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환율 급등' 발등에 불 떨어진 외환당국...꺼내들 카드는?
- 공식 구두개입, 16년 만에 외환공동검사…간접 압박 수위 최고조
직접 개입은 역효과 커, ‘기준금리 인상’ 지켜봐야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외환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당국은 연일 강도 높은 경고성 메시지를 내놓으며 시장 심리 통제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당국이 꺼내 들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카드가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윤경수 한국은행 국제국장과 이형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지난 8일 ‘외환당국 메시지’를 내고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변동성과 일방향의 쏠림을 결코 용인하지 않고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환당국이 우려의 메시지를 여러 번 내놨지만, 공식 구두개입은 지난달 22일 이후 올해 두 번째다. 수출 호조와 경제 성장률 전망치 상향, 주식시장 상승세 속에서도 환율이 과거 외환위기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韓 직접 개입 역효과 우려…역시그널 리스크
10일에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국내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외환공동검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구두개입으로 환율이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1500원 선에서 머무는 상황이 이어지고 변동성이 크다는 평가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이 투기성 거래가 있었는지 살펴본다는 것이다. 두 기관이 외환공동검사에 나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급락했던 2010년이 마지막이었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번 조사에 대해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한 간접적 시장 개입 방식의 일종으로 평가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외환시장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환율이 안정되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이 우리나라 주식시장 야간 거래를 미국이나 유럽 시간에 맞춰서도 운영할 수 있도록 개편 방침을 언급한 것 역시 자본시장 인프라를 넓혀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특정 시간대에 매수·매도세가 몰려 환율이 튀는 변동성 리스크를 차단하려는 다변화 전략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당국이 쓸 수 있는 강력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고 해석하고 있다. 환율 급등기에 구두개입과 간접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시장에 직접 달러를 풀어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이른바 ‘서학개미’의 달러 환전 수요가 환율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고, 국내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 현지에 쌓아두고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압박이 달러를 국내로 끌어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시중에 달러를 대거 푸는 직접 개입(현물환 매도)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직접 개입은 오히려 잃는 것이 많은 패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국제 사회의 시선이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환율보고서를 통해 주요 교역국의 외환시장 개입 여부를 면밀히 모니터링한다. 미국이 2016년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을 명확히 한 교역촉진법을 발효한 이후 한국은 줄곧 관찰대상국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과 교역이 많은 20국에 대해 매년 두 차례 외환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지 평가하고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하면 ‘심층분석국’,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보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2023년 11월 환율 관찰대상국에서 빠졌지만, 이듬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세 차례 평가에서 다시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만약 한국 정부가 환율을 특정 수준으로 묶어두기 위해 대규모 달러 매도 등 개입을 감행할 경우 미국으로부터 심층분석국으로 지정될 위험도 있다. 이는 대외 신인도 하락과 통상 보복 등 수출 주도형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역효과를 몰고 올 수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규모로 달러를 매도하면 해외 투기 세력에게 ‘한국 정부가 다급해졌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최악의 경우 환율이 잡히지 않고 외환보유액만 급감할 경우 오히려 자본 유출을 가속화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 개입 패러다임 전환…금리 인상 카드 남아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환당국은 환율 방어를 위해 대규모 달러를 시장에 풀었지만, 외환보유액만 바닥을 드러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하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당국은 외환보유고를 풀어 환율 폭등 조율에 나섰으나 수급 불균형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당시 위기의 흐름을 반전시킨 것은 한은의 개입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전격 체결한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외환당국은 전반적인 시장 대응 패러다임을 바꿨다. 최근 한국은행은 환율이 치솟아도 그것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 부실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달러 초강세라는 거대한 흐름에 부합하는 결과로 평가해 지켜보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정 수치에 매달리지는 않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세조정과 구두개입은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이 사실상 당국이 쓸 수 있는 강력한 직접 개입 방식으로 평가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할 때 기준금리 인상은 필요한 상황”이라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좁혀지면서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 압력이 둔화되고,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원화 자산의 매력도가 높아져 외화 유출 현상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수 경기가 침체될 우려도 있지만, 경제성장률을 볼 때 이를 견뎌낼 펀더멘털이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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