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위는 공정한가]②
밀가루·설탕값 내려도 가공식품 가격은 다시 상승
국고 귀속 과징금 활용한 소비자 지원책 마련 필요
그러나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부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담합 기간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최대 42.4%, 66.7% 오른 데 비해 올해 초 주요 업체가 내린 가격은 평균 4~6% 수준에 불과하다. 밀가루와 설탕을 원료로 사용하는 가공식품 가격도 다시 오르고 있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이 피해 소비자에게 직접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담합으로 비싼 가격을 지불한 소비자가 있지만 공정위가 거둔 과징금은 모두 국고로 들어간다. 정부가 피해자 권익 증진과 피해 예방을 위한 기금 조성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최대 26.5% 내렸다지만…소비자 체감은 ‘글쎄’
공정위는 지난 8월 4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올해 상반기 총 20조원 규모의 민생 분야 담합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관련 매출액은 전분당 6조원, 밀가루 5조8000억원, 설탕 3조2000억원, 인쇄용지 4조원 등이다.
부과된 과징금은 전분당 7475억원, 밀가루 6710억원, 설탕 3960억원, 인쇄용지 3383억원이다. 식품 분야인 전분당과 밀가루, 설탕에 부과된 금액만 1조8145억원에 이른다.
공정위는 담합 제재를 통해 해당 품목 가격을 최대 26.5% 낮췄다고 했다.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빵과 라면, 과자 등 민생 밀접 품목에서도 최대 14.6%의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실제 담합 조사와 제재가 본격화된 이후 CJ제일제당과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한제분 등 주요 업체는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평균 4~6% 내렸다. 그러나 일부 제품의 가격 인하만으로 소비자의 전반적인 물가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정위가 제시한 ‘최대 26.5%’와 ‘최대 14.6%’는 일부 품목의 최대 인하율로 실제 소비자의 체감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관련 수치는 공정위 자체 조사가 아닌 기업들의 가격 인하 발표 정보를 취합해 산출한 수치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비자물가지수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6월 밀가루와 설탕 소비자물가지수는 각각 128.97과 141.04를 기록했다. 2020년 가격 수준을 100으로 놓고 보면 밀가루는 약 29%, 설탕은 약 41%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과자와 빵의 소비자물가지수도 각각 118.93과 138.51로 기준치를 크게 웃돌았다. 소비자물가지수가 100 이상이라는 것은 기준연도(2020년) 대비 물가가 올랐다는 뜻이다.
담합 기간 누적된 가격 상승폭도 컸다. 검찰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밀가루 가격은 최대 42.4% 올랐다.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이어진 설탕 담합 기간의 가격 상승폭은 최대 66.7%에 달했다.
담합 기간의 최대 상승률과 올해 업체들의 평균 인하율은 기준과 대상, 산정 기간이 달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다만 장기간 누적된 가격 상승 폭에 비해 최근 인하 수준이 제한적이어서 소비자가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에 식품업체들이 원가 부담을 이유로 일부 제품 가격을 다시 올리면서 인하 효과도 상쇄되고 있다. 최근 농심과 CJ제일제당, 오뚜기 등 주요 식품업체는 고유가와 고환율, 원부자재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5~11% 올렸다.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내린다고 해서 빵과 과자, 라면 등 완제품 가격이 반드시 함께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제품 가격에는 원재료뿐 아니라 인건비와 물류비, 포장재 가격, 환율 등이 함께 반영되기 때문이다. 기존 원재료와 완제품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유통 구조도 가격 인하의 체감도를 낮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재고 소진과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에 원재료 가격 인하가 소비자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처벌에 가려진 피해 소비자 지원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공정위가 올해 담합 행위에 대해 잇단 중징계를 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소비자들은 외면 받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개선은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이 규제당국이 징수한 과징금 중 일부를 재원으로 활용해 소비자 피해를 지원하는 ‘소비자권익증진기금’이다. 이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됐지만 번번히 현실화되지 못했다.
특히 올해는 소비자권익증진기금에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관련 혐의를 받은 기업들에 부과된 과징금 규모는 1조8000억원을 웃돈다.
여기에 공정위가 심의 중인 전분당·부산물 담합까지 더하면 올해 식음료 업계 담합 과징금 규모는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공회전 중인 소비자권익증진기금 설립에 대한 요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공정위는 담합 등 기업의 불공정행위로 인한 소비자 및 기업의 피해 지원을 위한 기금 설립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 다만 공정위 내부에서는 형평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담합으로 인한 피해는 사실상 전국민이 입는데 비해 기금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상은 제한적이어서다.
문미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은 “공정위 과징금은 기업의 담합·불공정거래·표시광고법 위반 등에 부과하는 것으로 기업이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히고 취득한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성격을 지닌다”며 “그러나 현재 과징금은 전액 국고 일반회계로 귀속돼 정작 피해의 당사자인 소비자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문 회장은 “불공정행위로 발생한 과징금의 일부를 소비자권익증진기금으로 조성하는 것은 ‘원인제공자 부담 원칙’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부당이득을 시장의 건전한 발전으로 선순환시키는 경제적 정의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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