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이름 값 못하는 ‘우선주’…보통주 반도 안되는 값에 거래
- [韓 우선주는 왜 ‘후선주’가 됐나]①
“100원 더 배당하는 생색내기용”
경영권 분쟁 시 우선주 소외 더 커져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평상시에는 기업이 (우선주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아쉬울 때만 내 자식처럼 껴안는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40대 회사원 A씨는 지난 6월 삼성전자의 우선주 감싸기 발언이 나온 뒤 이렇게 말했다. 지난 6월 22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 기준 1~2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시가총액을 계산할 때 우선주를 포함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보고 황당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당시 두 기업은 주가 급등으로 시가총액이 2000조원을 웃돌았고 보통주 기준으로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을 앞서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서 삼성전자가 시가총액 1위를 빼앗겼다는 보도가 나오자 삼성전자 측은 “기업의 시가총액은 보통주와 우선주를 포함한 전체 주식 가치의 합계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보도에서 우선주를 제외한 보통주 기준 시가총액만으로 기업 전체 시가총액을 산출해 투자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2일 기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약 2080조원 삼성전자(보통주 기준)는 2066조원이었다. 그런데 179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우 시가총액을 더하면 삼성전자 전체 시가총액이 약 2245조원으로 SK하이닉스를 앞선다.
삼성전자의 설명처럼 기업의 시가총액을 계산할 때 보통주와 우선주 총액을 더하는 것이 맞는 계산법이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A씨처럼 기업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기업이 평소에는 우선주에 대한 주가 관리에 소홀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렇게 자존심 대결이 벌어지면 그제야 우선주도 엄연한 ‘주식’이라고 강조한다는 지적이다.
보통주 대비 최대 70% 감가… ‘디스카운트’가 당연한 한국 시장
한국거래소(KRX)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기업의 보통주와 우선주의 괴리율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70%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8월 31일 기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우는 각각 26만원, 18만6500원으로 우선주 가격이 28.27% 저렴했다. ▲현대차우선주(18만9700원)의 경우 현대차(40만3500원)보다 약 53%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LG화학우(12만7400원)도 LG화학(28만원)의 절반 수준이었고 ▲한진칼우(2만9850원)는 한진칼(13만3000원)의 23% 수준에 머물렀다.
우선주란 통상 의결권을 제한받지만 보통주와 비교해 이익이나 이자의 배당 또는 잔여 재산 분배에서 우선순위를 갖는 주식을 말한다. 금융 선진국에서는 의결권이 없는 상황을 보상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보통주보다 프리미엄이 붙거나 최소한 비슷한 가격에 거래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우선주 프리미엄이 아니라 ‘디스카운트’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고착화했다.
지난 8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개최한 ‘은폐된 한국 우선주 디스카운트 문제와 그 해법’ 세미나에서 공개된 자료를 보면 7월 말 기준 국내 상장 우선주 114개 가운데 괴리율 상위 10개 종목은 보통주보다 평균 71% 싸게 거래됐다.
생색내기 배당, 정관 속 무색한 ‘우선권’…해외선 ‘고정 배당’ 사례도
이 같은 괴리율의 핵심 원인으로는 실질적 혜택이 없는 배당 정책이 꼽힌다. 삼성전자의 정관을 보면 ‘1997년 2월 28일 이전에 발행된 비누적적,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에 대하여는 보통주식에 대한 배당보다 액면금액을 기준으로 년 1%를 금전으로 더 배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삼성전자 주식의 액면가가 1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선주는 보통주보다 주당 단 1원을 더 배당받는 셈이다. 정관에 따르면 보통주식에 대한 배당을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해당 우선주에 대해서도 배당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50대 1 액면분할을 시행했던 2018년, 정관을 개정해 새로 발행하는 우선주의 경우 액면금액 기준 연 9% 이상 우선배당률을 정하도록 했고 발행일로부터 10년 뒤에는 보통주로 전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 실제 우선주를 추가 발행하지는 않았다.
현대차 역시 사정은 유사하다. 현대차우·현대차2우B·현대차3우B 등 3가지 우선주를 발행한 현대차는 최저우선배당률을 액면가(5000원) 기준 최대 2%로 제한한다. 최저우선배당이란 우선주에 먼저 배당하고 나머지 금액을 우선주와 보통주에 나눠 지급하는 방식이다. 정관상 최저우선배당률이 액면가의 1~2%에 불과해 우선주주가 보통주보다 더 받는 배당금은 주당 50~100원에 그친다. 현대차가 2027년까지 주당 1만원 배당을 추진하더라도 우선주 주주가 받는 배당금은 보통주보다 겨우 50~100원 많은 1만50~1만100원 수준이다.
반면 미국 등 해외 증시에서는 우선주가 보통주보다 대폭 할인돼 거래되는 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의결권이 없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배당 우대와 주주 보호 장치가 제도적·사법적으로 마련되어 있어서다. 미국 우선주는 연 5~7%의 고정배당과 청산 우선권을 보장하는 경우가 흔하다. 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 클래스C(Alphabet Class C)는 의결권이 있는 알파벳 클래스A(Alphabet Class A)와 거의 비슷한 가격에 거래된다.
경영권 분쟁서 버림받는 우선주… 해외선 우선주
우선주의 한계는 기업에 경영권 분쟁이나 지배구조 이슈가 발생할 때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해 보통주 주가는 치솟지만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는 외면받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지배회사인 한진칼이 대표적인 사례다.
2020년 전후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면서 보통주 가격은 우선주를 2~3배 이상 웃돌았다. 최근 최대주주인 조원태 회장 측과 2대주주인 호반 측의 지분 차이가 좁혀지면서 분쟁 가능성이 재차 불거지자 보통주와 우선주의 가격 괴리율은 한층 더 벌어지는 양상이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이사는 “한국 우선주는 배당과 청산에서 실질적인 우선권이 없는 무의결권 보통주에 불과하다”며 “의결권만 없애고 우선주라는 명칭을 붙인 구조가 시장 왜곡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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