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발란스 내주고 호카 품은 이랜드…뺏고 뺏기는 글로벌 판권
- [뺏고 뺏기는 글로벌 판권 잔혹사]①
250억원 뉴발란스 1조원대로 키웠지만 본사가 '직진출'
8년간 조이웍스가 맡은 호카는 이랜드 새 유통사로
공교롭게도 이랜드는 최근 조이웍스가 키워온 호카의 새로운 국내 공식 유통사로 선정됐다. 한쪽에서는 본사의 직접 진출을 맞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존 총판을 대신해 새로운 판권을 확보한 셈이다. 글로벌 브랜드 판권 시장에서 ‘뺏는 기업’과 ‘뺏기는 기업’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250억원 뉴발란스, 1조원대로 키운 이랜드
이랜드가 뉴발란스의 국내 사업을 맡은 것은 2008년이다. 당시 국내 연매출은 약 250억원이었다. 이랜드는 신발 중심이던 상품군을 의류와 아동복으로 넓히고 매장을 확대했다. 국내 소비자에 맞춘 상품 기획과 마케팅에도 투자했다.
그 결과 뉴발란스 국내 매출은 2024년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16년 만에 40배 이상 성장했다. 2025년에는 1조2000억원 규모까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뉴발란스는 이랜드월드 패션부문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핵심 브랜드가 됐다.
사업이 커지자 본사도 한국 시장에 직접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뉴발란스는 국내 법인인 뉴발란스코리아를 설립했으며 2027년 1월 1일부터 한국 사업에 직접 참여할 예정이다. 이랜드가 운영해온 뉴발란스 공식 온라인몰과 멤버십도 올해 말 종료된다.
그렇다고 이랜드가 곧바로 뉴발란스 사업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다. 양측 계약은 2030년까지 연장돼 있으며 법인 설립 이후 구체적인 역할 분담은 현재 협의 중이다.
뉴발란스 사업의 구조가 바뀌는 시점에 이랜드가 새로 확보한 브랜드는 호카다. 호카를 보유한 미국 데커스브랜즈의 아시아·태평양 법인은 지난 8월 20일 이랜드를 새로운 한국 공식 유통사로 선정했다. 사업 개시 시점과 세부 조건은 아직 협의 중이다.
호카는 국내 러닝 인구 증가와 함께 빠르게 성장한 브랜드다. 두꺼운 밑창과 쿠션 기능을 앞세워 전문 러너 사이에서 인지도를 높인 뒤 일상화와 패션 영역으로 소비층을 넓혔다.
국내 사업을 키워온 곳은 조이웍스다. 2018년부터 8년간 호카를 유통했고, 조이웍스 측에 따르면 회사 매출은 2022년 228억원에서 2024년 820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조성환 전 조이웍스 대표의 거래처 관계자 폭행 사건이 불거지고 조 전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데커스는 조이웍스에 국내 총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조이웍스는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며 미국 국제분쟁해결센터(ICDR)에서 중재를 진행하고 있다. 계약 해지의 유효성과 양측의 권리관계에 대한 최종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데커스가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한 곳이 이랜드다. 이랜드는 뉴발란스를 국내에서 1조원대 브랜드로 성장시킨 경험이 호카 사업에서도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는 국내 스포츠 패션 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성장시킨 경험과 유통·상품 기획·마케팅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데커스와 호카를 한국에 안착시키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랜드 커지면 본사의 계산도 달라진다
뉴발란스와 호카 사례는 글로벌 브랜드와 국내 유통사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해외 브랜드가 처음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부터 법인과 조직을 갖추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시장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장과 인력, 물류망까지 직접 구축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현지 유통사를 활용하면 본사는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 시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상황은 브랜드가 커지면 달라진다. 매출과 고객층이 일정 수준에 올라오면 본사가 직접 투자했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수익도 커진다. 기존 파트너와 계속 사업할지, 직접 진출할지, 새로운 파트너를 찾을지를 다시 계산하게 되는 시점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해외 본사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한국에 법인과 조직을 만드는 데 부담이 있어 현지 파트너를 통해 시장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매출이 커지고 고객층이 만들어지면 직접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과 위험을 다시 계산하고, 그때부터 직진출이나 파트너 교체도 선택지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 입장에서도 해외 브랜드 판권은 매력적인 사업이다. 해외에서 상품성을 인정받은 브랜드에 국내 유통망과 마케팅 역량을 더하면 비교적 빠르게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브랜드를 성공시킬수록 본사의 선택지도 많아질 수 있다. 국내 시장이 충분히 커지면 본사가 직접 진출할 유인이 생기고, 더 큰 유통사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할 수도 있다. 국내 업체가 브랜드를 키우는 데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도 브랜드 소유권과 사업 파트너를 결정할 최종 권한은 본사에 있다.
뉴발란스와 호카가 묘하게 교차하는 지점도 여기다. 이랜드는 뉴발란스를 250억원에서 1조원대 브랜드로 키운 뒤 본사의 한국 직접 진출을 맞았다. 동시에 호카에서는 8년간 브랜드를 키워온 조이웍스를 대신할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됐다. 판권 사업에서 국내 유통사는 언제든 ‘키운 기업’인 동시에 ‘대체될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패션업계 관계자는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서 키우는 데는 유통사의 자금과 인력이 들어가지만 브랜드에 대한 최종 권한은 본사가 갖고 있다”며 “브랜드를 잘 키웠다고 사업권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어서 본사의 직진출이나 파트너 변경 가능성까지 감안하고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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