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고점 불안’에 반도체주 ‘털썩’…美 주식·채권·금 동반 급락
- 브로드컴이 쏘아 올린 ‘반도체 피크아웃’ 의구심…AI·메모리 업종 직격탄
고용 호조에 연준 금리 인상 기대감↑…트럼프는 인하 압박
美 5월 비농업 일자리 17.2만개 순증, 예상치 2배 수준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연일 상승세를 기록했던 미국 반도체 관련주가 5일(현지시간) 급락했다. 주가가 고점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더해 미국의 고용시장 호조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확산하면서 뉴욕증시와 미국채, 국제 금값까지 동반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고용 호조에도 주가가 하락하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지만, 금융 시장에서는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분위기다.
브로드컴발 ‘반도체 피크아웃’ 공포에 기술주 폭락
이날 뉴욕증시 급락은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칩 제조사와 메모리 업체 등 최근 강세장을 주도했던 업종이 주도했다. 미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로 예상되는 스페이스X의 상장을 앞두고 반도체 고점 우려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 3일 기대치를 밑돈 실적을 발표했던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이 연간 AI 반도체 매출 실적 전망을 상향하지 않으면서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견인한 반도체 호황이 정점에 달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시에 확산했다. 브로드컴은 전날 12.6% 급락한 데 이어 이날도 7.92% 하락하며 이틀 연속 급락세를 이어갔다. 이는 반도체 종목 전반의 매도세로 번졌다.
▲메모리 업체 가운데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13.25% 하락했고 샌디스크(-11.39%)·웨스턴디지털(-11.06%) 등도 두 자릿수대 낙폭을 보였다. ▲인텔(-11.28%)·AMD(-10.86%)·램 리서치(-9.85%) 등 반도체 업체들도 큰 폭으로 주가가 내렸다. ▲주요 거대기술기업(빅테크) 가운데서는 엔비디아(-6.20%)·테슬라(-6.56%)·아마존(-3.06%)·마이크로소프트(-2.66%)가 크게 떨어졌고, 메타(-5.51%)는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에 하락했다.
이에 따라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날보다 1121.53포인트(-4.18%) 내린 2만5709.43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200.63포인트(-2.65%) 내린 7383.68,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695.15포인트(-1.35%) 내린 5만866.78에 거래를 마쳤다.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주간 기준 9주 연속 상승 행진을 멈췄다.
BMO 프라이빗웰스의 캐럴 슐리프 수석 시장전략가는 “금리 영향도 있지만 다가오는 기업공개(IPO)를 위해 일부 자금을 대기해 두려는 이유일 수도 있다”며 “기술주는 지난 3개월간 10% 후반대 상승률을 보였다는 점에서 일부 조정은 합리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금 선물은 전장 대비 3.1% 내린 온스당 4365.3달러(667만8909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부터 고공 행진을 지속하며 올해 초 온스당 5500달러(841만5000원)대까지 올랐던 금 선물 가격은 이날 하락으로 연초 수준으로 떨어지며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반면 달러화 가치는 급등했다. ICE선물거래소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한 달러 인덱스는 뉴욕증시 마감 무렵 전장 대비 0.67% 상승한 100.8을 기록했다. 달러 인덱스가 100을 넘어선 것은 지난 4월 이후 2개월 만이다.
국제 유가는 미국과 이란 간 긴장 완화 기대감에 하락했다.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 대비 2.0% 하락한 배럴당 93.09달러(14만2428원),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장보다 2.7% 하락한 배럴당 90.54달러(13만8526원)에 각각 마감했다.
미국 주식시장 충격의 배경에는 높아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자리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은 오는 12월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이상 인상할 확률을 하루 전 약 50%에서 이날 약 70%로 상향 반영했다. 이번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96.2%로 전날 예상치(95.4%)보다 0.8%포인트 높아졌다.
5월 고용 지표 호조…트럼프 “성장이 꼭 인플레이션 의미하는 것 아니다”
이날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미국의 5월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7만2000개 증가했다는 사실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전망에 힘을 보탰다. 당초 전문가 예상치(다우존스 집계 기준)는 비농업 일자리가 8만개 정도 증가할 것으로 봤지만, 이를 크게 웃돈 것이다. 인플레이션 문제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연준 입장에서 고용 호조는 ‘금리를 올릴 수 있는 경제 체력’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더 올려도 버텨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 지표들도 일제히 상향 조정됐다. 노동부는 지난 4월의 일자리 증가폭을 기존 11만5000개에서 17만9000개로, 3월 수치는 18'만5000개에서 21만4000개로 각각 수정했다. 두 달간의 순증 규모에서만 9만3000개의 일자리가 추가된 셈이다. 별도 가계 조사를 통한 5월 실업률은 4.3%로 변동이 없었다.
이러한 고용 창출 호조는 지난 2월 28일 시작된 트럼프발 미·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와중에 나온 결과다. 미국 가솔린 가격이 갤런당 4.5달러(6885원)까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2월 2.4%에서 3월 3.3%, 4월 3.8%까지 상승해 경기 둔화 우려가 제기됐음에도 고용 상황은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고용 지표 호조에도 주식 시장이 하락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금 발표된 것처럼 훌륭한 고용 보고서가 나왔으니 주식 시장은 하락할 게 아니라 상승해야 한다”며 “성장이 꼭 인플레이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나라가 위대해질 수 있겠느냐”고 적었다. 이는 경제 성장이 반드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에둘러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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