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문과생도 AI 전문가로”…GS리테일 ‘자주연’의 AX 실험 [AI가 유통을 다시 쓴다]②
- 매달 ‘AI 활용 우수 사례’ 공유…실제 업무 적용도
‘데이터·AI’ 중심 수익성·지속 가능 성장 기반 확보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지난 7월 31일 오후 4시경 방문한 서울 강남구 GS타워의 한 회의실 내부는 열기로 가득했다. 하루 중 가장 나른할 시간이지만 누구 하나 지루한 기색 없이 발표자의 말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인공지능(AI) 도구는 어떤 걸 썼나요?” “‘클로드’(Claude)를 활용했습니다.” “보안 문제는 없나요?” “사내 보안 정책 때문에 다른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회의 내내 코딩,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매크로 등 정보통신(IT) 관련 전문 용어가 쏟아졌고, 발표가 끝날 때마다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IT 담당 직원이 아니다. 법무, 컴플라이언스, 대관, 내부회계, 홍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지속가능경영부문’ 소속 구성원이다.
20여명의 직원들이 이날 한자리에 모인 건 ‘자주연’(자기주도연구회) 활동을 위해서다. 자주연은 AI 활용 우수 사례를 공유하고 업무 혁신을 추진하는 GS리테일의 사내 소모임이다.
GS리테일은 현장 구성원이 직접 AI를 활용해 업무를 개선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현장 중심 AI 전환(AX)’ 문화를 조직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사업부를 지원하는 전사 조직에서도 AX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주연도 그중 하나다.
자주연을 이끄는 곽창헌 GS리테일 지속가능경영부문장은 “최근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직원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구성원들이 AI를 직접 체험하고 각자의 활용 사례와 노하우를 나누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자주연을 시작하게 됐다”며 “이번이 세 번째 정기 모임인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발표 사례의 수준과 완성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쪼는 앱’ 만들고 사보도 자체 제작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자주연에서는 AI 적용 사례와 AI를 활용한 업무 효율 개선 방안 등이 공유된다. 자주연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도 한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자주연을 통해 업무에 적용 가능한 AI 기반 업무 도구가 다수 탄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명 ‘쪼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쪼는 앱을 사용하면 이메일로 자료를 취합할 때 회신하지 않은 담당자에게 자동으로 안내 메일을 보낸다. 단순하지만 반복적인 업무에 드는 시간을 크게 줄여 준다.
이날 자주연에서도 AI를 사용해 업무 시간과 비용 등을 줄이기 위한 개선안이 소개됐다. 홍보팀 사보 담당자는 GS그룹의 사보를 GS 자체 AI 플랫폼인 ‘미소’(MISO)를 활용해 제작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기존에는 사보 담당자가 PPT를 만들어 외부 디자인 업체에 디자인을 요청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사보를 발간했다”면서 “‘미소’를 이용해 사보를 직접 만들면 업무 단계와 제작 비용 등을 많이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내부회계관리팀에서는 최근 AI를 주제로 워크숍을 했던 사례를 공유했다. 발표를 맡은 이상협 내부회계관리팀 매니저는 “워크숍에서 전체 팀 업무 흐름을 도식화해 단계별로 현재 AI를 적용한 과정, 앞으로 적용할 과정의 아이디어 등을 논의하고 장·단기 과제를 수립했다”며 “기존에는 AI를 활용한 앱을 소개했지만 이날은 AI를 어디에 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워크숍 내용을 공유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매니저는 “각 팀이 실제 업무에 AI를 적용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자주연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서 “AI 활용 방안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자주연 활동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안기윤 ESG파트 매니저는 “실무에서 ▲AI로 어떤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활용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와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공유하면서 AI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업무 생산성을 높일 아이디어를 얻고 싶어 자주연에 꾸준히 참여 중”이라며 “이론 중심인 AI 교육보다 실무에 바로 적용할 아이디어를 얻기 쉽고, 구체적인 AI 적용 방안을 떠올릴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안 매니저는 “자주연에서 공유된 사례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한 ESG 동향 및 뉴스레터 자동화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면서 “데이터 대시보드 구축 등 AI를 활용한 업무 고도화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AI가 곧 경쟁력”…‘현장 중심 AX’ 강화 나서
GS리테일이 자주연 활동 등을 통해 ‘현장 중심 AX’ 강화에 나선 건 AI 활용 경험과 성과가 곧 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물가·유통 채널 간 경쟁 심화 등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GS리테일은 단기적인 성과보다 장기적인 수익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데이터와 AI를 중심으로 현장 중심의 AX를 더욱 고도화해 사업 경쟁력과 운영 효율을 높이고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게 GS리테일의 목표다.
