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공장은 살 수 있어도 수주는 못 산다” 모나미코스메틱 박경현의 ‘발품 영업’ [K뷰티공장에 뭉칫돈 몰린다]②
- 해외 브랜드 직접 찾아 수주…미국 키스뉴욕과 첫 계약
연말 가동률 50%·2028년 흑자 목표…색조 ODM 승부수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처음에는 미팅 한번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샘플을 들고 찾아가도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지난 7월 말 용인시 모나미코스메틱 공장에서 만난 박경현 대표가 담담하게 말했다. ‘국민 볼펜’ 기업 모나미가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사업에 뛰어든 지 3년여. 3100평 규모의 공장과 연간 4500만개의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박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외 고객을 찾아 나서는 일이었다.
화장품 용기 기업 연우에서 마케팅·해외영업을 맡은뒤 시너지파트너스와 나우코스를 거친 박 대표는 20년 가까이 화장품 업계 영업·마케팅 현장을 누빈 ‘뷰티통’이다. 지난해 2월 모나미코스메틱 대표에 취임한 뒤에는 미국·유럽·아시아를 오가며 고객사를 직접 만났다. 지난해 비행거리만 약 10만 마일에 달했다.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린 끝에 이제는 먼저 테스트와 미팅을 요청하는 브랜드도 생겼다.
박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처음 가진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공장은 살 수 있어도 수주는 살 수 없다. ODM은 제조업이면서 동시에 수주 산업”이라고 말했다.
문전박대에서 환대로
생산자 입장에서 K-뷰티는 이미 ‘레드오션’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브랜드를 잡기 위한 국내 ODM 업체들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생산시설만 갖췄다고 고객이 따라오는 시대도 아니다.
한국의 대표 문구 제조기업 모나미는 이 치열한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2023년 모나미코스메틱을 출범시킨 뒤 제조 기반을 갖췄고, 지난해 2월 박 대표를 선임하면서 해외 영업에 속도를 냈다.
“대표가 사무실에서 보고 의사결정만 하는 사람이면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나미에서는 처음부터 현장을 뛰겠다고 생각했죠.”
첫 성과는 지난해 3월 미국 출장에서 나왔다. 모나미코스메틱은 첫 해외 영업에서 미국 뷰티 브랜드 키스뉴욕과 계약을 맺었다. 이후 제품 기획과 개발을 거쳐 약 1년 3개월 만에 첫 제품 출시까지 이어졌다. 통상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2~3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빠른 속도다.
입소문이 나면서 해외 시장의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샘플도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샘플을 받아서 가고 일주일 뒤에 구체적인 피드백까지 줍니다. 예전에는 피드백을 주지도 않고 함흥차사인 경우가 많았는데 많이 달라졌습니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박 대표가 과거 해외 영업 현장에서 경험한 것은 문전박대에 가까웠다. 어렵게 미팅을 잡아 샘플을 들고 찾아가도 샘플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K-뷰티의 위상이 완제품 브랜드를 넘어 제조 역량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ODM 업체를 바라보는 해외 브랜드의 시선도 달라졌다.
박 대표가 현장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뷰티의 제조 경쟁력을 모나미코스메틱에 빠르게 이식하기 위해서다.
“고객사 직원의 얼굴을 보면 어떤 걸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걸 빠르게 캐치해서 연구소에 전달합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샘플을 다시 만들어 보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색이나 제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면 해외 출장 중에도 수정 샘플을 요청한다. 한국에서 다시 만든 샘플을 현지로 보내 고객이 원하는 수준에 맞을 때까지 조정한다.
“요즘 글로벌 자본이 한국 화장품 ODM사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돈으로 공장은 살 수 있지만 고객사로부터 수주는 살 수 없습니다. 뷰티 ODM은 제조업이면서 동시에 수주 산업입니다.”
모나미의 제조 DNA를 화장품으로
모나미는 1960년 광신화학공업사로 출발해 60년 넘게 필기구를 만들어온 제조기업이다. 1963년 ‘모나미 153’ 볼펜 생산을 시작한 뒤 사인펜·매직펜 등으로 제품군을 넓혀왔다.
“모나미는 문구회사지만 결국 용기를 사출하는 회사입니다. 볼펜도 플라스틱을 찍어내는 제품입니다. 그 기술을 화장품으로 돌리는 것이 모나미코스메틱의 역할이지요.”
색조 화장품은 특히 컬러 구현력이 중요하다. 발색과 제형, 용기의 조합에 따라 제품의 사용감과 완성도가 달라진다. 박 대표는 모나미가 가진 컬러 구현 능력이 색조 ODM에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색조는 무조건 발색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제형에 어떤 용기를 쓰느냐에 따라 발림성과 기능성도 달라집니다. 컬러를 잘 뽑아내는 것은 모나미만의 장점입니다.”
모나미코스메틱이 내세우는 또 다른 차별점은 ‘턴키’다. 자체적으로 모든 용기를 생산하는 대신 외부 업체에서 용기를 조달하더라도 고객사의 브랜드에 맞는 디자인과 기능을 제안하고 내용물과 결합한다. 같은 내용물이라도 스펀지가 얼마나 머금고 어떻게 뿜어내느냐에 따라 사용감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모나미코스메틱은 가격 경쟁 대신 연구·개발(R&D)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낮은 가격과 빠른 모방 능력을 앞세우는 만큼 이미 나온 제품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은 카피를 잘합니다. 그래서 R&D 투자가 중요합니다. 색조 트렌드는 반복되지만, 과거보다 무엇이 발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새로운 제형과 기능을 계속 만들어야 합니다.”
모나미코스메틱은 현재 약 20% 수준인 공장 가동률을 올해 말 50%까지 끌어올리고, 매출을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흑자 전환 시점은 2028년 상반기로 잡았다. 장기적으로는 색조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뒤 클렌징 등으로 제품군을 넓힐 계획이다.
모나미코스메틱은 단기간에 세계 각국의 뷰티 브랜드로부터 테스트와 미팅을 제안받는 회사로 올라섰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당분간 현장을 더 뛸 계획이라고 했다.
“송하윤 모나미 회장님께서 저를 믿고 맡겨주셨습니다. 빠르게 자립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출장을 3주씩 다녀도 수주에 성공한다면 그 보다 더 기쁜일이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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