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신작이 호재인 시대 막 내려…게임주는 왜 추락하나
-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모바일 MMORPG, 성장 한계 직면
1020세대는 게임 대신 숏폼, 중국 게임사 추격 거세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지난 3월 신작 ‘붉은사막’을 출시한 펄어비스 주가는 출시 직후 7만원대를 기록 후 최근 3만원대를 기록 중이다. 사실상 주가가 반토막이 난 셈이다. 펄어비스 뿐만이 아니다. 과거 주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게임사들의 주가는 극심한 소외 현상을 겪고 있다. 이제는 신작 출시 효과 마저 반짝 흥행에 그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아닌, 국내 게임산업의 구조적 모순과 전 세계적 미디어 소비 트렌드의 변화, 중국 게임사의 기술적 추격이 맞물린 결과라고 진단한다.
기대감이 실망감으로…고착화된 '선반영 후 급락' 패턴
최근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주가 추이를 살펴보면 신작 출시 예고 시점을 기점으로 매수세가 유입되나, 출시 이후에는 대규모 매도 물량이 출회되며 주가가 하락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 신작 흥행 성적에 따라 주가가 추가적인 상승 모멘텀을 얻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이와 같은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는 시장의 기대치와 출시 이후 흥행 성적간 괴리가 꼽힌다. 대다수 신작이 기존 흥행작 시스템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이용자들의 초기 평가가 혹평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곧바로 투자 심리 위축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신작 출시 자체를 ‘호재 소멸’로 인식하는 경향이 팽배해졌다.
국내 게임사들은 지난 수년간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특히 뽑기 형태의 ‘확률형 아이템’을 골자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BM)은 단기간에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핵심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과금 유도 방식은 이제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지속적인 과금을 유도하는 구조에 지친 이용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불투명한 확률 운영에 반발한 유저들의 집단행동과 불매운동은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를 골자로 한 게임산업법 개정안 등이 시행되면서, 과거와 같은 고수익성 BM을 유지하기가 법적으로 까다로워졌다. 이는 대형 게임사들의 수익성 악화로 직접 연결되는 추세다.
더욱이 게임 개발자들의 인건비 상승과 개발 기간 장기화로 인해 대작 게임 한 편을 제작하는 데 수백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 반면 기대 수익은 낮아지면서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고도 적자를 기록하는 ‘고비용·저효율’ 리스크가 갈수록 심화되는 모습이다.
게임산업의 내부적 문제 외에도, 콘텐츠 소비 패턴의 거시적 변화가 게임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현재 10대와 20대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미래 핵심 이용자층의 여가 시간 활용 방식이 게임에서 ‘숏폼 미디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유튜브 쇼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등은 이용자에게 몇 초 만에 즉각적인 시각적·정서적 자극을 제공한다. 반면 모바일 MMORPG나 고사양 PC 게임은 캐릭터 육성과 시스템 이해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빠르고 직관적인 도파민 분비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에게 전통적인 형태의 게임은 과도한 시간적 비용을 요구하는 무거운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로 인해 게임 산업 전체의 총 이용 시간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주주환원에 나선 게임사들, 효과는 ‘글쎄’
과거 한국 게임의 아류작을 생산하는 데 머물렀던 중국 게임 산업은 이제 자본력과 기술력 양면에서 한국을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상위권에는 중국계 게임사들이 제작한 서브컬처 게임과 캐주얼 방치형 게임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주가 침체가 이어지자 주요 게임사들은 자사주 매입, 현금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책을 발표하며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재무적 조치가 임시방편일 뿐,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주환원책은 기업의 기초체력과 성장성이 뒷받침될 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재무적 수단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시늉을 할 때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과 플랫폼의 대전환을 강행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국내 게임업계가 신뢰를 회복하고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바일 중심의 내수용 MMORPG에서 벗어나 글로벌 유저들이 주로 소비하는 콘솔 및 PC 패키지 시장을 겨냥한 완성도 높은 타이틀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사행성 논란을 야기하는 확률형 아이템 구조를 지양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배틀패스 및 패키지 판매 형태로 BM을 다각화해야 한다. 아울러 고비용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개발 과정 전반에 생성형 AI 기술을 융합, 제작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공정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물론 글로벌 콘솔 및 PC 패키지 시장을 겨냥한 완성도 높은 타이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개발 비용이 필요하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형 개발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접근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아울러 어느정도 흥행이 보장된 MMORPG 장르를 포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업계 관계자들은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렇다할 신규 IP 성공 사례가 없다. 그나마 ‘붉은사막’ 정도다. 게임산업 자체가 오래되면서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현재 게임사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1세대가 창업가들이다. 문제는 그들에게서 새로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참신하고 재미있는 게임들은 유저들이 먼저 찾는다. 다만 한국에 그런 게임이 많지 않을 뿐”이라며 “기존의 성공 방식을 과감히 폐기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고품질의 콘텐츠 중심 기업으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국내 게임산업의 장기 침체는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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