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상속세의 진짜 함정은 ‘세율’이 아니다 [순화동필]
- 급전 마련 위한 '헐값 매각'과 '고금리 대출'이 실질 세율 높여
부자도 흔들리는 유동성 공백, 준비 없는 상속이 남기는 대가
대한민국 자산가들 사이에서 “상속세 때문에 대를 잇기 어렵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최대 50%, 대주주 할증 시 60%)도 부담이지만, 실무 현장에서 더 큰 문제로 작용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상속세를 낼 ‘현금’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과 주식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수십억, 수백억원의 상속세 고지서를 받아 들면, 자산가는 분명 ‘부자’이지만 당장 세금을 낼 ‘현금 부자’는 아닌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상속세 문제의 본질은 세율보다 유동성에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준비 없는 상속의 대가: 헐값 매각과 금융 비용
상속세는 원칙적으로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현금으로 일시 납부해야 한다. 연부연납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담보 설정과 이자 부담을 전제로 한다. 사전 준비 없이 상속이 발생하면 유족들은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급하게 처분하거나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유동성 부족의 함정’이 발생한다. 세금 납부 기한에 쫓겨 자산을 처분하면 시장 가격보다 10~30% 낮은 가격에 매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고금리 대출 이자 비용까지 더해지면, 실제 체감하는 상속세 부담은 법정 세율을 훨씬 웃돌게 된다.
상속 설계의 핵심은 ‘유동성 확보’
많은 자산가가 자산의 가치를 키우는 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 가치를 온전히 물려주기 위한 ‘세금 납부 재원’ 마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준비되지 않은 상속은 결국 자산의 강제 할인 매각으로 이어진다.
특히 비상장 주식이나 부동산 비중이 높은 경우에는 유동성 부족이 경영권 불안이나 가족 간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도 흔하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급하게 자금을 조달하며 부담하는 높은 이자와 기회비용은 가업 승계나 자산 이전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중대한 리스크가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비용 구조
현금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비용은 단순한 세금 부담을 넘어선다.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면 양도소득세가 발생하고, 매각 후 남은 현금 역시 증여세나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연부연납을 선택하더라도 시중 금리에 연동된 가산금을 부담해야 하며, 대출을 활용할 경우 고금리 환경에서는 이자 비용만으로도 자산 수익성이 급격히 훼손된다. 현금 대신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세금을 내는 물납 제도 역시 요건이 까다롭고,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오히려 상속세 부담이 늘어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상속 세무 전략의 성패, 유동성 전략에 달려
절세를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우고 자산을 분산 증여해 상속재산을 줄이는 전략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자산을 증여해 버리는 것은 부모의 노후 생활 측면에서도, 절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 재산은 상속재산으로 남겨 두되, 이에 대한 상속세를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재원 마련 전략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상속인들이 연부연납 첫 회분조차 마련하지 못해 급매에 나서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결국 상속 설계의 성패는 ‘얼마나 세금을 줄이느냐’가 아니라, ‘세금을 낼 현금을 어떻게 확보해 두느냐’에 달려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금융자산 유지, 종신보험을 통한 사망보험금 확보, 자녀의 배당소득 마련, 자산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 유동성 전략 없이 상속을 맞이한다면, 평생 일군 자산이 세금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내 자산 중 당장 현금화 가능한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상속세 재원 마련 계획은 준비돼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우용 송정회계법인 상속증여센터 대표회계사
필자는 송정회계법인 상속증여센터 대표로, 공인회계사·세무사·세무학박사 자격을 갖춘 상속·가업승계 분야 전문가다. 딜로이트 안진에서 세무 매니저로 근무하며 국제조세·기업세무를 담당했고, 하나은행 글로벌컨설팅팀에서 가업승계 컨설턴트와 세무팀장을 지냈다. 이후 우덕회계법인 파트너를 거쳐 송정회계법인 서초지점 대표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 EMBA를 졸업했으며, 강남대 세무학과 외래교수로 강의했다. 한국조세법학회 정회원으로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혈액암협회 감사, 백석예술대 등록금심의위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산업기술평가관리원 평가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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