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물가 특별 관리’ 나선 정부에…식품업계, 가격 인하 ‘눈치 싸움’ [요동치는 밥상물가]①
- 심상찮은 먹거리 물가 상승세…‘물가 관리 TF’ 부활
‘담합’ 제당 3사, 4000억대 과징금…추가 인하 압박도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장바구니 물가를 겨냥한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식품업계 전반에 가격 인하 압력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담합 ▲독과점 ▲할당관세(저율 관세) 악용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내 식품 기업은 서둘러 주요 제품의 가격을 낮추며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 발맞추기에 나섰다.
지난 2월 3일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8.03(2020년=100)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2.0% 오른 수치다.
구체적으로 ▲수산물(5.9%) ▲축산물(4.1%) ▲외식(2.9%) ▲가공식품(2.8%) 등 식품 관련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평균 상승률을 웃돌았다. 같은 기간 쌀은 18.3% 급등했고, 라면도 8.2% 뛰었다. 최근 5년간 ▲농축수산물(21.4%) ▲가공식품(24.8%) ▲외식(25.3%) 등 먹거리 물가 상승률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6.8%)을 훌쩍 넘는다.
이 대통령은 식품 물가 상승 원인으로 기업의 가격 담합과 복잡한 유통 구조를 지목하며 “특정 기간 집중적으로 물가 문제를 관리할 태스크포스(TF)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설탕·밀가루·전분당 등 가격 인하 행렬
정부는 지난 2월 11일 서민 체감물가를 끌어올리는 담합·독과점 구조와 유통 단계 문제를 전면 점검하기 위해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를 공식 출범했다.
TF 의장은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의장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맡았다. 정부는 ▲불공정거래 점검팀 ▲정책지원 부정수급 점검팀 ▲유통구조 점검팀 등 3개 팀으로 TF를 구성하고 올해 상반기 집중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핵심은 공정위가 주도하는 ‘불공정거래 점검팀’이다. 불공정거래 점검팀은 ▲품목별·제품별 가격 인상률 ▲시장집중도 ▲국민 생활 밀접도 등을 기준으로 점검 품목을 추려 살펴보고 관계 부처와 합동 조사를 벌인다. 담합이나 독점력 남용 등 불공정거래 행위가 확인되면 가격 원상회복을 위해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는 등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구 부총리는 지난 2월 11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1차 회의를 주재하며 “지난 수년간 누적된 가격 상승 여파로 국민이 느끼는 물가 수준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면서 “상반기(1~6월) 집중적으로 국민 생활과 밀접한 민생품목을 점검해 불공정거래를 척결하고, 왜곡된 유통 구조는 신속히 바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식품 물가 안정 기조에 가장 먼저 동참한 건 제분·제당 업계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월 초 업소용(B2B)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각각 평균 6%, 4% 내린 데 이어 일반 소비자용(B2C) 설탕·밀가루 전 제품의 가격을 낮춘다고 지난 2월 5일 밝혔다.
삼양사도 B2C 및 B2B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평균 4∼6% 인하하기로 했다. 사조동아원의 밀가루 제품 가격은 평균 5.9% 떨어졌다. 대한제분은 밀가루 일부 제품의 가격을 평균 4.6% 낮췄다.
전분 및 당류(전분당) 업체도 잇달아 가격 인하에 나섰다. 사조그룹의 전분당 제조·판매 업체 사조CPK는 지난 2월 23일 옥수수를 원료로 한 전분, 물엿, 과당 등 전분당 주요 제품 가격을 3∼5% 내린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CJ제일제당도 B2C 전분당 제품의 가격을 최대 5% 낮췄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월 B2B 전분당 가격을 3~5% 인하했다. 대상도 지난 2월 13일 ‘청정원’ 브랜드의 올리고당류 3종과 물엿 등 B2C 제품 가격을 약 5% 내렸다. B2B 제품 가격도 평균 3∼5% 떨어졌다.
식품사 “실적 악화 심화…10원도 못 내려”
주요 원재료 업계가 정부 기조에 따라 앞다퉈 가격을 낮추는 데는 공정위의 전방위적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공정위는 생활물가와 직결된 기초식품 원재료 시장 전반에 대한 담합 여부를 집중 점검 중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3개 설탕 제조·판매 사업자는 지난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설탕 판매가의 인상 시기와 폭 등을 합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제당 3사에 시정 명령과 과징금 총 4083억1300만원을 잠정 부과했다.
공정위의 칼끝은 전분·물엿 등 전분당 제품으로도 향하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국내 전분당 시장을 과점 중인 ▲대상 ▲삼양 ▲사조CPK ▲CJ제일제당 등 4개 업체의 담합 의혹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탕과 밀가루 등 원재룟값 인하가 라면·빵·과자·아이스크림 등 주요 가공식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지난 2월 24일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설탕값이 16.5% 내렸다는데 설탕을 쓰는 상품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 소비자는 혜택도 못 받고 공정위가 열심히 한 결과물을 업체가 독식하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지난 2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최근 밀가루 담합 사건과 관련해 “가격을 적어도 10% 정도 낮추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며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하락하면 관련 식가공 업체에서 추가적인 가격 인하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 대통령 취임 후 정부가 물가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며 식품업계를 주시하는 상황”이라며 “▲원재료 가격 ▲환율 ▲물류비 등 비용은 계속 오르는데 가격 인상은 엄두도 낼 수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가격 인하를 압박하지만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원가 부담이 심화하며 영업이익이 매년 줄어드는데 10원도 내리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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