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8년 새 문방구 60% 증발…2030이 ‘창신동 완구거리’로 간 씁쓸한 이유
- [현대인의 촉감 처방전]①
‘문방구 전멸’이 부른 원정 쇼핑…신규 고객만 92% 기록
2조원 온라인 블랙홀 공세…대형 문구사, 실적 악화 ‘늪’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키캡’부터 ‘왁뿌볼’까지 손으로 느끼는 촉감 완구의 독특한 유행이 수많은 젊은 소비자들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로 이끌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완구거리가 이색적인 취미 탐방지로 화제가 되면서 오프라인 시장을 직접 방문하는 20대 소비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다만 그 이면에는 사라진 동네 문방구가 있다. 8년 새 동네 문방구의 60%가 증발하면서, 오프라인 구매처를 잃은 소비자들이 거대 문구 도매 상권인 창신동까지 ‘원정 쇼핑’을 오게 된 착시 현상이라는 것이다.
동네 문방구의 ‘멸종’이 부른 역설
2030 세대의 발길이 이어진 창신동 완구거리 덕분에 문구업계가 때아닌 호황을 맞은 듯 보인다. 실제로 소상공인 365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올해 4월 기준 창신동 완구거리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창신1동 ‘승진완구’를 중심으로 반경 70m 내 ‘장난감 소매업’의 월평균 매출이 전월대비 18% 증가한 1592만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완구거리 내 업소당 평균 매출은 1월 653만원에서 2월 1109만원, 3월 1349만원으로 계속 증가했다.
특히 이 상권 내 신규 고객 비율이 92.1%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존 완구거리의 주 고객층이었던 아동·학부모가 아니라, 왁뿌볼 유행을 보고 처음 찾아온 2030 성인층이 상권 매출을 견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와 과거 팬데믹 시기 비대면 수업 시행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완구거리가 때아닌 유입 효과를 누리며 활기를 띠고 있다.
신규 고객 확산은 ‘왁뿌볼 신드롬’의 영향이다. 이 유행의 시발점은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플랫폼이다. 말랑한 클레이 겉면을 왁스 코팅으로 굳힌 뒤 손으로 쥐어짜며 왁스를 깨뜨릴 때 나는 ‘콰삭’, ‘파삭’하는 바삭하고 경쾌한 ASMR 사운드가 숏폼 환경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며 2030 세대 사이에서 강력한 ‘밈’으로 번졌다. 기존의 슬라임이나 말랑이가 단순히 시각·촉각적 안정감에 머물렀다면, 왁뿌볼은 극대화된 청각적 쾌감과 파괴 욕구를 동시에 충족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지난해 말랑이 유행 때만 하더라도 대다수 물량은 무인 문구점이나 온라인 유통 채널로 흡수되었을 뿐, 창신동 도매 골목까지 소비자가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어른들이 일부러 종로구 창신동 완구거리로 ‘원정 쇼핑’을 감행하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의 역설적인 배경에는 오프라인 문구 생태계의 붕괴가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들이 유행하는 촉감 완구를 직접 눈으로 보고 사려고 해도, 집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동네 문방구’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18년까지만 해도 전국에 약 1만여 곳에 달하며 골목길을 지키던 문구 소매점의 수는 2022년 8000여 곳으로 줄더니, 2025년 4000곳 이하로 급감했다. 불과 8년이 흐르는 동안 동네 문방구의 60% 이상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셈이다.
온라인 시장 공세에 대형사도 적자
오프라인 매장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동안 그 수요는 ‘2조원대 온라인 시장’의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며 오프라인 상권을 무섭게 잠식했다. 국가데이터처의 온라인쇼핑동향조사 지표를 분석하면 오프라인 시장을 집어삼킨 온라인 채널의 침투 속도가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내 온라인 문구 거래 규모는 2021년 1조5742억원, 2022년 1조7815억원을 기록하더니 2023년에는 1조9397억원으로 성장했다. 이어 2024년에는 2조536억원을 기록하며 마침내 2조원의 벽을 넘어섰고, 지난해인 2025년에는 2조1536억원까지 치솟으며 오프라인 문구 시장의 뿌리까지 완전히 잠식했다. 길거리 문구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동안 온라인 유통 채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실제로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 조사에서 지난 6월 ‘말랑이’ 제품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28%(12배 이상) 급증했다. ‘왁뿌볼’과 ‘슬라임’ 거래액도 전월 대비 각각 87%, 67% 증가하며 취미 카테고리 상위 10개 중 9개(90%)를 촉감 완구류가 독식한 상태다.
반면 오프라인을 대표하는 문구점들의 실적은 하향곡선을 그릴 뿐이다. 아트박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2696억5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9% 늘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29억5000만원으로 20% 감소했다. 모닝글로리 역시 2025 회계연도 매출이 381억원으로 감소하고 7억7000만원(전년 대비 57% 감소)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동네 문방구의 전멸을 넘어 오프라인을 대표하는 대형 브랜드들까지 실적 악화의 늪에 빠진 것은 전통적인 문구 생태계 자체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반짝 유행하는 완구의 짧은 수명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상권만의 독창적인 문화적 체험 공간이나 키덜트를 겨냥한 메카로의 과감한 체질 개선 등 근본적인 자생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구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준비물 지원제도 등으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공책이나 알림장을 사지 않은 지 오래된 데다 학생 수 자체도 줄었다. 오프라인 생태계가 고사한 상황에서 이러한 말랑이 유행이 단편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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