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136개월 만의 흑자 골든타임…‘지방’ 못가면 도로아미타불 [K관광 ‘서울 독식’을 깨라①]
- ‘트리플 호재’ 탄 K관광…기초체력은 아직 ‘글쎄’
“방문객 66%가 서울만”…2·3차 ‘재방문’ 이끌어야
빗장 푸는 민관 플랫폼…‘손안의 대중교통’으로 지방 연결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대한민국 관광 산업이 역사적 변곡점에 섰다. 무려 1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던 ‘여행수지 적자’의 무거운 사슬을 마침내 끊어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여행수지는 2014년 11월 이후 1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현장의 시선은 환호보다 우려에 가깝다. 이번 흑자가 우리 관광 산업의 근본적인 기초체력(펀더멘털)이 강해져 이뤄낸 결실이라기보다는, 대외적 악재가 뜻밖의 반사이익으로 돌아온 ‘특수한 사례’라는 냉정한 분석이 지배적이다. 136개월 만에 찾아온 이 기적 같은 ‘골든타임’을 기회로 삼아 체질 개선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렵게 돌려세운 흑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다시 적자의 늪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11년 만의 반전, 발목 잡는 ‘서울 독식’
1분기 여행수지 흑자의 일등 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였다. 중동 지역의 전쟁 확산 우려가 최고조에 달하자, 불안감을 느낀 내국인 해외여행 예정자들이 대거 발길을 돌렸다. 이들이 선택한 대안은 국내 지방 여행지였다.
실제로 마이리얼트립 내부 데이터 기준, 2026년 1분기(1~3월) 국내 숙소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증가했다. 결제액 또한 증가하며 특히 연초 이후 전반적으로 우상향 흐름을 이어가고 있어 국내여행에 대한 관심과 실수요가 함께 확대되는 흐름이 확인됐다.
여기에 ‘K-컬처’의 폭발적인 외연 확장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1분기 중 개최된 BTS의 광화문 공연 등 글로벌 팬덤을 겨냥한 메가 이벤트가 맞물리면서, 전 세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이 쏟아낸 외화와 거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는 여행수지를 흑자로 돌려세우는 결정적 ‘한 방’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6년 1분기 방한 외래관광객 규모 공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방한 외국인은 총 476만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3% 증가한 수치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진 중인 외래객 3000만명 조기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압도적인 다수가 서울의 명동·홍대·성수동 일대를 중심으로 과밀하게 몰려 있다는 점이다. 고질적인 ‘서울 쏠림’ 구조다. 아무리 많은 외국인이 입국하더라도 이들이 서울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대한민국 관광 산업의 성장은 곧 물리적·공간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에어비앤비의 조사에서도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66%는 서울에서만 대부분의 일정을 소화했다고 밝혔다. MZ세대 방문객 중 42%는 서울 외 지역에 홈스테이와 같은 숙박 선택지가 더 많았다면 더 멀리 이동하거나 더 멀리 머물렀을 것이라고 했다.
이슬기 관광산업데이터분석랩 소장은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 감소, 환율, 중일관계 반사이익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상황이지만 이를 유지하려면 결국 중국·일본·대만 3대 시장의 지속적인 방문과 재방문이 핵심”이라며 “재방문 관점에서는 2·3차 방문부터 서울을 벗어나 지방 관광 거점으로 유도하는 종합·거시적인 전략을 고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교통과 인프라 ‘빗장’ 풀어야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서울에만 갇혀 있는 가장 큰 이유로 심리적·물리적 거리감을 꼽는다. 국내외 예약 시스템의 단절, 외국인 계정으로는 결제가 불가능한 제한적 금융 인프라 등도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서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와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이 소장 역시 “결국 접근성과 서비스 품질이 관건”이라며 “지방 관광 거점을 연결하는 가장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KTX는 좌석에 여유가 많지 않으며 서울과 부산 정도를 제외하면 타 교통수단과의 연계도 가까운 일본에 비해 비교적 어려운 편”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문제를 직시한 정부와 민간 여행 플랫폼들은 외국인의 ‘지방 접근성’을 높이는 전방위적 혁신에 사활을 걸었다. 외국인이 혼자서도 스마트폰 하나만 들면 대한민국 전역을 누빌 수 있는 ‘심리적 무장해제’ 상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철도와 버스 등 대중교통 예매 시스템의 전격적인 개방이다. 글로벌 여행 플랫폼 클룩(Klook)은 지난 4월 코레일과 손을 잡고 외국인 전용 실시간 철도 예매 서비스를 출시했다. 전 세계 20여개 언어와 40여개국의 통화 결제를 지원해 외국인이 자국어로 안방에서 KTX 좌석을 예매해 부산이나 경주로 떠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클룩이 서비스 오픈 이후(4월 20일~5월 11일) 승차권 예매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미국 이용객이 가장 높은 이용률을 보였으며 필리핀과 유럽 지역 이용객 순으로 집계됐다. 철도 승차권 예약이 활발하게 이뤄진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 상품 탐색도 함께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부산 지역 트래픽은 28% 증가세를 보였고, 특히 경주는 112% 늘었으며 대구 역시 23% 상승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오는 6월부터 민간과의 협력을 확대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등 외국인 전용 온라인 예매처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또 한국관광공사 지방 공항을 거점으로 한 현지 연계 마케팅을 강화하고, 내국인 위주로 진행되던 대규모 할인 행사인 ‘숙박 세일 페스타’를 외국인 관광객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유 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 또한 K-컬처 체험과 연계한 독창적인 지방 숙박 선택지를 다양화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소장은 “관광객 관점에서 도시 간 신속한 이동, 방문 도시 내에서의 주요 지점에 대한 편리한 접근이 중요하다”며 “관광숙박 및 음식점 등의 서비스품질 역시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에는 아직 수도권과의 격차가 다소 있고, 지역에 5성급 호텔이 아니더라도 기대에 부응하고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인 호텔 등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준호 클룩 한국 지사장은 “이제는 특정 여행지뿐 아니라 국내에서의 편리한 ‘이동성’이 관광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며 “특히 철도나 고속버스 등 지역 간의 이동 수단을 실시간으로 예매하고 언어 장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통 편의성이 갖춰질수록 서울 중심의 관광이 지역으로 확산돼 지방 관광 소비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클룩도 교통과 지역 여행 상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인바운드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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