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고정밀 지도 ‘날개 단’ 구글 vs ‘단골집’ 꽉 잡은 네카오…지도 전쟁 2R [빗장 풀린 구글]②
- 19년 만에 반출 조건부 승인
속내는 ‘웨이모’ 등 미래 사업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 먼저”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19년 동안 평행선을 달려온 우리 정부와 구글 간 ‘지도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가 핵심 자산인 1대 5000 축척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이 전격 승인되면서다. 엄격한 조건이 달리기는 했지만 사실상 ‘지도 주권’의 빗장을 푼 결단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플랫폼 업계는 로컬 특화 서비스를 앞세워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지만, 납세 의무 등 최소한의 책임조차 외면한 구글에 빗장을 열어준 정부의 방침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 2월 27일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7개 관계 부처가 참여한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는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을 조건부 허가했다. 이번 결정의 표면적인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관광 편의성 제고이지만 관세 압박 등 미국의 통상 정책에 대응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구글이 제시한 기술적 대안이 안보 취약 요인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고 판단했다. 구글은 ▲위성 이미지 내 군사·보안 시설 가림 처리 ▲좌표 표시 제한 ▲국내 서버에서의 데이터 가공 및 정부 검토 등을 수용했다. 특히 ‘레드 버튼’(보안 사고 시 기술적 긴급 조치) 구현과 한국 지도 전담관 상주 등의 조건은 사후 관리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고심이 담긴 대목이다.
구글이 노리는 AI·자율주행 뼈대
업계는 구글의 시선이 단순히 외국인의 ‘길찾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고 본다. 진짜 목적은 ▲자율주행(웨이모) ▲공간 컴퓨팅(AR·VR)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공간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 확보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도는 자율주행차가 움직이는 ‘디지털 레일’이자 현실 세계를 똑같이 복제한 디지털 트윈의 뼈대로 여겨진다. 고정밀 지도가 구글의 AI 알고리즘과 결합하면 한국은 구글의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한 거대한 ‘테스트베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는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구글의 목표는 AI 학습용 데이터 확보”라며 “AI 학습이 완료되면 국내 자율주행·로봇·AI 산업이 구글의 지도 생태계에 종속되는 ‘록인’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반출 승인이 유독 뼈아픈 이유로 구글의 ‘비대칭적 권리’가 지목된다. 구글은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면 지도 반출 문제뿐만 아니라 서비스 속도 문제까지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를 거부해 왔다. 업계는 이를 두고 구글이 한국 정부의 직접적인 관리·감독권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법인세 등 납세 의무를 회피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구글코리아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조 단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싱가포르 법인 수익으로 계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매년 수천억원의 법인세를 내며 국내 인프라에 재투자하는 동안, 구글은 ‘글로벌 빅테크’의 타이틀 뒤에 숨어 한국의 고정밀 지도를 공짜로 넘겨받은 셈이다. 이에 국가 자산의 유출이자 명백한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과거 일본의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걱정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구글은 일본 최대 지도 업체 젠린과 협업하며 데이터를 축적해 오다 2019년 자체 데이터 기반의 지도로 전환했다. 당시 시부야역 인근 버스정류장이 누락되거나 도로·철도가 이상한 형태로 표시되고 골목이 사라지는 등 오류가 발생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불만이 쏟아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기간 데이터를 공급해 오던 젠린과의 계약 변경이 원인으로 꼽혔다. 이 과정에서 젠린은 경쟁력을 상실했고, 구글은 10년 넘게 쌓아온 데이터로 일본 내 지도 생태계를 장악했다.
그렇게 구글은 일본 내 자율주행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잡고 있다. 웨이모는 2025년 4월부터 일본 최대 택시회사 니혼코츠를 비롯해 현지 택시 호출 앱 운영사 고(GO)와 손잡고 미나토·신주쿠·시부야·치요다·주오·시나가와·고토 등 7개 구에서 데이터 수집하고 있다. 니혼코츠 소속 기사들이 웨이모 시험차를 수동 운전하며 도쿄 도심의 도로 환경을 반복 주행해 HD 지도·주행 데이터를 축적했다.
니콜 가벨 웨이모 사업 개발 및 전략적 파트너십 책임자는 올해 3월 도쿄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일본 철도의 오랜 전통과 웨이모의 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해 도쿄 모빌리티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고 자신하며 로보(무인)택시 상용화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국가 핵심 자산 공짜로 넘긴 꼴”
이처럼 구글은 중장기 미래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고정밀 지도 반출이 당장 네이버와 카카오의 출혈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단 국내 양대 플랫폼은 일상 맞춤형 서비스로 안방 지키기에 나섰다. 네이버맵은 방문자 리뷰를 연동한 실시간 맛집 예약에 네이버페이 결제까지 연결해 끊김이 없는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카카오맵 역시 1초 단위로 버스 위치를 실시간 추적하는 ‘초정밀 버스’와 목적지 도착 전 미리 알려주는 ‘지하철 하차 알림’ 등 한국인의 출퇴근 동선에 최적화한 서비스로 이용자들을 꽉 잡고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과 AI라는 미래 전쟁터에서 구글의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이 침투하기 시작하면 형세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대한공간정보학회는 고정밀 지도 반출로 향후 10년간 최대 197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플랫폼 업계는 이번 결정이 핵심 안보 자산을 밑바탕 삼아 혁신 서비스를 개발 중인 유망 기업들에 특히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했다. 더불어 조세 회피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의 역차별 환경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점유율이 문제가 아니라 미래 첨단 산업의 디지털 레일인 지도 데이터를 해외 대기업에 통째로 열어준 것이 문제”라며 “국내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은 시작부터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거대 공룡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세금은 다 내고 규제를 지키며 고전분투하는데 구글은 데이터센터조차 짓지 않고 수익은 싱가포르로 빼돌리면서 핵심 자산인 지도는 공짜로 가져간다”며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정부는 그냥 문을 열어줘 버린 꼴”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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