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반도체 쏠림에 얼어붙은 IPO 시장…하반기 훈풍 올까 [IPO의 새 지평을 열다]⑤
- [IPO의 새 지평을 열다]⑤
상반기 신규 상장 21곳 그쳐…반도체 쏠림 등 영향
공모 투자 심리는 살아있어…제도 불확실성 해소가 변수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이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들어 신규 상장 기업 수와 공모금액이 모두 급감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맞먹는 수준의 침체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중심의 증시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IPO 시장에는 온기가 전달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대형주로의 자금 쏠림 현상과 대어급 기업 부재, 강화된 상장 심사 기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다만 하반기에는 제도 변화와 함께 상장을 미뤄왔던 기업들이 다시 시장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IPO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올해 상장 기업 공모액, 전년 比 반토막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총 21개사(스팩 제외)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8개사와 비교하면 44.7% 감소한 수준이다. 공모금액 역시 지난해 2조1412억원에서 올해 1조474억원으로 51.1% 줄었다.
상장 시장 위축은 5월 들어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 5월 신규 상장 기업은 3곳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9곳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코스피 시장의 IPO 한파가 더 심한 모습이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LG씨엔에스·서울보증보험·씨케이솔루션·달바글로벌 등이 잇따라 상장하며 공모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올해는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사실상 유일한 코스피 신규 상장 사례로 꼽힌다.
연도별 흐름으로 봐도 올해 IPO 시장 침체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5월까지의 상장 건수는 최근 10여 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으로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2020년에도 같은 기간 신규 상장 기업은 20곳을 기록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자본시장이 위축됐던 2022년과 2023년에도 각각 37곳, 45곳의 기업이 상장에 성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IPO 시장의 부진은 더욱 뚜렷하다.
시장에서는 최근 국내 증시의 극심한 쏠림 현상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투자 자금 상당수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AI 반도체 대형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어급 기업의 부재도 IPO 시장 침체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통상 공모시장은 대형 기업의 상장을 계기로 투자 심리가 살아나고 관련 기업들의 상장도 연쇄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올해는 시장 분위기를 주도할 만한 초대형 IPO가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상장 제도 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최근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반주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복상장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상장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 보호를 강조하면서 과거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추세다.
정책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IPO 시장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기업 계열사의 상장 문턱이 높아지면서 과거 IPO 시장의 핵심 공급원이었던 기업집단 계열사들의 상장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LS그룹 미국 계열사인 에식스솔루션즈는 올해 초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지면서 상장 예비심사를 철회했다. 시장에서 대어로 평가받던 SK에코플랜트 역시 IPO 대신 재무적투자자(FI) 지분 매입 방안을 우선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J올리브영 또한 중복상장 규제 영향 등으로 상장 가능성이 낮아진 상황이다.
강영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복상장 및 강화된 심사 규제 등 관련 각종 이슈로 대어급 종목과 절대적 상장 종목 수가 적어지며 공모액은 현저히 부족해져 공모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며 “대어급 종목 부재에 따른 코스닥 중소형주로의 수급 집중에 따른 희소성 프리미엄 효과가 지속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상장 줄었지만 ‘공모주’ 경쟁력은 여전
올해 상반기에는 IPO 시장이 얼어붙어 있지만 하반기 시장 전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5월 상장한 기업들의 일반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월평균 청약 경쟁률은 각각 2664대 1, 1274대 1에 달했다. 코스닥 중소형주인 코스모로보틱스·폴레드·마키나락스 등 세 기업 모두 상장 당일 종가 기준 수익률은 300%를 넘는 등 투자 심리가 살아있는 모습이다. 상장하기에 투자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장은 아니라는 게 증권업계의 판단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하반기 들어 IPO 시장이 반등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상장 제도 개선과 심사 절차 정비에 나서면서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상장을 미뤘던 기업들이 제도 변화 이후 다시 증시에 도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코스피 강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반도체만 아니라 다양한 업종으로 지수 상승 훈풍이 확산한다면 IPO 시장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적용될 전망이다. 기업가치 산정의 기준이 되는 시장 밸류에이션이 높아질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상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IPO 시장은 단순한 투자심리 위축보다 제도 변화에 따른 관망세가 더 크게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지수 변동성과 제도 변화의 불확실성이 지나면 하반기에는 공모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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