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단독]"한국 인기 화장품" 검색 눌렀더니..2996원짜리 '라네즈'가 떴다
- 알고리즘 추천 검색어 누르자
라네즈 초저가 상품 노출
알리, 가품 논란 때마다 대책 내놨지만 같은 반복
K뷰티 브랜드 신뢰 훼손 우려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의 검색·추천 시스템이 K-뷰티를 찾는 소비자를 가품으로 의심되는 상품으로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플랫폼이 소비자의 검색·관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 인기 화장품’과 같은 추천 검색어를 먼저 제시하고, 이를 클릭하면 유명 K-뷰티 브랜드 상품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상가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초저가 상품까지 노출된다는 점이다. 가품이 개별 판매자를 통해 암암리에 유통되는 것을 넘어 플랫폼의 검색·추천 기능을 타고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K뷰티 ‘빅히트’템 가품 넘치는 알리
40대 주부 A씨는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쇼핑하다 눈길을 끄는 검색어를 발견했다. 쇼핑몰 검색창에 ‘한국 인기 화장품’이라는 문구가 자동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를 클릭하자 유명 K-뷰티 브랜드 제품이 잇따라 노출됐다. 그중 눈에 띈 상품은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 대표 제품인 ‘립 슬리핑 마스크’였다. A씨는 “제품 이미지가 라네즈와 똑같고 해외 소비자가 남긴 상품평도 좋았다”며 “무엇보다 가격이 2996원으로 정상 판매가격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직접 확인한 결과도 비슷했다. ‘한국 인기 화장품’을 검색하자 여러 K-뷰티 브랜드 제품이 동시에 노출됐다. 특히 북미와 유럽 등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라네즈 제품이 눈에 띄었다. 알리익스프레스 메인 화면으로 돌아가자 검색창에는 ‘한국 가장 많이 주문하는 화장품’이라는 추천 검색어가 자동으로 제시됐다. 이를 클릭하자 라네즈 제품이 상단에 노출됐다. 일부 상품 가격은 2000~5000원 미만이었다.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직접 검색한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 추천 검색어를 먼저 제시하고, 그 결과로 유명 브랜드 상품을 보여주는 구조라는 점이 문제다. 여기에 정품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초저가 상품까지 섞이면서 알리익스프레스의 검색·추천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K-뷰티 가품 판매를 돕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구매 후기다. 해당 상품을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스페인 소비자는 “정품인 것 같고 정말 빨리 도착했다. 가격 대비 성능이 믿기지 않을 정도”라는 취지의 후기를 남기며 별 다섯 개를 줬다.
업계 관계자는 “알리익스프레스의 제품이 가품인지 여부는 별도 감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온라인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후기를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는 소비자가 많다. 가품인 줄 모르고 구매한 소비자가 긍정적인 후기를 남기면 또 다른 소비자의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천 검색어→유명 브랜드 노출→초저가 상품 구매→정품으로 오인한 후기→추가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가품 시장에서 화장품의 비중은 적지 않았다. 소비자원이 2022년 1월부터 2025년 2월까지 국내외 주요 온라인 플랫폼의 가품 관련 상담 1572건을 분석한 결과 화장품은 196건으로 12.5%를 차지했다. 가방(21.0%), 신발(14.5%)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가격만의 문제도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정상가격보다 크게 낮게 판매되는 유명 브랜드 제품 10개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모두 정품과 일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화장품 5개는 용기 디자인과 색상, 로고 위치, 표시사항 등이 정품과 달랐으며 일부 기초·색조 화장품은 성분 구성에서도 차이가 확인됐다.
반복되는 ‘가품 대책’..K뷰티 신뢰도 흔들
알리익스프레스의 가품 논란은 새삼스럽지 않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외에서 가품과 유해상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판매자 관리 강화와 알고리즘 개선 등을 약속해왔다. 지난해에는 한국 브랜드와 지식재산권(IP)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젝트 클린’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글로벌 브랜드를 모은 ‘브랜드+’를 선보이며 정품 검증을 강화했다.
하지만 대책을 내놓은 뒤에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한 레이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대표는 가품과 유해상품 문제에 대해 알고리즘 개선, 판매자 관리 강화, 판매자 페널티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년도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답변이 나온 데 이어 구체적인 실행력을 놓고 질타가 이어졌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정품 검증을 거친 상품을 별도관에서 관리하는 것과 소비자가 검색창에서 처음 접하는 상품을 걸러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알리익스프레스가 이를 인지하고도 방치했다면 플랫폼 차원의 책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알리익스프레스의 플랫폼 관리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20일 알리익스프레스에 5억5000만유로(약 9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불법·위험·위조상품의 판매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차단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알리익스프레스의 위험평가 시스템과 콘텐츠 관리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고, 위조상품과 위험한 화장품 등의 유통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기존에 도입한 브랜드 인증 시스템 역시 불법상품을 차단하는 데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가품 문제를 개별 판매자의 일탈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타격 입는 K뷰티 이미지
K-뷰티 업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가품 유통을 막기 위해 다양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플랫폼과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13일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카피 기술이 발전하면서 용기나 제형, 색깔, 냄새까지 정품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내고 있다”며 “그러나 정품의 성분과 배합, 품질까지 그대로 따라 하기는 어렵다. 가품을 사용할 경우 피부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에서도 가품 유통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법기관이 아니다 보니 한계가 있다”며 “댓글이나 싼 가격만 보고 구매할 것이 아니라 정품을 판매하는 공식몰인지부터 확인해달라”고 당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외에서 위조품 차단을 위한 상시 모니터링과 단속도 병행하고 있다. 국내외 세관에 자사 상표를 등록해 통관 단계에서 위조품을 차단하고, 세관을 대상으로 위조품 식별 교육도 진행한다. 온라인에서는 내부 유관 부서와 지식재산보호원, 전문업체 등을 활용해 판매 현황을 상시 모니터링한다. 위조품 판매자가 적발되면 플랫폼 계정 삭제와 세관·특허청 특별사법경찰대 신고, 민·형사 소송 등을 진행한다. 국내 주요 온라인 플랫폼과는 위조품 감정 및 신고 체계를 구축해 판매 페이지 삭제와 법적 조치에도 나서고 있다. 해외에서는 현지 제조공장이나 창고를 추적해 형사 단속을 벌이는 등 생산 단계까지 대응 범위를 넓히고 있다.
K-뷰티가 세계 시장의 주류로 올라서면서 가품이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K-브랜드 위조물품은 11만7000점에 달했다. 주요 발송국은 중국이 97.7%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품목별로는 화장품이 4만1903건으로 전체의 35.9%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가품을 정품으로 믿고 사용하다 품질이나 안전성에 문제가 생기면 그 경험이 브랜드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K-뷰티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한국 인기 화장품’이라는 검색어 자체가 강력한 판매 자산이 되는 만큼 플랫폼도 검색 단계부터 의심 상품을 걸러낼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알리익스프레스의 국내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7월 알리익스프레스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821만7429명으로 전월보다 2.6% 증가했다. 지난해 12월(700만755명)과 비교하면 약 17.4% 늘어난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가품은 브랜드가 잘 팔릴수록 빠르게 늘어난다”며 “이제는 판매자가 가품을 올린 뒤 적발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가 검색창에 무엇을 입력하기도 전에 플랫폼이 추천 검색어를 제시하고 그 결과로 상품을 노출하는 구조라면, 무엇을 팔게 했느냐뿐 아니라 무엇을 보여줬느냐에 대한 플랫폼의 책임도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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