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약통장 무용론]②
계약금만 수억원…고분양가·대출 규제 겹쳐
“청약통장 해지 말아야…1인가구 위한 제도보완 필요”
[이코노미스트 김윤주 기자] 청약 당첨이 더 이상 내 집 마련의 종착점이 아닌 시대가 됐다. 서울 주요 단지 분양가가 20억~30억원에 육박하면서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 마련 부담도 크게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청약시장마저 현금 동원력이 높은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첨은 됐는데”…계약금만 수억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서울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당 1766만1000원으로 집계됐다. 3.3㎡ 기준 약 5828만원 수준이다. 이는 전월(1660만6000원)보다 6.35% 오른 수치로, 서울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과거에는 청약 당첨 자체가 ‘내 집 마련 성공’으로 여겨졌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았고 중도금 대출도 비교적 원활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을 중심으로 분양가가 급등하면서 청약 당첨 이후 자금 마련 부담이 크게 커졌다.
실제 서울 주요 분양 단지 분양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분양에 나선 서울 동작구 흑석동 ‘써밋 더힐’은 전용면적 84㎡ 기준 최고 분양가가 29억7820만원에 달한다. 같은 시기 공급된 대방동 ‘아크로 리버스카이’ 역시 전용 84㎡ 최고 분양가가 27억9580만원 수준이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과 수도권의 평균 분양 가격 역시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올해 4월 전국에서 신규로 분양된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당 622만6000원으로 전월(611만4000원) 대비 1.83%, 전년 동월(575만5000원) 대비 8.18% 상승했다. 3.3㎡ 기준으로는 약 2058만2000원이다.
수도권의 ㎡당 평균 분양가는 1051만8000원으로 전월(1000만6000원) 대비 5.12%, 전년 동월(875만2000원) 대비 20.18% 상승했다. 3.3㎡ 기준으로는 3477만원 수준이다.
향후 분양가 상승세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지연 부동산114 리서치팀 책임연구원은 “전국 민간 아파트 3.3㎡당 분양가격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입지적 강점을 갖춘 단지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향후 공사비 상승으로 추가적인 분양가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서울의 입주 물량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핵심 입지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출 규제에 막혔지만 “청약통장 포기할 필요는 없어”
문제는 청약 당첨 이후다. 분양가 20억원 아파트의 계약금 비율이 20%라면 계약 단계에서만 4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여기에 중도금과 잔금, 취득세 등을 고려하면 실제 필요한 자금 규모는 훨씬 커진다.
가계대출 규제도 실수요자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관리 대상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1.5%로 설정했다. 지난해 증가율(1.7%)보다 낮은 수준으로, 대출을 통한 주택 자금 마련 여건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가계대출 관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을 포함한 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도 강화됐다.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최대 2억원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
분양가가 20억원을 넘어서는 서울 주요 단지의 경우 수억원대 현금을 보유하지 않으면 청약 자체가 쉽지 않은 구조가 된 셈이다. 청약시장이 사실상 현금 동원력이 높은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청약 당첨 이후 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청약통장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다만 전문가는 청약통장 자체를 당장 해지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분양가가 높아지고 시세차익이 큰 단지일수록 고가점 가입자에게 당첨이 집중되면서 ‘어차피 당첨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이 청약통장 감소의 주요 원인”이라며 “고분양가와 이른바 ‘로또 청약’ 구조가 청약 포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청약통장을 해지하면 향후 청약 기회가 왔을 때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쉬운 선택이 될 수 있다”며 “청약은 당첨 직후 입주하는 구조가 아니라 통상 3~4년 뒤 입주하는 만큼 자금을 마련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통장은 유지하면서 현재 시장에서 매수 가능한 주택을 함께 검토하는 전략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청약시장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현금 장벽’에만 그치지 않는다. 자금 문제뿐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와 맞지 않는 청약제도 역시 한계로 지목된다. 1인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청약제도는 여전히 부양가족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1인 가구는 2015년 약 500만 가구에서 지난해 800만 가구 수준으로 늘어났지만 청약제도는 여전히 부양가족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1~2인 가구가 고가점자와 경쟁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나 무주택 기간에 대한 점수 상한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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