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손가락·옷깃·눈앞 노렸지만…‘제2의 스마트 워치’는 없었다
- [손목 넘지 못한 웨어러블]①
AI 핀·갤럭시 링 등 잇단 고전…스마트 글라스도 대중화 먼 길
기술 신기함만으론 부족…“비싼 보조 센서 불과”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넥스트 스마트폰’을 표방하는 차세대 기기를 찾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스마트워치를 넘어 대중화에 성공한 기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스마트워치 시장마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손가락에 끼우는 스마트 링부터 옷깃에 다는 인공지능(AI) 핀, 얼굴에 쓰는 스마트 글래스까지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스마트워치는 스마트폰의 파생 제품으로 안착했지만 후속 기기들은 그 벽을 넘지 못했다. 수많은 혁신 기기가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소비자의 일상을 파고들지 못한 채 ‘얼리어답터용 장난감’이나 ‘반짝 유행’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편의성 앞세운 ‘갤럭시 링’…워치 벽 못 넘고 틈새로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의 스마트 반지 ‘갤럭시 링’이다. 갤럭시 링은 시계를 차고 자는 것이 불편한 이용자를 겨냥해 가벼운 무게와 수면·건강 정보 측정의 연속성을 앞세웠다. 반지 안쪽에 정밀 센서를 넣어 심박수와 피부 온도, 수면 중 움직임 등을 24시간 추적한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디스플레이가 없고 기존 스마트워치와 기능이 겹친다는 점이다. 약 50만원에 달하는 고가 기기인데도 화면이 없어 측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려면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 앱을 켜야 한다.
운동 자동 인식 기능도 걷기와 달리기 등 일부 종목에 한정된다. 통화·메시지 알림이나 간편결제 같은 일상적인 편의 기능도 제공하지 못한다. 건강관리 측면에서도 갤럭시 워치와 비교해 측정 정밀도나 분석 데이터에서 뚜렷한 우위를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시계를 차고 자는 것이 불편한 소수 이용자’를 위한 보조 기기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옷깃에 달거나 손에 쥐는 독립형 AI 기기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더 냉정하다. 생성형 AI 열풍을 타고 ‘화면 없는 스마트폰의 대체재’로 주목받았던 미국 스타트업 휴메인의 ‘AI 핀’(AI Pin)과 래빗의 ‘래빗 R1’(Rabbit R1)은 출시 직후부터 고전했다.
애플 출신 개발진이 창업해 기대를 모았던 AI 핀은 699달러(약 93만원)의 본체 가격에 매달 24달러의 구독료까지 요구했다. 손바닥에 레이저로 화면을 투사하는 미래지향적인 방식을 선보였지만 야외 시인성이 떨어지고 기기 발열과 배터리 소모가 심했다. 음성 명령에 대한 응답 속도도 스마트폰보다 느려 이용자의 불만을 샀다.
전용 운영체제(OS)와 거대행동모델(LAM)을 앞세웠던 래빗 R1도 스마트폰 앱을 원활하게 제어하지 못했다. 결국 ‘플라스틱 껍데기를 씌운 저성능 안드로이드폰’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2010년대 초반 사생활 침해 논란과 기술적 완성도 부족으로 소비자 시장에서 철수한 ‘구글 글래스’의 전철을 형태만 바꿔 되풀이한 셈이다.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 글래스는 일부 마니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워치 판매량과 비교하면 대중화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AI 글라스 출하량은 870만대로 2024년보다 322% 급증했다. 이 가운데 메타가 85.2%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워치 출하량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와 IDC 집계 기준 약 1억6000만대에 달했다.
화면도 독립 연산도 없다
전문가들은 신규 웨어러블 기기가 고전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화면의 부재’와 ‘독립 연산 능력의 부족’을 꼽는다.
사람은 시각 정보와 즉각적인 터치 방식에 익숙하다. 글과 사진, 영상을 빠르게 훑는 방식과 비교하면 음성이나 진동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적다. 텍스트 몇 줄은 1~2초 만에 읽을 수 있지만 음성 비서가 이를 읽어주거나 좁은 화면에 투사해 보여주려면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연산 능력과 통신망도 대부분 스마트폰에 의존한다. 소형 웨어러블 기기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고성능 칩과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기 어렵다. 복잡한 작업을 스마트폰 테더링이나 클라우드 서버에 맡기면서 통신 지연이 발생하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운 ‘종속적인 센서’에 머물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미 고가의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데 수십만원을 더 지출해 충전과 착용의 번거로움을 감수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차세대 기기가 스마트워치처럼 시장에 안착하려면 스마트폰을 주머니나 가방에서 꺼내는 수고를 획기적으로 줄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스마트워치는 손목을 들어 즉시 알림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거나 생체 신호를 연속으로 측정하는 명확한 효용을 제시했다. 덕분에 스마트폰의 핵심 파생 기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반면 스마트 링은 화면이 없어 알림 전달력이 떨어지고, AI 핀은 공공장소에서 음성으로 대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거부감을 넘어서지 못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스마트폰이라는 완벽한 범용 기기를 두고 새로운 기기를 신체에 착용하도록 만들려면 기술적 신기함을 넘어 일상적인 편익을 증명해야 한다”며 “현재 기술 수준의 링과 핀, 글래스는 여전히 스마트폰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온디바이스 AI의 성능 향상과 초경량 디스플레이 혁신이 결합하기 전까지는 찻잔 속 태풍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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