허서홍 GS리테일 대표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모든 판단과 실행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겠다”며 ‘고객 최우선’과 ‘데이터·AX’를 핵심 경영 키워드로 제시했다.
GS리테일은 AI와 디지털 기술에 대한 투자와 활용을 지속적으로 확대 중이다. 고객의 실제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속하게 실행하고, 결과를 다시 서비스와 상품 개선에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GS리테일은 AX를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닌 조직의 핵심 역량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샌드박스 ▲데이터빌리지 ▲FDE(Forward Deployed Engineer·현장 밀착형 엔지니어) 육성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상반기 AI 교육과 AX 소모임을 중심으로 현업 중심의 AI 활용 문화 확산에 집중한 GS리테일은 하반기 사업부 추천 인력을 대상으로 FDE 육성 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FDE는 현업의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실제 운영 가능한 서비스까지 구현하는 현장 밀착형 전문가”라면서 “GS리테일의 AX를 실질적으로 이끌 핵심 인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곽창헌 GS리테일 지속가능경영부문장 인터뷰
- 자주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직원들이 각자 업무에 AI를 활용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면 조직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AI는 앞으로 업무에 필수적인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빨리 익숙해질수록 유리할 거라고 봤습니다.”
- 참여 직원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지난 4월 첫 모임을 시작해 매달 1회씩 정기 모임을 여는 중인데 생각보다 참여도가 높습니다. 자주연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동아리 형태로 운영 중인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경쟁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입니다. 자주연 활동을 통해 나온 지속가능경영부문의 AI 활용 우수 사례를 경영진 앞에서 발표하고 회식비를 받기도 했습니다.”
- 자주연 활동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
“과거 IT 분야는 이과생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최근 기술이 발전하며 문과생도 AI를 활용해 누구든 개발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주연을 통해 봤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지속가능경영부문 소속 직원의 90% 정도가 문과 출신인데도 자주연 활동을 통해 팀별로 ‘AI 챔피언’이 생기고 있습니다. AI 챔피언을 중심으로 서로 AI를 업무에 적용한 사례를 공유하고 직접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AI 활용의 중요성을 느끼고, AX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 AI 활용을 통해 실제 업무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보십니까.
“직원들에게 AI를 쓴 뒤 업무 시간이 단축돼 야근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기존에 일주일이 걸렸던 보고서 작업을 AI를 사용하면 자료 수집부터 분석, 보고서 및 발표 자료 작성까지 하루도 안 돼서 끝낼 수 있죠.
내부 회계 관리를 할 때도 각 부서의 회계 관련 자료 제출 여부와 완성도 등을 파악한 뒤 안내하는 작업을 AI로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 홍보·마케팅 부서에서는 과거 사례와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분석해 논란이 될 수 있는 단어나 표현, 이미지 등을 검수하는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 중입니다.”
- 자주연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직원의 AI 활용 역량을 키워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자주연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AI 시대에 맞는 소통 방식을 통해 의사결정의 질을 높인다면 그룹의 경영 활동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자주연을 통해 누구나 AI를 업무에 전문가 수준으로 활용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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