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값 흔드는 중국산 전기차] ①
중국산 전기차, 가격 ‘심리적 저항선’ 낮춰
가격 주도권 흔들린 현대차·기아…전동화 전환도 부담
더 큰 문제는 중국산 전기차가 소비자들이 받아들이는 ‘적정 가격’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격 주도권이 중국산 전기차로 넘어갈 경우 완성차 업체들의 가격 전략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원가와 상품성을 기준으로 가격을 정하기보다 중국산 전기차가 먼저 제시한 가격을 의식해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산 가격 공세에 맞선 현대차·기아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에 먼저 불을 붙인 곳은 테슬라다. 테슬라코리아는 지난해 12월 말 모델3와 모델Y의 국내 판매가격을 최대 940만원 내렸다. 모델3 퍼포먼스는 6939만원에서 5999만원으로, 모델Y 프리미엄 RWD는 5299만원에서 4999만원으로 낮아졌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테슬라 주력 차종 상당수는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다.
여기에 BYD도 가세했다. 전기차를 2000만~4000만원대에 촘촘하게 배치했다. 소형 전기차 돌핀은 2450만원부터 시작한다. 아토3 플러스는 3490만원, 중형 전기 세단 씰은 3990만원,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씨라이언7은 4490만원부터다. 모두 보조금 적용 전 가격이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인 중형 SUV 씨라이언 6 DM-i도 3750만원에 내놨다.
BYD는 정부 보조금이 끊긴 뒤에도 가격 경쟁을 이어갔다. 지난 7월 전기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에서 탈락해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기존 보조금에 상응하는 자체 지원금을 지급했다. 보조금 중단에 따른 실구매가 상승분을 자체 재원으로 메운 셈이다.
이 같은 부담은 실제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기아는 올해 초 EV5 롱레인지 판매가격을 280만원, EV6는 300만원 각각 내렸다. 일회성 할인이나 프로모션이 아니라 공식 판매가격 자체를 낮췄다. 중국산 전기차와 가격을 비교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가격을 직접 내리는 대신 금융 혜택을 확대했다.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코나 일렉트릭 등의 할부 금리를 낮추고 생산월 할인과 트레이드인 혜택을 더했다. 가격표는 유지하면서 실제 구매 단계에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다.
韓·中 가격 경쟁에도 獨 3사는 관망 모드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3사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대중 전기차 시장의 가격 경쟁을 자사 차량 가격까지 끌어내릴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중국산 전기차와 고객층과 가격대가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한 수입차 브랜드 임원은 “자동차는 통상 비슷한 급으로 옮기거나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간다”며 “중국산이나 국산 전기차를 먼저 경험하면 전기차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이후 차량을 바꿀 때 프리미엄 브랜드를 고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중국산 전기차를 당장 큰 위협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독일 3사가 바라보는 중국산 전기차의 역할은 현대차·기아와 다르다. 현대차·기아에는 같은 고객을 두고 가격을 겨뤄야 하는 직접적인 경쟁자다. 반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에는 전기차 시장의 입구를 넓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산 전기차로 전기차를 처음 경험한 소비자가 다음 차를 고를 때는 가격뿐 아니라 브랜드와 성능, 서비스까지 따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굳어지면 국내 완성차 업체가 단순히 점유율만 잃는 데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더 큰 문제는 ‘가격 결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이다. 가격을 주도하는 업체가 시장의 기준을 만들고, 나머지 업체가 이를 따라가는 구조가 자리 잡을 수 있어서다. 중국산 전기차의 진짜 위협이 판매량보다 가격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가격 측면에서 중국 업체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전기차 적정 판매가격이 4000만~5000만원은 돼야 한다는 일종의 심리적 저항선이 있었지만, 중국산 전기차가 이를 한 단계 낮춰놨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낮아진 가격 기준을 현대차·기아가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전기차 가격 경쟁이 심해져 현대차·기아가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면 전동화 전환에도 부담이 된다”며 “보조금에 기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자체적으로 원가를 낮출 방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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