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한달이면 짝퉁 나온다 … 전 세계로 번진 ‘가짜 K뷰티’ 비상
- [K화장품 잔혹사] ②
해외 위조 화장품 차단 3만6116건…2년 만에 두 배 넘어
제조·유통 분업화에 세계로 확산…브랜드 보호 비용도 커져
위조품이 정교해지고 유통망도 조직화하면서 국내 화장품 업체들의 대응도 달라졌다. 해외 판매가 늘어날수록 가품을 찾아내고 차단하는 ‘브랜드 보호’ 업무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한 달이면 짝퉁 등장…제조·유통도 분업화
위조품 증가세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식재산처에 따르면 해외 온라인에서 차단된 K-브랜드 위조 화장품은 2023년 1만6774건에서 2024년 2만3494건, 지난해 3만6116건으로 늘었다. 2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지난해에만 전년보다 53.7% 늘었다.
위조품이 등장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위조업자들은 K-뷰티 신제품이 출시되면 온라인 판매 페이지부터 만든다. 소비자 반응과 주문량을 살펴 수요가 확인되면 원료와 용기, 포장재 등을 확보해 생산에 들어간다. 신제품 출시 한 달여 만에 위조품이 등장하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생산 방식도 조직화하고 있다. 판매자가 직접 제품을 만드는 대신 별도의 제조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식이다. 제조업체가 특정 브랜드와 비슷한 용기와 포장재를 마련하고 내용물을 채워 완제품 형태로 공급한다. 생산과 판매를 분리하는 일종의 ‘분업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 현지에서는 실제 대규모 위조품 생산시설도 적발됐다. 지난 5월 중국 광둥성 자오칭의 약 2000㎡ 규모 시설에서 화장품 원료와 용기, 뚜껑 등이 발견됐다. 원료 배합부터 충전, 라벨 부착, 포장까지 한곳에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에서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의 가품 1400여개가 압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달 광둥성 산터우에서는 임시 건축물과 철제 간이창고 등 여러 장소에서 K-화장품 위조품이 발견됐다.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방식뿐 아니라 생산·보관 공간을 여러 곳으로 쪼개 단속을 피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조품은 현지 화물 운송망을 통해 선전과 둥관 등 물류 거점으로 이동한 뒤 유럽과 중동, 미국 등으로 퍼져나간다. K-뷰티의 판매 지역이 넓어지면서 짝퉁의 유통 범위도 함께 넓어지는 모습이다.
지워도 다시 등장…‘짝퉁 잡기’도 상시 업무
기업 입장에서는 위조품 하나를 찾아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선미녀와 티르티르 등을 운영하는 구다이글로벌은 가품 판매 게시물을 삭제해도 동일 판매자가 계정을 바꿔 제품을 다시 등록하거나 새로운 판매자가 등장하는 사례를 확인하고 있다. 한 번의 삭제만으로 위조품 유통을 막기 어려운 이유다.
구다이글로벌은 전문 조사기관을 통해 위조품으로 의심되는 제품을 직접 구매한 뒤 정밀 분석해 가품 여부를 확인한다. 판매자 정보와 유통 경로도 축적해 반복적으로 가품을 판매하는 업자를 추적한다. 상습적이거나 대규모 유통이 확인되면 플랫폼에 계정 제재를 요청하고 현지 법적 조치도 검토한다.
해외 사업 확대와 함께 관련 업무가 늘자 2024년에는 사내 지식재산권(IP) 전담 조직도 신설했다. 글로벌 브랜드 보호 전문업체와 협력해 자동으로 위조품을 탐지하고 판매 게시물을 삭제하는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다른 K-뷰티 업체들도 ‘짝퉁 잡기’에 별도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메디큐브를 운영하는 에이피알은 최근 아마존과 틱톡샵 등에서 지식재산권 침해와 가품을 모니터링하고 플랫폼 제재를 담당할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브랜드 사칭 사이트 대응과 플랫폼과의 협력을 통한 브랜드 보호 체계 구축도 주요 업무다.
스킨1004 운영사 크레이버코퍼레이션도 IP 담당 인력을 채용하면서 국내외 상표 출원과 분쟁 대응, 세관 통지 대응 등을 주요 업무로 제시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위조품 조사·단속까지 업무에 포함했다.
문제는 위조품이 갈수록 정교해진다는 점이다. 지식재산처는 지난 9월 4일부터 서울 한국지식재산센터와 정부대전청사에 위조상품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서울 전시장에는 화장품과 신발 등의 실제 압수 위조품을 정품과 나란히 전시했다. 제작 수법이 정교해지면서 외관만 보고 정품과 가품을 구분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위조품은 단순히 브랜드의 매출을 빼앗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품 제조사가 품질과 안전성을 보증할 수 없는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가 이를 해당 브랜드의 문제로 오인할 수 있다. 짝퉁이 정교해질수록 브랜드 신뢰까지 훼손할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구다이글로벌 관계자는 “비공식 유통 경로에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가 정품 여부나 정품과 다른 사용감·품질 등을 문의하는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위조품을 적발하더라도 실제 수사와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상표권을 침해할 경우 법정형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다. 하지만 K-화장품 위조품은 중국 등 해외에서 제조된 뒤 여러 국가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아 국내 기업이나 수사기관이 직접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생산지와 판매 국가가 다르면 현지 수사당국과 세관, 온라인 플랫폼 등의 협조도 필요하다.
정부도 단속 범위를 넓히고 있다. 관세청은 해외직구를 이용한 위조상품 반입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이브 방송 등을 통한 불법 유통을 집중 단속하고 외국 세관·수사기관과 공조를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 생산·유통 조직을 겨냥한 합동 단속도 추진한다.
업계 관계자는 “신제품 출시 직후부터 온라인에서 수요를 확인하고 짧은 기간 안에 위조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판매 단계에서 가품을 삭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 단계부터 추적할 수 있는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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