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게임 속 AI가 달라졌다…말 알아듣고, 함께 싸우고, 직접 만든다
- 넥슨·크래프톤·더블유게임즈 등 국내 주요 게임사, 선제적 AI 도입 활발
단순 보조 도구 넘어 플레이 파트너·창작자로 진화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과거 게임 속 인공지능(AI)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했다. 일정한 경로를 순찰하다가 유저를 발견하면 공격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정해진 도주로로 도망치는 단조로운 패턴의 반복이었다. 유저들은 이를 ‘봇’(Bot)이라 부르며 프로그래밍된 허점에 쉽게 적응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선보이는 AI 기술은 차원이 다르다. 유저와 말귀를 알아듣고 대화하며 함께 전장을 누비는 ‘동료’가 되는가 하면, 기획자 한 명이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임을 뚝딱 만들어내기도 한다.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게임 플레이 방식 ▲개발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BM) 근간까지 뒤흔들고 있는 대한민국 게임 업계의 ‘AI 대전환’ 현장을 집중 진단했다.
게임 속 동료는 AI
크래프톤은 자사의 대표 지식재산권(IP)인 ‘배틀그라운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혁신적인 신규 모드를 선보이며 게임 AI의 진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모드의 핵심은 과거의 단순한 적 혹은 아군 봇의 개념을 완전히 탈피한 ‘AI 동료’의 등장이다.
최근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아케이드에 AI 기술 PUBG 엘라이(Ally)를 적용한 신규 모드 ‘엘라이 듀오’(Ally Duo)를 베타 서비스로 선보였다. 엘라이 듀오는 이용자가 AI 캐릭터인 Ella(이하 엘라)와 2인 팀을 이뤄 사녹 맵에서 플레이하는 신규 아케이드 모드다. 이용자는 엘라와 음성으로 소통하며 이동, 아이템 수집, 전략 수립 등 다양한 상황에서 협력한다. 이를 통해 AI와 함께하는 동반 플레이의 재미와 차별화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엘라는 크래프톤의 AI 기술 PUBG 엘라이를 기반으로 구현된 캐릭터 명칭이다. PUBG 엘라이는 게임 이용자와 함께 플레이하는 새로운 유형의 CPC(Co-Playable Character)다. 엔비디아 에이스(ACE) 기술 기반의 온디바이스 소형 언어 모델을 활용해, 이용자의 음성 명령과 게임 상황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PUBG 엘라이는 음성 인식(STT), 음성 합성(TTS) 기술 등을 활용해 이용자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한다. 정해진 조건에 따라 반응하는 기존 NPC와 달리, 이용자의 음성 명령과 변화하는 게임 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필요한 행동과 응답을 생성하도록 설계됐다. 이동과 아이템 확보처럼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지연을 최소화해 빠르게 행동한다. 전략 수립처럼 맥락 이해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게임 상황과 대화 흐름을 종합해 판단하며, 실제 플레이 흐름에 맞춘 협력 플레이를 구현한다.
과거의 AI가 단순히 사격 정확도나 이동 경로만 조절된 마네킹이었다면, 이번에 도입된 AI 동료는 전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능동적으로 판단한다. 유저가 마이크로 “적 발견, 2시 방향 바위 뒤에 숨었어. 연막탄 던지고 우회할게”라고 말하면, AI 동료는 이 음성 명령을 완벽히 이해하고 “확인, 내가 엄호 사격할 테니 진입해”라며 복합적인 전술 행동을 수행한다.
이강욱 크래프톤 CAIO는 “이번 베타 서비스를 통해 엘라와 이용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플레이를 선보이게 됐다”며 “이용자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AI 기술을 활용한 게임 경험의 혁신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AI 시대, 넥슨은 데이터로 무엇을 준비하는가
넥슨은 최근 열린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6)에서 넥슨의 전사 데이터 플랫폼 ‘모노레이크’ 성과와 미래 비전에 대해 밝혔다. 모노레이크는 넥슨의 게임·플랫폼·업무 데이터를 하나로 모은 전사 데이터 플랫폼이다.
류청훈 넥슨코리아 기술본부장은 “모노레이크는 넥슨의 모든 게임 데이터가 모여있는 호수”라며 “중요한 것은 기술 스펙이 아니라 임직원 모두가 같은 곳에서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모노레이크 1.0이 흩어진 데이터를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과정이었다면, 2.0은 AI가 스스로 데이터 맥락을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판단·예측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데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넥슨은 개별 데이터에 정확한 의미와 연결 관계, 현업의 핵심 판단 기준을 입히는 정교한 구조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넥슨은 모노레이크를 통해 데이터 처리 비용을 25%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성능은 기존 대비 17배 향상될 정도로 효율성도 좋았다. 무엇보다 모든 임직원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서 다양한 활용 사례가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은 ‘온톨로지 팩토리’ 구축에도 집중하고 있다. 온톨로지 팩토리는 현업이 가진 경험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구조로 바꾸는 작업이다. 온톨로지 팩토리의 결과물 중 하나가 ‘AI 서치’다. AI 서치는 자연어로 질문하면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보고서를 생성하는 서비스다. “오늘 날씨에 따른 매출 영향이 있어?” 등과 같이 질문하면 AI가 관련 데이터를 찾아 분석 결과를 제공한다.
더블유게임즈가 쏘아 올린 ‘1인 개발’ 신호탄
생성형 AI의 급격한 발전은 게임 개발의 진입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생산성의 극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소셜카지노 및 캐주얼 게임 전문 기업인 더블유게임즈가 성공적으로 도입한 AI 기반 1인 개발 모델 ’AI 스튜디오’는 그 가능성을 완벽한 숫자로 증명해 냈다.
기존의 게임 개발은 ▲기획 ▲아트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 ▲서버 구축 ▲사운드 ▲QA(품질보증) 등 수많은 전문 인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복잡한 분업 구조를 가졌다. 이 때문에 작은 캐주얼 게임 하나를 만드는 데도 수개월의 시간과 수억원의 비용이 발생하곤 했다.
반면 더블유게임즈의 ‘위글 이스케이프’는 기획-개발-디자인-QA를 순차적으로 거치는 전통적인 개발 방정식을 탈피하고 AI 툴과 최적의 학습 시스템만을 활용하여 단 2주 만에 1인 개발자를 통해 성공적으로 출시됐다. 이는 기존에 20명 이상의 팀이 수개월간 개발하던 방식을 AI 기반으로 전환함으로써 개발 속도와 비용 효율성을 동시에 극대화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캐주얼 게임 위글 이스케이프는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사실상 1인 개발에 가까운 극도로 슬림한 구조로 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출시 후 3개월 만에 누적 매출 35억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투입돼야만 고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게임 업계의 전통적인 흥행 공식을 정면으로 깨뜨린 쾌거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향후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 입을 모은다.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고착화되던 게임 산업에 AI가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급격한 변화에 따른 숙제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기술 고도화에 따른 기존 개발 인력들의 직무 전환 및 고용 불안 문제 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이끄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AI는 이제 게임 개발에 있어 뗄레야 뗄 수 없는 필수 도구가 됐다”며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향후 게임 개발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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