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피알 ‘김병훈 매직’에 없는 둘. "사람, 그리고 기술"
- 인사 철학·조직 운영·R&D 역량 강화 목소리
초고속 성장한 에이피알, 시스템 경영 시험대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한때 K-뷰티 업계에는 ‘차석용 매직’이라는 표현이 회자되곤 했다. 생활용품 기업이었던 LG생활건강을 글로벌 뷰티 대기업으로 키운 차석용 전 부회장의 경영 성과에서 비롯된 수식어다.
K-뷰티가 글로벌 주류로 올라선 2026년, 시장의 시선은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에게 또 다른 ‘매직’의 가능성을 투영하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에이피알은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와 뷰티 디바이스 ‘에이지알(AGE-R)’을 앞세워 창업 10여 년 만에 매출 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며 K-뷰티 ‘빅3’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다만 현장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에이피알이 초고속 성장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표를 중심으로 한 소수 초기 창업 멤버 주도 구조를 넘어 조직 체계를 고도화해야 할 단계라는 것이다. 특히 인사 철학과 조직 운영 방식, 연구개발(R&D) 투자 및 실행 전략에는 더욱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에이피알에 ‘사람’의 무게는 얼마인가요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조직의 성장 공식도 달라져야 한다. 창업자의 탁월한 개인기가 기업의 성장을 이끈 이후에는 구성원과 조직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코노미스트]가 만난 에이피알의 전·현직 직원들은 회사의 강점으로 창업주 및 임원의 빠른 실행력과 성장세를 꼽았다. 그러나 경직된 조직 문화에 대해서는 부담을 토로했다.
현직 직원 A씨는 “조직원 대부분이 20~30대 초반으로 상당히 젊은데 위계질서가 무척 강하다”고 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근속 기간이 짧아서 입사 1~2년 선배가 팀장 역할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도 이제 배워가는 단계인데도 마치 10년 차처럼 후임들을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젊은 꼰대’ 문화도 언급됐다. 젊은 꼰대란 자신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라고 믿는 2030세대의 젊은 리더가 조직 운영도 자기 방식으로만 관철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A씨는 “외부에서는 상당히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조직으로 보는데 실제로는 전혀 자율적이지 않다. 극소수 임원급에 결정권이 몰려있고, 다소 과할 정도로 성과 중심인 곳”이라고 했다.
인사 운영 방식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에이피알은 서울 본사와 평택·가산 등지에 약 10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직원 B씨는 “함께 울고 웃었던 동료가 퇴사한다고 해도 딱히 붙잡지 않는다. 새로 입사한 구성원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에이피알의 이런 분위기는 업계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국내 뷰티 기업의 한 관계자는 “최근 공석이었던 한 부서의 팀장급 직원을 채용했는데 직함은 3개월 뒤 ‘정착 여부를 판단한 뒤’ 부여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화장품 원자재 공급사의 한 관계자는 “다들 팀장직 충원으로 짐작하고 있는데 그 사람의 업무 수행을 지켜본 뒤 팀장직을 줄지 말지 결정한다는데 과연 해당 인사가 어디 나가서 체면이 서겠는가. 직책은 단순한 계급이 아니라, 대외 소통과 신뢰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전직 직원 C씨는 에이피알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고백했다. 그는 “퇴사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이나 피드백이 다소 부족했다고 느껴졌다”며 “조금 더 따뜻한 정리 과정이 있었다면 아쉬움이 덜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의 지속 성장은 결국 사람의 축적에서 나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말이 돈다는 것 자체가 에이피알의 조직 운영 방식이 변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전반적으로 직원을 부속품이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 대하는 따뜻한 배려, 그리고 경험이 쌓이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겉핥기식 R&D, 넘어야 할 숙제
연구개발 투자 역량 역시 에이피알이 넘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현재 에이피알 시가총액은 약 16조원으로 아모레퍼시픽을 웃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연간 매출이 2조원 후반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만큼 곳간도 두둑하다.
에이피알은 글로벌 퍼포먼스 마케팅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나비고 마케팅에 따르면 에이피알은 2025년 미국 아마존 뷰티 카테고리에서 브랜드 점유율 7.1%로 3위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는 14.1%로 1위에 올랐다.
에이피알이 집행한 광고선전비는 지난해 2667억원으로 매출의 17.5%를 차지했다. 업계는 과감한 광고선전 투자가 에이피알의 핵심 성장 동력이라고 평가한다.
문제는 연구개발(R&D) 투자다. 에이피알의 지난해 경상개발비는 약 120억원으로 전년 대비 240% 늘었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등 주요 뷰티 기업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에이피알은 화장품 카테고리를 전량 ODM·OEM(제조자개발생산·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업에 의존한다. 그러나 전통 뷰티 기업들은 수십 년간 연구소와 전문 인력을 축적하며 핵심 기술을 내재화해 왔다. 핵심 원천기술이 없는 뷰티 기업은 결국 브랜드 가치를 잃고 트렌드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이피알은 지난해부터 자체 효능 평가 인프라를 확대하고 의료기기 분야 연구개발 인력을 늘리는 등 보완에 나서고 있다. 뷰티 디바이스 연구개발 조직 ADC(APR Device R&D Center)를 중심으로 인력 확충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뷰티 디바이스를 연구 및 개발, 상용화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은 상상 그 이상”이라며 “굴지의 뷰티 기업과 ODM·OEM 기업들이 국내외 유수 연구소 및 기관과 협업하며 힘들게 신규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성공한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기술 축적이다. 마케팅이 시장을 여는 힘이라면, 기술은 시장 지위를 유지하는 힘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이피알의 성공을 부정하는 시각은 시장에 거의 없다”며 “지속가능한 에이피알을 위해서는 대표부터 앞장서 따뜻한 사람의 온도와 기술이 축적되는 구조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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