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투자와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은 “전자거래금융법은 제정된 지 오래된 만큼 현재의 디지털 금융환경에 맞게 손을 볼 필요가 있고 마이데이터의 범위 확대, 망분리 규제 등도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며 “기술 환경이 크게 바뀐 만큼 현재의 규제가 혁신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가 아니라, 법 체계의 문제”
여러 핀테크 기업들이 성장했지만 국내 금융산업은 여전히 기존 금융사 중심의 산업 구조로 돌아간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최근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란은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금융당국 논의가 은행 중심으로 흘러가면서다.
당국 안팎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법인을 설립하되 은행이 지분의 51% 이상을 보유하는 구조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컨소시엄 형태를 취하더라도, 실질적인 통제권은 은행이 쥐는 방식이다.
핀테크업계의 불만은 여기서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시장에서 핀테크 기업과 빅테크, 전통 금융사가 다양한 형태로 참여해 온 영역인데, 국내 논의는 출발 단계부터 발행 주체를 사실상 은행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은행에만 주도권을 주는 접근은 결국 기존 금융 규제를 그대로 디지털 자산 영역에 옮겨놓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핀테크업체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글로벌 트렌드”라며 “해외에서는 은행이든 핀테크든, 컨소시엄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발행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업권이 아니라 역량과 준수 능력”이라며 “동일한 기준 아래에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주체라면 은행과 핀테크를 구분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핀테크 규제 문제가 특정 업계의 민원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한다. 저출산·고령화 속에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현재의 구조 자체가 더 큰 리스크라는 것이다.
또한 학계에서는 핀테크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 문제의 핵심을 단순한 규제 완화 여부가 아니라 ‘법 체계 자체의 한계’에서 찾는다. 국내 법은 관습법(반복적 행해진 관행이 법으로 인정되는 제도)이 아니라 대륙법(법 조항 자체의 해석과 적용에만 집중) 체계라 보다 유연한 규제 대응이 어렵다는 시각이다.
학계 관계자는 “영국과 미국은 관습법 체계라 시장에서 검증된 행위를 사후적으로 허용할 수 있지만, 한국은 대륙법 체계라 법에 없는 것은 원칙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기술 혁명 시대에 모든 것을 기존 법에 맞는지부터 따지는 구조로는 혁신이 어렵다”며 “이는 금융당국에 있는 공무원들의 의지만 탓할 것이 아니라, 감사·위헌·책임 리스크가 얽힌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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