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R&D 문턱, 낮아진 약가…중소 제약사 ‘이중고’
- [제네릭 구조조정]①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요건 14년 만에 대폭 강화
인증기업 47곳 중 중소사는 3곳…편법 영업 우려도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보건복지부가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및 관련 고시를 전면 개편했다. '혁신형 제약기업'의 연구개발(R&D) 인증 요건을 대폭 상향한 것이 골자다. 2012년 제도 시행 이후 14년 만의 대대적인 변화다.
정부는 연간 12조원이 넘는 복제약(제네릭)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제네릭 기본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R&D 투자 여력이 부족한 영세·중소 제약사들은 높아진 인증 문턱과 약가 인하라는 이중고에 놓였다.
약가는 내리고 R&D 문턱은 높이고
개정안의 핵심은 매출액 대비 R&D 비용 비중 요건의 일률적 상향이다. 직전 3개 연도 평균 매출액 1000억원 미만인 영세·중소 제약기업의 R&D 비율 기준은 기존 7%(최소 50억원)에서 9%(최소 70억원)로 올라간다.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인 중견·대형 제약기업의 기준 역시 기존 5%에서 7%로 2%포인트 상향 조정된다.
단순히 R&D 비율 기준만 올라간 것이 아니다. 보건당국은 회계 장부상 회계 처리를 통해 R&D 숫자를 부풀리는 꼼수를 차단하기 위해 인정 기준도 대폭 강화했다.
자회사가 부담한 R&D 비용과 다른 법인의 주식을 취득한 단순 지분투자금도 실적에서 제외된다. 제약사 본사가 직접 부담하고 당기 비용으로 처리한 연구개발비만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정안은 정부가 추진 중인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작동하며 중소 제약사를 더 압박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건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 만료 후 등록되는 제네릭의 기본 약가 산정 비율을 기존 53.55%에서 45% 수준으로 낮추는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반면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60%의 우대 산정률을 적용한다.
보건당국이 강력한 약가 인하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제네릭 건보 재정 지출이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네릭 의약품 급여로 지출하는 건강보험 재정 규모는 연간 약 12조3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초 국회에서는 국민이 부담한 건강보험 재정 가운데 매년 약 3조5000억원이 제네릭 의약품 ‘약가 거품’으로 지출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초 열린 약가 정책 토론회에서 "지난 20년간 높은 제네릭 약가는 혁신 투자로 이어지기보다는, 허가만 받아 차익을 남기는 소규모 제약사를 양산하는 구조를 고착화했다"며 "약가 구조를 정상화하지 않고서는 제약산업의 혁신적 R&D 투자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소 제약사 타격…편법 영업 늘어날까
제네릭을 주력으로 삼아온 중소 제약사의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매출 500억~800억원 규모를 형성하는 국내 제네릭 전문 중소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8% 수준에 불과하다. 연간 영업이익이 30억~50억원 안팎인 기업이 매년 최소 70억원을 R&D 비용으로 처리하며 인증 기준을 충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매년 70억원 이상의 현금을 R&D 비용으로 손익계산서에 털어 넣는 것은 재무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대 혜택을 받기 위해 R&D 기준(9%)을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R&D를 포기하면 제네릭 기본 약가 인하 정책에 노출돼 수익성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번 정책이 중소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의지를 끌어올리기보다, 제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지원책과 현장 제약사들의 체감 현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재 지정된 47개 혁신형 제약기업 중 매출 1000억원 미만의 전통 중소 제약사는 '대화제약·한국비엠아이·한국팜비오' 3곳뿐이다.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정부는 복제약에 의존해 판촉 영업을 벌이는 중소 제약사의 난립을 줄이는 정책을 지속해왔다”며 “R&D 비중을 꾸준히 높여온 대형 제약사도 약가 인하에 따른 매출 감소를 우려한다. R&D 여력이 부족한 제네릭 전문 중소 제약사는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국내 중소 제약사 가운데 상당수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 도전할 계획조차 없다”며 “약가 우대만으로 이들을 신약 개발에 뛰어들게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규제가 강화될수록 신약 개발보다 영업대행사(CSO)를 활용한 우회 마케팅이나 편법 영업에 비용을 더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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