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정부표 공짜 AI…국민 선택 받으려면[AI 주권의 미래는]②
- ‘독파모’ 엔진 얹은 대국민 무료 서비스
‘AI 격차 해소’ 취지 좋지만…범용 챗봇 한계 극복해야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대대한민국 인공지능(AI) 주권 확보와 전 국민 AI 일상화를 위한 정부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 AI 전략은 크게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과 ‘모두의 AI’라는 투트랙 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독파모가 글로벌 빅테크의 독점에 맞서 한국형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기반 모델’ 연구개발(R&D) 사업이라면, 모두의 AI는 그 엔진을 탑재해 전 국민이 일상과 공공 영역에서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급하는 서비스 구축 사업이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과 공공 인프라를 투입해 전 국민이 비용 부담 없이 생성형 AI를 쓰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산업계와 실사용자 사이에서는 근본적인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공짜라는 이유만으로 민간 유료 서비스를 압도하고 국민의 일상 도구로 안착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구심이다.
합종연횡 나선 ICT 공룡들
모두의 AI 사업은 국가 차원의 컴퓨팅 자원과 공공 데이터를 투입해 취약계층을 비롯한 전 국민의 ‘AI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월 28일 ‘모두의 AI’ 서비스 사업자를 선정했다. 9월 말 베타 서비스를 거쳐 12월 정식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정 기업은 범용 AI 챗봇 서비스와 공공 AI 에이전트를 전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모두의 AI 프로젝트 수행기관으로 SK텔레콤, 카카오, KT 등 3개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정부는 선정된 3개 사업자에게 올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B200 512장을 지원한다. 아울러 2027년부터는 정부 예산으로 전 국민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비용을 뒷받침할 방침이다.
SK텔레콤은 ▲굿닥 ▲노타 ▲라이너 ▲신한카드 ▲티맵모빌리티 ▲하나카드 ▲해빗팩토리 등 19개 기관과 컨소시엄을 꾸렸다. 이번 사업에 접수한 컨소시엄 중 가장 많은 기관이 참여했다. SK텔레콤은 독파모 프로젝트 2차 단계 평가를 통과한 ‘에이닷엑스 K2’ 모델을 앞세워 사업에 참여한다.
카카오는 ▲루닛 ▲서울대학교병원 ▲LG전자 ▲LG유플러스 ▲LG CNS ▲신한은행 등 14개 기관과 손잡았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독보적인 플랫폼 접근성과 자체 모델 ‘카나나’에 LG AI연구원의 초거대 AI ‘K-엑사원’, LG CNS의 공공 시스템 구축 역량을 합쳤다.
KT는 ▲다음 ▲리벨리온 ▲업스테이지 ▲NC AI ▲한국교육방송공사(EBS) 등 16개 기관을 컨소시엄으로 묶었다. 글로벌 벤치마크에서 기술력을 입증한 업스테이지의 경량화 거대언어모델(sLLM) ‘솔라’와 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의 국산 AI 반도체(NPU), KT의 클라우드·통신 인프라를 결합했다.
이 외에도 이스트소프트는 ▲메가존 ▲와이즈넛 ▲폴라리스오피스 ▲한국생산성본부 등 6개 기관과 함께했으며, 엠케이디와 제논은 컨소시엄 구성없이 단독으로 제안서를 냈으나 이번 모두의 AI 프로젝트 수행기관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다만 정부의 정책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시선은 아직 냉담한 편이다. AI가 단순한 호기심성 대화 도구를 넘어 직장인의 핵심 ‘생산성 도구’로 자리 잡으면서, 실사용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잣대는 ‘가격’이 아닌 ‘성능’이기 때문이다.
‘공공 앱 악몽’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개발자 A씨는 “직장인들이 매달 약 3만원 안팎의 비용을 내면서 챗GPT나 클로드를 구독하는 이유는 결과물의 품질 때문”이라며 “복잡한 데이터 분석이나 코딩, 장문의 보고서 요약에서 환각(할루시네이션·거짓 정보를 사실처럼 생성하는 현상)이 발생하면 이를 검증하고 수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사무직군과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생성형 AI의 1~2% 성능 차이는 업무 소요 시간을 수 시간씩 단축하는 결정적 변수다.
이러한 시장 논리 속에서 성능이 보장되지 않는 공짜 도구는 업무 현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무료지만 쓰기 답답한 국산 챗봇’ 대신 ‘돈을 내더라도 확실한 글로벌 선도 모델’을 선택하는 쏠림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과거 정부와 지자체가 막대한 세금을 들여 개발했다가 민간 플랫폼에 밀려 사장된 수많은 ‘공공 앱’의 실패 사례는 모두의 AI 사업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반면교사다.
전문가들은 모두의 AI가 빅테크의 유료 구독 모델 틈바구니에서 실질적인 생존력을 확보하기 위해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은 범용 생성 기능이 아닌 ‘한국형 공공·행정 버티컬 에이전트’로의 특화다. 오픈AI나 구글, 앤트로픽 등 글로벌 기업은 국내 행정망 깊숙한 곳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다. ▲주민등록등본 발급 ▲복지 혜택 자동 매칭 및 신청 대행 ▲국세청 연말정산 상담 등 공공 데이터와 안전하게 연동돼 민원 업무를 직접 해결해 주는 ‘실행형 AI’가 돼야만 독보적인 대체 불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필요한 서류를 AI에 요청하면 자격 여부를 판단하고 서류를 준비한 뒤 이용자의 승인을 받아 해당 기관에 제출하는 수준까지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배경훈 장관은 “12월부터는 그 정도의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차별화는 고령층과 디지털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역할의 정교화다. 복잡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익숙지 않은 취약계층을 위해 대화형 인터페이스나 정교한 한국어 음성 인식(STT) 기술을 결합해야 한다.
일상적인 복지 상담, 병원 예약 등 생활 밀착 지원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독파모’와의 유기적 데이터 선순환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모두의 AI를 통해 유입되는 국민의 실제 데이터와 서비스 피드백이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의 지속적인 고도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의 AI 사업의 성공 여부는 ‘공짜’라는 가격표가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가 주지 못하는 한국인 맞춤형 편익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빅테크의 범용 모델을 공짜로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문다면 과거 공공 앱의 실패를 답습하게 된다”며 “해외 기업이 접근할 수 없는 공공·행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복지 신청이나 민원 해결 등 국민 실생활의 문제를 직접 끝까지 처리해 주는 대체 불가능한 편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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