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중소기업들이 꼽은 해외진출 최대 장벽은 [CEO 110인 긴급진단]③
- 대기업은 '실시간 대응', 중소기업은 '사후약방문'
전쟁과 물류난에 수출길 막혀...'정보 주권' 확보 시급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K-중소기업에게 해외 시장은 성장을 위한 필수 탈출구이자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유일한 활로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글로벌 무대에 나선 우리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은 자본의 한계보다 더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다. 바로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대기업들이 실시간으로 리스크를 모니터링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동안, 정보 접근권이 제한된 중소기업들은 사태가 터진 뒤에야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경영만이 가능한 실정이다. K-중소기업은 단순한 자금난을 넘어 ‘정보의 부재’가 곧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비용으로 치환되는 구조적 모순을 겪고 있다.
‘정보 격차’가 만든 보이지 않는 장벽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에 가장 큰 고충인 시장 진입과 규제 대응 실패의 이면에는 심각한 정보 격차가 자리 잡고 있다. 대기업은 현지 법무법인과 컨설팅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노동법과 세무 체계·환경 및 인허가 규제를 모니터링하지만 중소기업은 공공기관의 단편적인 보고서나 포털 검색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최근 이노비즈협회가 이노비즈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진출에 대한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구 소재 화학업체인 B사의 사례가 정보 부족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B사는 중동사태 이후 원자재 가격 폭등과 수급 불능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제조원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생산량을 감축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B사 측은 “긴급 운전자금 지원과 함께 현장의 환변동 대응을 도우는 실무적인 정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지난 10년간 벤처기업의 수출 비중은 7~8%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다. 대다수 기업이 여전히 내수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경남의 제조사 N사 역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전쟁위험 할증료 증가 ▲제지 관련 원자재 조달 차질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가운데 ▲환율 부담까지 커지며 삼중고에 빠졌다. N사 관계자는 “당장 물건을 돌릴 수 있는 대체 국가에 대한 실시간 정보와 긴급 알선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고도 했다. 결국 중소기업이 해외에서 가로막히는 이유는 제품 경쟁력의 부족이 아니라 현지의 ‘보이지 않는 규칙’과 ‘급변하는 시장 변수’를 읽어낼 정보 주권이 없기 때문이다.
현장의 비명은 국내 벤처생태계가 겪고 있는 구조적 질환과 궤를 같이한다. 산업연구원(KIET)이 발표한 ‘한국 벤처생태계 담론 변화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벤처생태계는 지난 30여 년간 정부 정책 변화와 민간투자 확대 속에서 빠른 양적 성장을 경험해 왔다. 실제로 2023년 기준 벤처기업 수는 약 3만7000개에 달하며 고용 93만명, 매출 242조원이라는 외형적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보고서는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이 외형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내실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벤처기업의 영업이익률은 4.9%에서 2.3%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0.8%에서 1.3%로 하락해 이익 창출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됐다. 이는 제품 경쟁력의 문제라기보다 다양한 정보의 부재 속에서 인건비와 고정비 부담·고금리 등 구조적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전쟁에 공급망 단절…‘휴업’까지 검토
정보 비대칭의 폐해는 최근의 중동 정세와 같은 돌발 변수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글로벌 해운사와 대형 화주들은 위기 징후와 동시에 우회 노선을 선점하고 리스크를 분산한다. 하지만 정보망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운임이 폭등하고 선박 운항이 중단된 뒤에야 사태를 인지한다.
인천의 기계금속 업체인 H사는 현재 물류 지연과 운임 상승은 물론 ‘전쟁위험 할증료’라는 가혹한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H사 관계자는 “물류비 및 우회 운송비 지원도 급하지만 당장 쓰러지지 않기 위한 긴급 운전자금과 수출 보험·보증 확대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충북 소재의 B사 역시 공급망 단절이 기업의 생사를 어떻게 위협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중동발 전쟁 여파로 거래처 납품이 무기한 연기된 것은 물론 핵심 원재료인 합성고무 수급이 완전히 막혔다. 대체 공급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전무한 B사는 폭등한 대체 원재료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현재 ‘휴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 단계별 구조를 보면 문제가 더욱 명확하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벤처 성장의 핵심 구간인 업력 4~10년(56.5%→48.6%) 및 11~20년(31.5%→26.1%) 기업 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일정 단계까지는 성장하나 본격적인 스케일업(성장 단계) 국면에서 정보와 자금의 한계에 부딪혀 성장이 정체되는 ‘스케일업 병목’이 구조적으로 누적되고 있는 셈이다.
정보의 부재로 적기에 투자 회수를 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엑시트(Exit) 환경도 발목을 잡는다. 실제로 국내 인수합병(M&A) 및 피인수 경험 기업 비중은 각각 4.9%와 2% 미만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퇴로를 찾거나 후속 자본을 공급받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중소기업들이 해외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현지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을 사다리가 없기 때문”이라며 “향후 벤처 정책이 스케일업 및 엑시트 활성화를 축으로 재정비돼야 하고, 특히 데이터·텍스트 기반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 위험 신호를 선제적으로 탐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래야 실시간으로 정책과 시장의 담론 변화를 분석해 정보를 환류할 때 비로소 기업들의 정보 비대칭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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