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7월부터 번지는 대출 한파…금융당국 총량 규제에 은행권 빗장
- [대출 절벽 현실화]①
“지금 안 받으면 막힌다” 막차 수요 폭발…은행 문턱 더 높아졌다
5대 시중은행 6월 가계대출 4.1조원 급증…11개월 만에 최대폭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하반기 초입부터 금융권에 전례 없는 대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통상 연말쯤 나타나던 대출 절벽 현상이 올해는 하반기 시작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금융 당국의 전방위적인 가계대출 총량 규제 압박에 은행권이 예년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대출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자가 일시에 몰리면서 은행 문턱은 더 높아졌다.
KB국민은행은 지난 6월 26일부터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과 갈아타기 대출을 제한했다. 하나은행도 모기지보험 가입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일찌감치 대출모집인 채널을 통한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전세대출 한도가 모두 소진된 NH농협은행 역시 MCG 가입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MCI·MCG는 주담대를 신청할 때 ‘방 공제’를 피하기 위해 가입하는 보험·보증 상품이다.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 세입자는 최소 보증금을 은행보다 먼저 변제받는다. 은행은 이를 감안해 대출 한도에서 미리 최우선변제금액(소액임차보증금)을 떼고 대출을 실행하는 데 이것을 방 공제라고 부른다.
시중은행이 이 보증 상품 가입을 차단하면서 차주들이 실제 빌릴 수 있는 금액은 수천만원씩 줄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최우선변제금 기준은 ▲서울 5500만원 ▲경기 지역(과밀억제권역) 4800만원 ▲광역시 2800만원 ▲기타 지역은 2500만원이다. 주담대 가능 한도가 이 금액만큼 즉시 차감된다.
대출 한도 축소에 우대금리 폐지까지…우회 규제 나선 은행들
금리 인상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일반적인 지표 금리를 올리는 수준을 넘어 우대금리 상품을 폐지하거나 금리 감면권을 축소하는 방식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1일 신규 접수분부터 ‘우리아파트론’ 5년 고정형 금리를 최대 1.1%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지난 5월부터 한시적으로 진행한 우대금리 특판 물량이 조기에 전량 소진된 결과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6월 30일부터 대면 주담대(주기형 외) 금리 감면권을 0.5%포인트 축소했다. 고정·변동금리 전세대출 금리 감면권도 0.2%포인트 인하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주담대 5년 고정형과 6개월 변동형 금리를 각각 0.2%포인트 인상하고, 신용대출 우대금리는 0.1%포인트, 주담대 우대금리는 0.2%포인트 줄였다.
은행권의 전방위적 대출 조이기는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와 대출 잔액 급증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경상성장률 전망치의 절반 이하인 1.5% 수준으로 설정했다. 공급 한도가 강하게 묶이자 시장에서는 “지금 대출을 받지 않으면 기회가 사라진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했고, 이는 상반기 막차 수요 집중으로 이어졌다.
올해 가계대출 흐름을 월별 증감액 추이로 보면 심리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분기까지만 해도 가계대출 잔액은 감소세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1월 -1조8650억원 ▲2월 524억원 ▲3월 -1365억원을 기록하며 금융 당국의 통제 범위 안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규제 강화 기조가 구체화된 2분기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4월 1조5670억원 ▲5월 3조5269억원 ▲6월 4조1379억원으로 매달 증가 폭을 키웠다.
집값·전셋값 동반 상승에 불안 심리 자극…실수요자 자금 조달 비상
서울 아파트 가격과 전세 가격이 동시에 치솟은 점도 대출 수요를 밀어 올렸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6월 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1.07% 올랐다. ▲동대문구(2.16%) ▲성북구(1.99%) ▲광진구(1.85%) ▲중구(1.80%) ▲강북구(1.55%) ▲강서구(1.47%) ▲영등포구(1.29%)를 비롯해 외곽 지역과 중심지인 ▲강남구(0.25%) ▲서초구(0.46%) ▲용산구(0.54%) ▲송파구(0.80%)를 가리지 않고 서울 전역이 오름세다.
대기업 성과급 호재가 반영된 경기 ▲화성시 동탄구(4.16%)를 비롯해 서울 인접 지역인 ▲구리시(1.96%) ▲광명시(1.87%) ▲용인시 수지구(1.87%) ▲성남시 수정구(1.81%) ▲안양시 동안구(1.77%) ▲수원시 팔달구(1.73%) 역시 강세를 나타냈다.
같은 달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한 달 전보다 1.43% 상승하며 올해 들어 최고 상승률을 갈아치웠다. 경기 과천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금 대출을 받아 집을 사지 않으면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졌다”며 “집값과 전세 가격이 동반 급등하면서 대출받기는 외려 더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대출 절벽 사태가 하반기 내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사실상 현상 유지 수준으로 묶어둔 상황에서 상반기에 이미 연간 한도의 상당 부분을 소진했다”며 “은행들로서는 하반기 내내 모기지보험 가입 중단·금리 상향·만기 축소·영업 채널 제한 등 가용한 모든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실질적인 자금이 필요한 차주와 주택 매매를 앞둔 실수요자들의 자금 조달 애로가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MCI·MCG 가입 중단 조치로 대출 한도가 대폭 깎인 데다, 시중은행 대출이 아예 막힐 경우 금리 부담이 더 큰 제2금융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대출길이 완전히 막히면 결국 서민들이 타격을 입는다”며 “일률적인 대출 차단보다 정교한 핀셋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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