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F&F가 잘 키운 ‘MLB’, 뉴에라가 흔든다 [잘 나가던 라이선스 브랜드의 덫]①
- 계약의 시대 종료…‘IP 경쟁의 시대’
라이선스 비즈니스의 새로운 역설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패션업계의 성장 축으로 자리 잡은 라이선스 비즈니스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같은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하는 사업자들이 기존 사업 영역을 넘는 데 이어 라이프스타일 시장까지 외연을 넓히고 있어서다.
국내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의 대표 성공 사례인 F&F의 ‘MLB’가 메이저리그 공식 파트너 ‘뉴에라’(New Era)의 사업 확장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라이선스 비즈니스의 경쟁이 계약을 넘어 같은 IP를 활용하는 사업자 간 브랜드 경쟁까지 관리해야 하는 ‘IP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해석이다.
한국 시장 힘주는 뉴에라
서울 명동의 뉴에라 플래그십스토어. 매장을 둘러보던 한 소비자가 직원에게 물었다. “뉴에라와 MLB는 뭐가 다른 거예요? 명동 큰길에 있는 MLB도 똑같은 메이저리그 브랜드 아닌가요?”
자신을 매니저로 소개한 직원은 “뉴에라는 100년 동안 메이저리그의 공식 파트너인 브랜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실제로 경기에서 착용하는 공식 모자와 웨어를 만드는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1~2년 사이 MLB와 뉴에라 차이점을 묻는 소비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두 브랜드의 차이를 묻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뉴에라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뉴에라는 지난 2008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마케팅 자회사 KBOP와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며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국내 투자에 적극적이다. 2019년 서울 명동에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일부 국가에만 진출한 글로벌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고, 현재는 전국 60여개 매장을 운영하며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뉴에라는 한동안 헤드웨어를 중심으로 국내 사업을 전개하면서 패션에 방점을 찍은 MLB와 구분이 됐다. 그러나 뉴에라는 최근 들어 ▲의류 ▲키즈 ▲골프웨어 ▲액세서리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국내 매출 볼륨을 800억원 이상 키웠다. 마땡킴·디스이즈네버댓 등 국내 패션 브랜드는 물론 블랙핑크·르세라핌 등 K-팝 아티스트와 협업을 통해 스포츠 브랜드보다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를 강화 중이다.
사업의 무게중심이 바뀌면서 소비자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뉴에라가 라이프스타일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면서 같은 메이저리그 IP를 활용하는 두 브랜드를 직접 비교하고 무엇이 다른지, 디자인과 만듦새까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뉴에라가 F&F의 MLB처럼 패션 전반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신 중”이라며 “100년 동안 메이저리그에 제품을 공급한 파트너라는 스토리와 장인 정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MLB 브랜드는 F&F가 키웠는데
국내에서 메이저리그 IP의 가치를 가장 크게 키운 기업은 F&F다. 김창수 대표가 이끄는 F&F는 1997년 MLB 라이선스를 확보한 뒤 메이저리그 IP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재해석해 국내 라이선스 비즈니스의 성공 공식을 새로 썼다.
F&F는 뉴욕 양키스(NY), LA 다저스(LA) 등 구단 로고를 스포츠 팬만의 상징이 아닌 패션 아이콘으로 탈바꿈시켰다. 볼캡을 중심으로 스니커즈·가방·다운재킷 등으로 상품군을 확장하며 스포츠와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다. 당시만 해도 나이키나 뉴에라 등이 스포츠 영역에 집중했다면, F&F는 메이저리그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재해석하는 전략을 택했다. 고객들은 딱히 응원하는 팀이 없어도 MLB 모자를 샀다.
MLB는 야구가 비주류 스포츠에 속하는 중국에서도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메이저리그를 모르는 소비자들까지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를 보고 구매했고, 여성 고객 비중이 70%에 이를 정도로 소비층도 넓어졌다. MLB는 중국에 10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며 F&F의 연매출을 2조원 가까이 끌어올리는 핵심 브랜드로 성장했다. 해외 스포츠 IP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재해석해 글로벌 시장까지 성공시킨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다.
하지만 브랜드를 아무리 잘 키웠더라도, 결국 IP는 ‘빌려 쓰는 남의 자산’이다. 같은 IP를 활용하는 다른 사업자가 시장에 뛰어들거나 사업 영역을 넓히는 순간 경쟁 구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라이선스의 역설’이다.
업계 관계자는 “K-컬처의 영향으로 한국이 글로벌 브랜드들의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면서 같은 IP를 가진 글로벌 기업들이 직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선명성 경쟁 더욱 치열
F&F는 MLB를 둘러싼 달라진 경쟁 환경에 맞춰 전략 수정에 한창이다. 먼저 저효율 매장을 정리하고 핵심 상권 중심으로 리뉴얼을 진행하며 매장당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였다. 전체 매장 수는 소폭 줄었지만, 매장당 매출 효율은 오히려 개선됐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동시에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하며 MLB 의존도를 낮추는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병행하고 있다.
업계는 앞으로의 경쟁이 ‘누가 IP를 확보했느냐’보다 ‘누가 같은 IP를 더 잘 해석하느냐’로 옮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계약을 통한 유명 IP의 확보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같은 IP 안에서도 브랜드의 ▲정체성 ▲스토리 ▲고객 경험을 얼마나 차별화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뉴에라까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보폭을 넓히면서 F&F의 MLB가 뉴에라와의 ‘선명성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며 “MLB만의 브랜드 정체성과 독보적인 위상을 더욱 선명하게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라이선스 사업의 리스크를 계약만 보던 시대를 넘어 같은 IP를 보유한 경쟁사 전략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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