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외국인도 쓸어담는 'K더마'… 제약사 참전으로 영토 확장 [판 커진 ‘K더마’]①
- 민감 피부 데이터와 스마트 소비의 만남…'고효능 홈케어' 부상
기술력 입힌 제약사 라인업 가속…'표시·광고 규제' 보완은 과제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K-뷰티의 글로벌 수출 영토가 단순 스킨케어의 테두리를 벗어나 제약·바이오 기술이 집약된 '더마(Derma)'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전통 제약사들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의약품 연구개발(R&D) 역량을 화장품 베이스에 이식하면서,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한국산 더마 코스메틱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의 2025년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더마 코스메틱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약 12% 성장했다. 전체 뷰티 시장 성장세를 웃도는 수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는 올해 글로벌 코스메슈티컬 시장이 약 850억달러(약 1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초 화장품에 단순 보습 기능을 넘어 피부 장벽 회복과 세포 재생 등 메디컬 수준의 효능을 기대하는 글로벌 소비 트렌드가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거대한 흐름의 최전선에는 방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폭발적인 소비 행렬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서울 주요 상권인 명동과 성수동, 강남 일대의 대형 뷰티 스토어와 약국가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제약사 기반의 '더마 스킨케어' 제품들을 바구니 가득 쓸어 담는 풍경이 흔해졌다. CJ올리브영에 따르면 '어드밴스드 더마' 카테고리 매출 중 외국인 고객 비중은 약 70%에 달한다.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글로벌 소비자들이 한국형 더마 제품의 효능을 신뢰하고 지갑을 열고 있다는 방증이다.
'홈케어'와 '스마트 소비'의 확산
K-더마가 단기간에 글로벌 캐시카우로 부상한 배경에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가 있다. 학술지 ‘스킨 리서치 앤 테크놀로지’의 역학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56.8%가 스스로를 ‘민감성 피부’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45~50%)을 상회하는 수치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민감 피부 데이터'가 축적되는 시험대가 된 배경이다.
여기에 모바일 뷰티 플랫폼과 성분 분석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화장품의 전 성분과 효능을 낱낱이 파헤치는 스마트 소비자들이 급증했다. 과거 소비자들은 모호한 마케팅 문구에 현혹되기 쉬웠으나, 정보가 많아진 현대에는 객관적인 수치를 교차 검증한다. "어떤 성분이 몇 퍼센트(%) 들어갔는지" "피부 장벽 회복률이 임상시험에서 몇 %로 입증되었는지"를 따져 묻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오픈 서베이(Open Survey)’의 ‘뷰티 트렌드 리포트 2026’에 따르면, 한국 여성 소비자의 68%가 “화장품 구매 시 임상시험 결과나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한다”고 응답했다. 감성 마케팅 위주의 일반 화장품 브랜드들은 설 자리를 잃고 제약 연구개발(R&D) 기반의 브랜드로 수요가 대거 이동하게 된 이유다.
'피부과 시술의 보편화'에서도 더마 코스메틱 급성장의 배경을 찾을 수 있다. 2020년대 들어 리쥬란 힐러, 스킨보톡스, 각종 레이저 등 전문적인 피부과 시술은 대중적인 뷰티 루틴으로 안착했다. 하지만 주기적인 시술만으로는 피부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운 탓에, 소비자들은 시술 효과를 집에서 연장하고 예민해진 피부를 진정시킬 고효능 홈케어 제품을 찾게 된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니즈는 '후시딘'이나 '비판텐' 같은 약국 상처 치료용 연고를 피부 관리 목적으로 바르면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비판텐' 같은 약품명을 검색하면 집에서 해당 약품으로 피부를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유럽이 더마의 시초로 알려져 있고, 국내에 도입된 역사를 들여다보면 국내에 피지오겔이 수입된 2000년대가 그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며 "더마 코스메틱은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인정 받는 카테고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제약사 참전으로 높아진 신뢰도
제약사들은 화장품 공정과 바이오 기술을 결합해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판테놀 등 고농도 포뮬러를 적용하고, 약물전달기술(DDS) 및 초저분자 공법을 도입해 유효 성분을 진피층까지 밀어 넣는 기술력이 뼈대가 됐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들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의약품 원료 정제 기술과 엄격한 임상 데이터 검증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화장품 사업 부문에 이식하면서 R&D 비용 대비 고마진을 창출하는 핵심 수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더마의 선두 주자는 동국제약이다. 동국제약은 간판 상처 치료제인 마데카솔의 핵심 원료 제조 노하우인 TECA(정제된 센텔라 아시아티카) 성분을 화장품에 이식해 더마 브랜드 '센텔리안24'를 내놨다. 센텔리안24의 대표 제품인 '더 마데카크림'은 고순도 TECA를 안정적으로 배합하는 데 성공하며 헬스케어 부문의 핵심 실적 견인차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 시장을 비롯해 글로벌 주요 국가에 진출하며 K-더마의 영토를 넓히고 있다.
대웅제약 역시 바이오 원천 기술을 화장품에 접목한 대표주자로 꼽힌다. 대웅제약은 자체 바이오 연구 역량을 담은 더마 브랜드 '이지듀(Easydew)'를 앞세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화약품 또한 상처 치료제 '후시딘'의 연구 개발 노하우를 화장품 제형으로 재해석한 '후시드 크림'을 선보이며 글로벌 트러블 케어 경쟁에 참여했다. 이처럼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의약품 개발 노하우로 만들어진 '더마 코스메틱'은 소비자의 신뢰도를 키우는 바탕이 되고 있다.
김주덕 서울사이버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화장품은 본래 이미지 산업"이라며 "더마 화장품은 제약 및 의약용 소재를 적극 활용한다는 신뢰가 형성돼 있다. 방한 외국인 관광객들도 필수 구매 품목으로 자리 잡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허위·과대광고 행정처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어렵게 더마 코스메틱 사업을 이어가는 실정"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보다 넓은 범위의 효능·효과 표현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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