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로봇이 자재 나르고 AI가 안전 점검…건설현장이 달라졌다
- [우리 집이 달라졌어요] ②
스타트업부터 AI·로봇 기업까지…건설업계 ‘개방형 혁신’ 확산
기술 발굴 넘어 실증·공동사업화…시공보다 생태계 구축이 승부처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누가 더 잘 짓느냐’보다 ‘누가 더 잘 연결하느냐.’
건설업계의 경쟁 공식이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데이터 ▲헬스케어 ▲교육 등 서로 다른 분야의 기업이 하나의 주거 공간과 건설 현장을 함께 만드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건설사들은 외부 전문 기업의 기술을 발굴하고 실증해 사업으로 연결하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미래 성장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술 변화가 빨라질수록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스타트업과 정보기술(IT) 기업 ▲대학 ▲연구 기관 등과 협력을 확대하는 이유다. 실제 현장에서 기술의 성능과 경제성을 검증한 뒤 공동개발과 구매·투자, 신규 사업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공사 현장마다 작업 조건과 공법, 발주 방식이 다른 건설업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제한된 현장에서 기술을 먼저 검증하면 도입 실패에 따른 비용과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스타트업 역시 대형 건설사의 현장과 사업망을 활용해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시장 진입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공모전 넘어 현장으로…진화하는 실증형 협업
최근 건설사들의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술 공모와 시상 중심의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고 있다. 건설사가 필요한 기술과 해결 과제를 제시하고, 스타트업이 실제 공사 현장이나 공동주택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현장 수요형 협업’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2026 퓨처스케이프’를 통해 스타트업 6곳과 공동 실증에 들어갔다. ▲홈 플랫폼 ▲웰니스 ▲시니어리빙 ▲로봇 솔루션 ▲차세대 교육 기술 등 건축물 운영과 생활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주요 대상이다.
선정 기업은 삼성물산 현업 부서와 기술의 적용 가능성과 사업 모델을 검증한다. 결과에 따라 공동 사업화와 서비스 고도화도 추진한다. 사업부가 직접 시장성과 현장 적용성을 확인한 뒤 후속 협력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삼성물산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스타트업 21곳을 발굴했다. 이 가운데 사업성이 확인된 기업과 공동 사업화를 추진하며 협력 범위를 넓혀왔다.
현대건설도 건설 안전과 미래 주거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공모에는 156개사가 지원했다. ▲건설 인공지능 전환(AX) ▲미래 주거 ▲라이프스타일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건설 분야에서 12개사가 실증 대상으로 선정됐다.
선정 기업들은 현업 부서와 기술을 검증한 뒤 성과에 따라 ▲현장 확대 적용 ▲상품 공동개발 ▲구매 계약 ▲투자 검토 등을 진행한다. 현대건설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3개 스타트업과 실증을 진행했고, 이 가운데 27개사와 추가 사업을 이어갔다. 자율주행 배송 로봇을 공동주택에 정식 도입한 사례도 있다.
롯데건설은 건설 자동화와 주거 성능 개선 등 현장 수요를 중심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을 운영한다.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저감 ▲자율주행 자재 운반 로봇 ▲원격 토공장비 관제 ▲AI 기반 현장 모니터링 기술 등을 시험하고 있다.
각 사업본부가 필요한 기술을 먼저 제시한 뒤 외부 기업과 현장 적용과 공동 기술개발, 지식재산권 확보까지 추진한다. 외부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데 머물지 않고 건설사와 스타트업이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구조다.
SK에코플랜트와 대우건설도 AI와 로봇, 안전·품질 기술을 중심으로 협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 폐수 처리 ▲건설 현장 자율주행 로봇 ▲AI 에이전트 ▲전기차 배터리 화재 진압 등의 기술을 선정해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한다. 대우건설은 ▲스마트 안전·품질 ▲AI ▲로봇·자동화 기술을 현장에서 실증한다. 성과가 확인되면 ▲공동 상품 개발 ▲우선 구매 ▲공동 기술개발로 연결한다.
‘잘 짓는 회사’서 ‘잘 연결하는 회사’로
건설사들이 외부 기업과의 협업을 확대하는 이유는 연구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업 영역이 시공에서 ▲공간 운영 ▲생활서비스 ▲데이터 기반 플랫폼으로 넓어지면서 내부 역량만으로는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AI ▲로봇 ▲에너지 ▲모빌리티 ▲헬스케어 등은 각각 높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모든 기술과 인력을 직접 확보하기보다 전문기업과 협력해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주거상품에 적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조직문화와 업무방식도 바꾸고 있다. 현업부서가 스타트업과 함께 현장의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을 검증하면서 안전과 품질,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해법을 함께 찾아가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 공사 현장과 아파트 단지는 새로운 기술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가 되고, 검증을 마친 기술은 공동사업과 상품화로 이어진다.
향후 건설사의 경쟁력은 자체 기술보다 외부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선별·연결해 상품과 서비스로 구현하느냐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시공 능력을 넘어 다양한 기업과 기술을 결합하는 ‘생태계 구축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실증을 마친 기술이 일부 현장에 머물지 않고 전사 차원의 사업으로 확산할 수 있을지는 과제로 남는다. 여러 기업의 기술과 데이터가 연결될수록 ▲플랫폼 간 호환성·보안 ▲개인정보 보호 ▲사고 발생 시 책임 기준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오픈이노베이션은 단순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아니라 미래 사업을 발굴하는 핵심 전략”이라며 “앞으로 건설사의 경쟁은 얼마나 많은 기술을 보유했느냐보다 얼마나 다양한 기업과 협력해 새로운 건설·주거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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