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스타일 없는 것이 스타일”...‘마뗑킴‘이 발명한 새로운 옷의 문법 [허태윤의 브랜드스토리]
- 매장이 아니라 콘텐츠로 국경을 넘었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라
[허태윤 칼럼니스트] 서울 명동역 6번과 7번 출구 사이,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참을 줄 서 있는 3층짜리 흰 건물이 있다. 명동의 화장품 로드숍과 K-팝 굿즈 매장 사이에서 유독 결이 다른 그 공간의 이름은 마뗑킴(Matin Kim)이다. 일본인 여성이 친구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매장을 가리키고, 대만에서 온 듯한 무리가 쇼핑백을 들고 인증사진을 찍는다. 매장 방문객의 90%가 외국인이고 월 매출은 20억원에 이른다. 한국 20대 여성의 옷차림이 궁금하면 이곳에 와 보라는 말이 일본 SNS에서 돌고 있다는 풍문은 더 이상 풍문이 아니다.
2015년 자본금 30만원, 동대문에서 옷을 사다 블로그에 올리던 한 여성의 부업으로 출발한 이 브랜드가 2025년 매출 2000억원을 넘기게 된 과정은 이제 마케팅 강의의 단골 사례다. 디자이너 김다인의 인스타그램 감각, 한정판 드롭 전략, 더현대 서울 팝업의 대박 신화. 그러나 이 익숙한 서사만 반복해서는 마뗑킴이 던지는 진짜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정작 마뗑킴의 폭발적인 성장은 창업자 김다인이 2023년 10월 대표직을 내려놓고 새 브랜드 다이닛(Deinet)을 시작한 이후에 일어났다. 사임 직전 해인 2022년 매출 500억원이었던 마뗑킴은 2024년 1500억원, 2025년 2000억원을 넘겼다.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가 창업자와 함께 사라지는 오랜 공식을 마뗑킴은 어떻게 뒤집었을까.
팬덤이 스타일을 정의한다
마뗑킴 운영사 하고하우스의 이준성 전략 디렉터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인상적이다. “마뗑킴에는 대표적인 패션 스테이트먼트가 없습니다. 일관된 스타일도, 비밀 공식도, 상징적인 패브릭이나 봉제 패턴도 없습니다.”
보통 브랜드라면 치명적인 약점일 이 문장은 이상하게도 마뗑킴의 가장 정확한 정의에 가깝다. 비슷한 결의 디자이너 브랜드는 수없이 많았지만, 마뗑킴처럼 자리 잡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뗑킴은 특정 스타일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스타일이 결정되는 방식 그 자체를 새롭게 짠 브랜드였다.
그 방식은 단순하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38만 팬들의 의견을 모은다. 어떤 색을 보고 싶은지, 어떤 아이템을 다시 출시해 달라는지, 어느 나라에서 출시되길 원하는지 묻는다. 회사는 “다수가 원했든 소수가 원했든”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제안을 골라 컬렉션에 반영한다. 자기 의견이 옷이 되어 매장에 걸리는 경험을 한 팬들은 다음 시즌에 더 큰 목소리로 돌아온다. 이것이 마뗑킴이 발명한 새로운 옷의 문법이다. 디자이너가 일방적으로 제안하고 소비자가 수용하는 전통적인 패션의 위계가 아니라, 팬덤이 스타일을 정의하고 브랜드는 그것을 정교하게 번역하는 구조다.
이 구조는 한국 패션 시장의 빈 공간에 새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럭셔리도, 패스트패션도, 디자이너의 페르소나에 기댄 컨템퍼러리 브랜드도 아닌 팬덤이 함께 빚어 가는 ‘K-스트리트웨어’라는 자리다. 글로벌 매체 WWD가 마뗑킴을 ‘Seoul streetwear’로 호명하고, 코치(Coach)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가 “전통적인 패션 코드를 자기 방식으로 재맥락화하는 오늘의 세대”라며 협업을 청한 것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장의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 자체를 새로 만들어 낸 것. 이것이 마뗑킴이 일군 카테고리의 창조다.
창업자가 떠나도 본질은 계승된다
대부분의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는 창업자라는 한 사람의 감각에 매여 있다. 창업자가 지치거나 떠나면 브랜드도 함께 흐려진다. 한국 패션이 K-팝이나 K-드라마처럼 글로벌 산업으로 도약하지 못한 구조적 한계가 여기 있다. 마뗑킴은 이 고리를 끊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마뗑킴의 본질이 김다인이라는 한 사람의 감각이 아니라 팬덤과 대화하는 방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본질이 시스템에 있으면 사람이 바뀌어도 본질은 흐려지지 않는다.
2021년 회사를 인수한 하고하우스는 이 진실을 일찍 알아챘다. 온라인 100% 의존 구조를 오프라인 60개 매장망으로 분산하고, 의류 일변도였던 매출 구조를 의류와 액세서리 5대 5 구조로 재편했다.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우빈이 김다인의 자리를 메웠지만 팬덤은 흔들리지 않았다. 팬들이 사랑한 것은 김다인의 개인 감각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가 옷이 되어 돌아오는 그 경험 자체였기 때문이다.
마케터들이 가져가야 할 첫 번째 질문은 여기서 나온다. 우리 브랜드의 본질은 창업자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가, 아니면 고객과 주고받는 대화의 구조 안에 있는가. 후자만이 시스템으로 이전될 수 있고, 시스템으로 이전된 본질만이 창업자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해외 진출의 공식도 마뗑킴은 거꾸로 갔다. 한국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은 그동안 매장부터 깃발처럼 꽂고 보는 방식이었다. 마뗑킴은 정반대였다. 2024년 말 미국 코치와의 한정판 협업,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 광고, 34개국을 잇는 대한항공 133편 기내 광고,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를 내세운 캠페인이 먼저 풀렸다. 그 결과 협업이 시작된 2025년 1월 이후 마뗑킴 해외 웹사이트 방문은 218%, 해외 매출은 207% 증가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하고하우스는 미국, 영국, 멕시코, 폴란드의 인플루언서 400명과 협업한 SNS 캠페인을 진행했고, 누적 조회 수 2000만회와 좋아요 82만개를 기록했다.
이준성 디렉터는 한 인터뷰에서 솔직히 털어놓았다. “사실 우리는 한국 밖에서 마케팅을 거의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브랜드가 SNS에서 알아서 입소문이 났더군요.”
도쿄 시부야 1호점은 개점 사흘 만에 4000여명이 방문해 3억2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마뗑킴은 패션 브랜드 최초로 APEC 정상회의 공식 협찬사로 선정됐다. 콘텐츠로 먼저 마음을 점령한 뒤 매장이 그 마음을 받아 내는 구조. 이것이 K-콘텐츠의 글로벌 동력 위에 K-패션이 비로소 올라타는 방식이다. 디지털 시대에 브랜드의 국경은 매장이 아니라 콘텐츠가 먼저 넘는다는 사실을 마뗑킴은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줬다.
마뗑킴의 이야기는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한다. 우리 브랜드가 시장에 더해 준 것은 새로운 상품인가, 아니면 새로운 옷의 문법인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낸 브랜드만이 창업자를 넘어 살아남고, 자기 나라를 넘어 흐른다.
명동 매장 앞에 줄을 선 외국인들의 손에 들린 그 흰 쇼핑백 안에는 옷 한 벌이 아니라 한국이 만든 새로운 자기표현의 문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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