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일본 맥주 수입량 사상 첫 10만톤 돌파
일본 제품 선호도 증가·국내 주류사 실적 악화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주류 업계가 일본 맥주의 성장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주류 소비량이 매년 감소하는 상황임에도 일본 맥주가 국내 시장 내에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최근 국산 맥주 브랜드가 주춤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업계에서는 일본 맥주가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로 일본 여행 증가에 따른 관련 현지 문화 및 제품 선호도 증가와 국산 맥주의 경쟁력 저하 등을 꼽는다.
수입 맥주 1위로 올라선 일본
일본이 국내 수입 맥주 시장을 장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맥주 수입량은 10만322톤(t)으로 전년 동기(8만2229t) 대비 22% 증가했다. 일본 맥주 수입량이 연간 10만t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맥주 시장에서 10% 정도를 차지하는 수입 맥주 부문에서 일본산의 점유율은 41.7%까지 늘었다. 국내 소비자가 마시는 수입 맥주 10캔 중 4캔은 일본 제품인 셈이다.
일본 맥주가 급성장하면서 그동안 국내 수입 맥주 시장을 이끌던 유럽 맥주는 고꾸라졌다. 지난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수입된 맥주의 양은 전년 동기(8만4254t) 대비 25% 감소한 6만3161t에 머물렀다. 한때 수입 맥주 1위 브랜드로 군림하던 네덜란드 맥주 브랜드 하이네켄은 아사히에 정상의 자리를 내준 상태다.
최근 국내 소비자들이 일본 맥주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삿포로맥주의 사례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삿포로맥주의 공식 수입사인 엠즈베버리지에 따르면 회사가 지난해 7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스탠드의 지난 1년간 누적 방문객 수는 약 4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해당 기간 현장에서 판매된 생맥주는 약 9만6000잔으로 나타났다.
엠즈베버리지 관계자는 “삿포로 비어스탠드가 강한 탄산감과 목넘김을 중시하던 기존 소비자들의 취향의 변화를 이끌어내 국내 소비자들에게 생맥주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프리미엄 생맥주 문화를 대표하는 중심 공간으로 이미지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 맥주의 최근 성장세는 주류 소비가 매년 줄어드는 시장 흐름과 상반된 결과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 및 가계동향에 따르면 주류 실질 소비지출은 지난 2023년 4분기부터 매분기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류 출고량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2014년 380만8000㎘에서 2024년 315만1000㎘로 10년 동안 17% 넘게 줄었다.
주춤하는 K맥주 자리도 넘본다
업계에서는 일본 맥주가 강세인 가장 큰 이유로 일본 여행 활성화에 따른 현지 문화 선호도 증가를 꼽는다. 엔화 약세 등이 겹치면서 국내 여행객들의 일본행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현지 문화에 대한 친근감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의 수는 945만96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881만7765명) 대비 7.3% 증가한 것이다. 관련 통계 집계 이래 방일 한국인 여행객의 수가 연간 9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산 주류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한일 관계 개선에 따른 소비 심리 완화와 일본 여행객 증가로 인한 일본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증가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라며 “맥주 제품의 경우 신선도가 매우 중요한데, 일본 생산공장과의 지리적 인접성 등이 맞물리며 일본 맥주가 품질 경쟁이 가능해졌다. 이 부분도 일본 맥주 수요가 증가한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본 맥주 선전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기형적인 구조의 국내 시장이 꼽힌다.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의 카스 ▲하이트진로의 테라 ▲롯데칠성음료의 크러시 등이 이끌고 있다. 이 시장 1위 브랜드는 오비맥주가 제조·판매하는 카스로 점유율이 60%에 달한다. 카스의 뒤를 하이트진로 테라와 롯데칠성음료 크러시가 추격하는 형국이지만 격차가 매우 크다.
오비맥주의 카스는 지난 2012년부터 국내 맥주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당해 오비맥주의 과세 기준 시장 점유율(한국주류산업협회 집계 기준)은 55.6%로 44.3%의 하이트를 압도했다. 현재는 협회에서도 공식적인 출고 실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비맥주가 10년 넘게 국내 맥주 시장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는 주력 제품을 앞세워 국내 맥주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다만 최근 국산 브랜드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이 자리를 일본 맥주가 파고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오비맥주는 지난해 1조7785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2%대 외형 성장을 이뤄냈지만, 영업이익이 5.4% 감소한 3465억원에 머물렀다. 주류 소비 감소 흐름으로 인해 마케팅 비용 등이 늘어난 탓이다.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맥주 부문 매출은 7581억원으로 전년 동기(8236억원) 대비 약 8% 감소했다. 같은 기간 롯데칠성음료의 맥주 부문 매출은 518억원으로 전년 동기(825억원) 대비 37.3% 감소했다.
소비자들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국산과 외산 브랜드를 크게 구분하지 않고 맥주를 마시는 분위기다.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모바일 플랫폼 키위서베이가 진행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476명 중 33.4%는 국산·수입 여부와 상관 없이 맥주를 마신다고 답했다.
수입 맥주 유통사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익숙한 국산 맥주를 먼저 찾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요즘은 술 자체를 많이 마시지 않으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않았던 프리미엄한 제품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선택의 폭이 적은 국산 맥주와 달리 일본 맥주 등은 선택지가 다양하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일본 맥주의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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