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은퇴 없는 나라, 소외된 노인 세대 [이근면의 시사라떼]
- 평균 수명 84세 시대-사회 설계는 60세에 멈춰
선택이 없는 노후가 문제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이 뜨겁더니 이제 노인 적용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고 한다. 여론조사에서도 다수가 찬성한다 한다(노인계층에만 물어본 건 아니다). 게다가 어물쩍 정년연장까지 하려 한다. 이미 노인이 된 사람이 아니라 모두 노인 되기 전의 사람들의 기득권을 늘리는 행동이다. 노인 세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그 어디에도 없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니 자조적으로 대한민국은 노인이 없다. ′아니, 없어져야 하나?’라고들 한다.
한국의 디지털 환경은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한다. 자동화·무인화·키오스크의 천국이 되어있다. 은행 점포는 나날이 급감하고 있고 물건을 만져보고 골라 살 수 있는 오프라인 상점은 생존이 어렵다. 햄버거 사먹기조차 어려운 게 노인에게 닥친 오늘의 현실이다. 생활 환경 적응이 생존의 위협으로 등장했다. 과연 옳은 정책 방향일까. 맞다! 대세는 디지털, AI시대이다. 그런데 세상이 급변해도 이들을 보호하고 안내할 책임이 사회와 정치의 몫인데 그야말로 ‘노인권익보호당’이라도 만들어야 될 우리의 자화상이다. 여기에 노인 빈곤이 문제라고 너도 나도 모두 목소리를 높이는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 문제에는 입을 닫는다. 청년 일자리와 연계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높다.
일본의 선택 vs 한국의 방치
대한민국은 이미 ‘은퇴 없는 나라’다. 다만 우리는 그 현실을 제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의 생존 문제로 떠넘겨 왔다. 평균수명은 84세를 넘었지만, 사회가 허용하는 노동의 시간은 여전히 60세 전후에서 끊긴다. 은퇴 이후 20~30년의 삶은 국가의 설계 밖에 놓였고, 그 공백을 개인이 각자 버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 장면은 한국만의 특수한 풍경이 아니다. 일본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모습이 있다. 지하철 역사에서, 공공주차장에서, 관광지 입구에서, 심지어 동네 소규모 시설에서도 요금을 받거나 입장권을 발급하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동화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 자리에 사람을 남겨두었다. 특히 고령자를.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 사회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정책의 결과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이 내린 중요한 판단은 하나다.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것이 반드시 효율은 아니다”라는 인식이다. 무인화·자동화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일부 단순 업무를 ‘남겨두는 일자리’로 관리한다. ▲주차 요금 징수 ▲시설 출입 관리 ▲간단한 안내 업무 ▲지역 공공시설 관리 등이다. 이 일들은 생산성이 낮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노인 일자리 정책이자 사회 통합 비용으로 본다. 고령자가 노동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고, 고립과 우울을 예방하며, 의료·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까지 감안한 선택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 길을 택했는가. 우리는 자동화를 ‘무조건적인 선(善)’으로 여겼다. ▲무인 계산대 ▲무인 주차장 ▲무인 요금소 ▲무인 안내 시스템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그 결과 효율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그 자리를 대체할 노인의 역할은 설계하지 않았다. 자동화는 도입했지만, 전환은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노인은 일할 수밖에 없는데, 일할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남아 있는 일자리는 경비, 청소, 택배 분류 등 고강도·저임금 노동에 집중된다. 일본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배치된 ‘저강도 사회적 노동’과는 결이 다르다. 이는 문화 차이가 아니라 정책의 차이다.
한국 사회는 일하는 노인을 보면 안쓰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다르게 본다. “사회가 역할을 남겨두었다”고 인식한다. 같은 고령 노동이지만, 하나는 방치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설계된 선택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은퇴 없는 나라가 문제인가, 아니면 은퇴 이후의 역할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가. 일본은 은퇴 없는 사회를 전제로 삼고, 노동의 강도와 형태를 재설계했다. 한국은 은퇴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노인을 제도 밖으로 밀어냈다.
이 차이는 세대 갈등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노인이 일하면 “청년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고령자의 단순·관리·안내 노동이 청년의 전문·기술 노동과 충돌하지 않도록 구조를 분리했다. 경쟁이 아니라 분담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이제 한국도 선택해야 한다. 은퇴를 강요할 것인가, 아니면 선택 가능한 은퇴를 만들 것인가. 자동화를 무조건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 영역에서는 사람을 남겨둘 것인가. 효율만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볼 것인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은퇴 이후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소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노후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다. 둘째, 노인 일자리를 단기·구호성 사업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로 재정의해야 한다. 일본처럼 남겨둘 일자리, 조정할 노동, 완화할 강도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은 부담이 아니라 자원이고, 노동은 청년만의 권리가 아니다. 중장년은 자신의 노후를 개인의 문제로만 미루지 말고, 제도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청년 역시 은퇴 없는 사회가 곧 자신의 미래임을 직시해야 한다.
은퇴 없는 나라는 실패한 나라가 아니다. 실패한 것은, 오래 살게 해 놓고 그 삶을 준비하지 않은 사회다. 일본은 불완전하지만 준비했다. 한국은 아직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은퇴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선택이 없는 노후가 문제다.
이제는 AI시대의 진입기이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속도와 방향,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선택적 결정은 우리의 몫이다. 바로 자동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남길 것인가의 문제다. 그 선택을 미루는 순간, 은퇴 없는 나라는 연대 없는 나라가 된다. 그리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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