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반도체 전도사’ 양향자가 본 호남 반도체…“4년 내 완공은 불가능, 전력 5배 확보해야”
- [호남 반도체 선택일까 선물일까]②
삼성 출신 반도체 전문가의 서남권 거점 평가
촘촘한 법체계 등 실행 로드맵 마련해야
[이코노미스트 김두용 기자] ‘삼성전자 출신 반도체 전도사’, ‘호남의 딸’.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자 반도체 AI(인공지능) 첨단산업특별위원장에 붙는 수식어다. 노트북 표면에 ‘아이러브AI’ 스티커를 붙이고 다닐 정도로 반도체 산업에 진심이다. 그는 이번 서남권 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과 관련해 누구보다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기도 하다. 10년 전 호남 반도체 거점 조성을 주장했지만, 당시 거센 비난에 부딪혔던 양 최고위원은 격세지감의 심정으로 가감 없는 견해를 밝혔다.
특별하지 않은 숫자, 급한 용인 벨트 우선순위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가 열린 다음 날인 6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양 최고위원은 불쑥 본인이 예전에 준비했던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지’와 관련한 자료를 내밀었다. 국가 관점에서 국토 균형 발전 달성을 위해 풍부한 재생에너지 활용이 가능한 호남 지역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조성하자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호남 대신 경기도 용인이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로 선정된 바 있다.
양 최고위원은 “송전 건설 회피와 전력손실 감소 등의 계통 편익과 재생에너지 출력제한 감소를 통한 화석연료비 절감 편익 등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을 2023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여러 차례 설명한 적이 있다”며 “당시 제안했던 내용들이 그대로 이번 ‘서남권 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에 포함됐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반도체 위원장을 하면서 다 정부에 보고했던 내용들이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천문학적인 투자 규모를 얘기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게 잡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양 최고위원은 10년 전 호남권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를 주장했지만 이를 철회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는 “2016년 1월 12일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됐을 때 천정배 의원과 경쟁하러 가면서 준비한 첫 번째 공약이 광주에 반도체가 와야한다는 것이었다. 광주에서 기아자동차가 100만대를 생산한다고 하는데 향후 내연기관으로만 가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다”며 “10년 후를 내다보고 반도체가 필요하다 판단해 삼성전자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시스템 반도체 또는 AI 반도체로 공약을 냈는데 당시 천정배·안철수·김동철 등 정치인들이 저를 공격했다. 삼성 출신이라 삼성의 팔을 꺾어 가져온다는 말이 나왔고, 삼성도 공격을 당해서 결국 철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시절 호남 반도체 공약을 접어야 했던 양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한 장면에 대해 “격세지감이라고 표현해야 하나”라며 아쉬움을 곱씹기도 했다.
삼성은 평택캠퍼스 및 용인 국가산단을 비롯한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 등에 2030조원을, 호남의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425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면에서 수도권 비중이 압도적이다.
양 최고위원은 “호남권 반도체 공장은 부지를 마련하고 기반 시설 계획 등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용인은 다르다”며 “전력과 용수 등 인프라가 갖춰진 용인은 금방 예측이 되고, 공사 속도도 높일 수 있다. AI시대 도래로 급증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에 대응하기 위해 용인 클러스터부터 우선적으로 완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재명 정부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4년 안에 완공한다고 했는데 새로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법안도 필요하고, 지역 갈등 중재와 지역의 보상 문제 등 해결해야 이슈들이 많다 보니 삼성도 언제까지 하겠다는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호남권의 투자 규모는 발표했지만 착공 시점에 대해서는 용인 이후의 새로운 클러스터 조성을 준비해야 할 시점도 앞당겨졌다는 내용만 공개했다.
‘실행 로드맵’과 촘촘한 법체계 핵심
지난 6월 29일 광주에 다녀온 양 최고위원은 호남 지역은 ‘축제 분위기’라고 전했다. 본인이 반도체 유치 공약을 내세웠던 10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대한 실행력에는 의문을 표했다.
그는 “호남권의 반도체 벨트 조성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실행력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며 “4년 안에 완공하겠다는 계획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패는 ‘실행력’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행력에서 중요한 5가지 요소를 꼽았는데 “전력과 용수 다음은 산단 환경, 인재, 사업논리를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재생에너지가 많다고 해도 그것을 반도체 전력으로 활용이 가능한지 들여다봐야 한다. 고품질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느냐가 핵심인데 보통 지금 쓰고 있는 전력의 5배를 확보해야 낙뢰 등 변수에도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남은 가뭄 취약 지역으로 평가받아 공업 용수 공급이 매우 중요하다. 양 최고위원은 “반도체 단지에 들어가는 물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제일 중요한 건 불순물을 제거해 초순수 물을 공급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시스템을 갖춘 인프라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타이밍 측면에서 산단 환경 조성도 중요하게 내다봤다. 그는 “결국 인허가라든지 송전망이든지 산단 조성이 늦어져 버리면 타이밍을 못 잡고 향후 수익구조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인재 유입과 관련해서는 핵심은 ‘정주 여건’이라는 판단이다. 양 최고위원은 “인력 문제는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되고 정주 여건이 다 갖춰지게 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사업 논리를 강조하며 “이번 프로젝트 참여는 SK는 ‘미국 공장 허가’, 삼성은 ‘용인 산단 고속 완공’ 조건을 얻기 위한 조건부 투자라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라며 “정부와 지방정부가 미국 등 타국보다 공장 건설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 법으로 로드맵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해법도 제시했다. “법으로 로드맵 일정을 관리하는 것도 용인 국가산단 때 했던 이야기다”는 그는 “가령 전력·용수 패스트트랙 법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용인 국가산단을 하면서 법안을 정말 많이 냈고, 법으로 지원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고 제언했다.
이어 “인허가 통합 창구가 필요하다. 환경·산업·국토부를 비롯해 지자체와 전력, 수자원 인허가가 따로 움직이는 상황”이라며 “대통령 직속 기구 아래 실질적 조정 권한을 가진 원스톱 창구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사이클에 대비한 정책 금융 지원의 ‘장기 설계’ 입장도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15년 주기로 글로벌 산업지도가 바뀌었는데 앞으로는 10년 사이클로 세계 산업지도 변화의 바람이 몰아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반도체는 1, 2년 투자하는 게 아니라서 10년, 20년 예측 가능성 있는 금융 세제 지원과 세액 공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책 금융이 정권에 따라 흔들리면 안 된다. 기업이 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면 최소 10년 단위로 제도 안정성을 줘야 하고, 미리 법적인 장치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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