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 직격탄 맞은 항공업계…운항 축소에 채용도 ‘긴장’
- 미·이란 전쟁 여파로 항공유 가격 급등…비상경영 체제 돌입 잇따라
수요 둔화 우려까지 겹쳐 ‘이중 압박’…채용 축소 가능성에 취준생 촉각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면 해당 항공사의 신규 채용도 당분간 어려운 것 아닌가요. 중동 사태 여파로 다른 항공사들까지 채용을 줄이면 어떡하죠.” 승무원을 준비 중인 한 취업 준비생의 우려다.
미·이란 전쟁 여파가 국내 항공업계를 직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항공사 비용 구조의 핵심인 항공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형 항공사(FSC)와 저비용항공사(LCC)를 막론하고 운항편을 축소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항공사는 노선 효율화와 운항 조정에 나서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항공업계 전반 긴장 고조
항공업은 유가 변동에 민감한 대표적인 산업이다. 항공유는 전체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핵심 요소로, 유가 상승은 곧바로 운항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정제유인 항공유 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구조다. 특히 항공유는 환율 영향까지 함께 받는 만큼 비용 부담이 복합적으로 확대되는 특징이 있다.
간접 영향도 동시에 나타난다. 유가 상승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며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여행 수요와 항공 화물 물동량이 둔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질 경우 기업 출장 수요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항공업계는 연료비 부담 확대와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운항 축소를 넘어 채용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항공사들은 현재까지 채용 축소나 중단을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규 채용 일정이나 규모를 보다 신중하게 검토하는 분위기는 감지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채용과 관련한 계획 변경은 없지만, 전쟁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채용 축소가 당장 결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향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며 “업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채용 규모 조정이나 일정 지연 등의 형태로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걸프전 사례로 본 파급 효과
유가 급등이 항공업계에 미친 대표적 사례로는 1991년 걸프전이 꼽힌다. 당시 전쟁은 항공업계 전반에 비용 상승과 수요 감소를 동시에 유발한 전형적인 외부 충격으로 평가된다.
걸프전은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돼, 1991년 1월 미국 주도의 군사 작전으로 확대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1990년 7월 배럴당 17.17달러(약 2만6000원)에서 10월 36.02달러(약 5만4600원)까지 상승했다. 약 3개월 만에 두 배 수준으로 급등한 것이다.
이후 공급 회복 기대 등이 반영되며 1991년 초에는 다시 하락세를 보였지만, 항공업계는 단기간 내 급등한 연료비 부담을 그대로 떠안았다. 항공권 가격에 비용을 즉각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하며 일부 항공사는 유동성 위기를 겪기도 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당시 항공산업이 비용 증가와 교통량 감소를 동시에 겪었다고 평가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 역시 걸프전을 계기로 항공 교통 성장세가 둔화한 것으로 분석한다.
당시 미국 항공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었다. 미국항공운송협회(A4A)에 따르면 약 4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이 가운데 1만8000명은 이스턴항공 폐업에 따른 인원이었다. 업계 재편과 구조조정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항공산업 전반에 충격이 확산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제한적이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1991년 국제선 여객은 전년 대비 6.7%, 화물은 1.4% 증가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국제 교류 확대, 복수민항체제 도입 등이 수요 증가를 견인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즉 외부 충격에도 불구하고 시장 성장세가 이를 일정 부분 상쇄한 구조였다.
현재 국내 항공업계는 당시와 다른 구조적 환경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이 이미 성숙 단계에 진입하면서 과거와 같은 수요 급증을 통한 충격 흡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급 확대보다는 수익성 중심 전략이 강조되는 국면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항공사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단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운임 경쟁과 수익성 확보 경쟁이 동시에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일부 항공사는 기재 운용 효율화나 부가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수익 방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유 가격 상승은 운임 인상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과거와 달리 현재는 시장 성장 여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외부 충격을 흡수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여행 수요가 일정 수준 유지되고는 있지만, 고유가로 장거리 노선 운임이 상승할 경우 전체 수요가 일부 위축될 수 있다”며 “항공사들은 단거리 노선 확대, 운임 구조 조정 등을 통해 수요를 분산시키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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