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앤트로픽이 불지핀 AI 업무 자동화 경쟁…‘기업의 하루’ 노린다[막오른 AI 3차 대전…전선이 바뀌었다]①
- 모델 성능 경쟁의 종언, 기업 ‘워크플로우’를 장악하는 자가 승리한다
클로드, 화이트칼라 핵심 파고들며 ‘주니어 대체’ 가속화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지난 3년간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을 지배했던 화두는 ‘누가 더 똑똑한 모델(LLM)을 만드느냐’였다. 벤치마크 점수 소수점 단위의 차이가 기업의 가치를 결정지었고 대중은 사람처럼 말을 잘하는 챗봇에 환호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전선(戰線)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빅테크들은 더 이상 인간과 대화하는 ‘기특한 챗봇’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기업의 가장 깊숙한 곳, 즉 ▲엑셀(Excel) ▲메일 ▲ERP(전사적자원관리) ▲보고서 ▲회의록 속으로 향하고 있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는 앤트로픽(Anthropic)이 있다. 앤트로픽은 최근 기업의 하루를 통째로 AI에 맡기는 ‘AI 업무 자동화’ 경쟁에 불을 지폈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도구를 조작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AI 에이전트’가 화이트칼라의 핵심 업무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제 AI 패권은 화려한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기업의 실무 워크플로우를 얼마나 깊숙이 장악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앤트로픽, 화이트칼라의 심장 금융마저 공략
앤트로픽이 내놓은 승부수는 ‘금융 서비스용 사전 구축 AI 에이전트’다. 이는 범용적인 챗봇이 아니라, 처음부터 특정 산업군의 워크플로우에 최적화된 ‘전문가형 에이전트’를 지향한다. 특히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 ‘클로드 3.5 소넷’에 탑재된 ‘컴퓨터 사용’ 기능은 에이전트 경쟁의 정점이다. 사람이 마우스를 움직이고 타이핑을 하듯 AI가 직접 화면을 보고 클릭하며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오가는 모습은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가상 동료’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앤트로픽은 최근 은행과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에서 하는 노동 집약적인 작업을 자동화하도록 설계된 10개의 사전 구축 AI 에이전트 템플릿을 출시했다. ▲기업 분석 및 리서치 ▲밸류에이션(가치평가) 검토 등 프런트 오피스 업무는 물론 고객확인제도 스크리닝과 월말 결산 자동화 같은 백 오피스 업무까지 아우른다. 이는 기존의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가 정해진 규칙만 따랐던 것과 달리, AI가 맥락을 이해하고 변수에 대응하며 업무를 완수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혁명이다.
해외 유수의 기업들은 이미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활용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는 클로드 에이전트를 도입해 신약 개발 초기 단계의 방대한 문헌 검토와 데이터 합성 업무를 자동화했다. 이전에는 수많은 연구원이 수개월간 매달려야 했던 논문 분석과 리포트 작성을 클로드 에이전트가 단 몇 분 만에 처리한다. 화이자는 이를 통해 연간 약 1만 6000시간의 연구 시간을 절감했으며, 이를 통해 얻은 여력을 창의적인 신약 설계 단계에 재배치하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인 브릿지워터는 클로드를 투자 리서치에 활용한다. 클로드는 수십 년간의 거시 경제 데이터와 기업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투자 매니저가 제시한 가설을 검증한다. 과거에는 주니어 분석가들이 며칠 밤을 새우며 엑셀과 씨름해야 했던 일을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수행하면서, 펀드 매니저들은 더 깊이 있는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기업 현장의 변화 배후에는 미국 정부의 치밀한 패권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AI를 단순한 기술 산업이 아닌 국가 안보 및 경제 패권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컴퓨팅 파워의 수직계열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칩스법(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엔비디아 등 핵심 하드웨어 공급망을 통제해 경쟁국의 추격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아울러 에너지 안보에도 상당한 공을 기울이고 있다. AI 모델이 거대화됨에 따라 ‘전력’이 곧 국력이 된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데이터센터 전용 원자력 발전(SMR 등)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며, AI 인프라를 국가 핵심 전략 자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독주를 위한 미국의 AI 패권 전략
미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빅테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자본을 투입하며 각자의 요새를 구축하고 있다. 오픈AI는 약 5000억달러(한화 약 745조원) 규모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추진 중이다. 이는 단순히 모델을 학습시키는 수준을 넘어 전 세계 모든 기업의 업무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AI 공장’을 짓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
구글은 자체 설계한 AI 반도체(TPU ‘트릴리움’)와 제미나이(Gemini) 모델을 수직 결합하고 있다. 특히 ‘프로젝트 자비스’ 프로토 타입을 통해 크롬 브라우저를 직접 조작하는 에이전트를 선보였으며, 전 세계 30억대 이상의 안드로이드 기기에 AI를 이식해 ‘일상의 OS’를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아마존은 최근까지 앤트로픽에 130억 달러(한화 약 19조3000억원)를 투자하며 강력한 우군을 확보했다. AWS 클라우드 위에서 기업들이 클로드를 활용해 맞춤형 에이전트를 구축하도록 유도하며 자체 AI 반도체 ‘트레이니움’을 통해 인프라 비용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고용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반복적인 문서 작업이나 데이터 정리를 위해 주니어 직원을 채용하거나 인턴을 활용했다면, 이제는 ‘클로드 유료 모델 구독권’을 부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실무자들 사이에서 클로드의 정교한 추론 능력과 방대한 문서를 한 번에 이해하는 능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일부 기업들은 신규 채용 대신 고성능 AI 에이전트 도입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물론 국내 대기업과 금융권 역시 앤트로픽의 클로드 도입에 적극적인 상태다.
새로운 AI 전쟁의 양상은 더 이상 대화창 속 화려한 답변에 주목하지 않는다. 누가 더 정확하게 엑셀 수식을 수정하고 누가 더 빈틈없이 월말 결산 보고서를 작성하며 누가 더 효율적으로 전사적 자원을 관리하느냐의 싸움이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의 AI 경쟁은 사실상 전초전이었다. 챗GPT 등장 이후 3년간은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한 B2C 시장, 즉 ‘누구의 챗봇이 더 똑똑한가’를 겨루는 단계였다”며 “그러나 이제 무대가 B2B로 넘어왔다. B2C에서는 사용자가 마음에 안들면 다른 챗봇으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반면 B2B는 다르다. 한 번 기업의 메일·문서·재무·ERP·코딩 워크플로우에 결합되면 전환비용이 폭발적으로 커진다”고 밝혔다.
이어 “앤트로픽이 금융서비스용 사전구축 에이전트를 내놓고 구글이 개인·업무 통합 에이전트를 추진하는 것은 모두 이 ‘기업 업무 운영체제’ 자리를 선점하려는 포석”이라며 “문제는 한국의 포지셔닝이다. B2B 단계는 한 번 락인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한국 기업과 공공이 미국 AI 스택에 깊이 결합될수록 ▲데이터 주권 ▲협상력 ▲산업정책 자율성은 동시에 약화된다. ‘AI 도입률을 얼마나 끌어올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느 영역까지 해외 모델에 의존하고 어디부터는 국내 역량으로 확보할 것인가’를 선별하는 전략적 판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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