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퇴직금 불리려다 날벼락”…DC형 갈아탄 직장인 수익률 '-10%'
- [롤러코스피 생존법]②
올 상반기 증시 랠리에 DB형서 DC형 전환 급증
TDF·지수형 ETF 핵심 자산 구성...섹터형 상품 보조 활용
직장인 김 모씨(50대)는 연초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매월 30만원 이상을 납입하기로 하고 노후자산 관리에 나섰다.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상품은 국내 반도체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였다. 증시 상승세에 계좌 수익률이 뛰자 투자 비중을 확대했고, 안전자산으로 보유하던 정기예금까지 해지해 투자금을 추가로 투입했다.
그러나 증시가 급락세로 돌아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반도체 업황과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흔들리자 계좌 손실에 대한 불안도 커졌다. 김씨는 이달 초 은행을 찾아 퇴직연금 운용 전략을 상담했다. 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특정 업종에 집중된 투자 비중을 낮추고 타깃데이트펀드(TDF)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추종 ETF 등을 활용해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라고 조언했다.
김씨는 반도체 ETF 보유량의 약 60%를 매도하고 투자 자산을 재배분했다. 반도체의 성장 가능성은 유지하면서 다른 자산을 함께 편입해 시장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겠다는 판단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증시가 강세를 보이면서 퇴직연금을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전환한 가입자도 급증했다. 주식시장 상승세를 활용해 노후자산을 적극적으로 불리려는 수요가 커졌지만, 급락장이 찾아오면서 투자 손실 위험도 부각되고 있다. 시장이 오를 때는 직접 운용이 높은 수익을 얻을 기회로 보이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실 역시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7월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한 가입자는 14만971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1.2% 증가했다. 증시 활황 속에 퇴직연금도 직접 운용해 추가 수익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형(DB형)과 확정기여형(DC형)으로 나뉜다. DB형은 일반적으로 퇴직 전 평균임금과 근속연수 등을 기준으로 퇴직급여가 산정되며 적립금 운용 손익은 회사가 부담한다. 반면 DC형은 회사가 매년 근로자 연간 임금의 12분의 1 이상을 부담금으로 납입하고 가입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한다. 운용 성과에 따라 퇴직 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진다.
DC형은 투자 선택권이 넓다는 장점이 있지만, 운용 성과가 나쁘면 노후자산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주가가 상승한 뒤 투자 비중을 늘리면 고점 매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반도체나 인공지능(AI)처럼 성장 기대가 높은 산업에 집중 투자했다가 업황이 악화하면 계좌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실제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한 가입자들이 전환 직후 하락장을 맞으며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해당 가입자들은 7~8월 단순 기간수익률이 각각 -10.7%, -10.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18.1% 하락한 가운데 직접 운용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려던 가입자들도 시장 급락의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노후자금인 퇴직연금에서 두 달 만에 10% 안팎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투자 위험 관리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ETF는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고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여러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ETF라는 이유만으로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추종 지수와 투자 대상, 편입 종목 수, 운용 방식에 따라 위험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시장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형 ETF나 여러 국가와 산업에 분산 투자하는 상품은 특정 업종에 집중된 상품보다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반도체·AI·우주항공 등 섹터형 ETF는 해당 산업이 성장할 때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지만, 업황이 꺾이면 손실 폭도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포트폴리오의 중심에 분산형 상품을 두고 특정 산업에 투자하는 상품은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핵심·위성 전략을 제안한다. TDF나 글로벌 주식시장 대표 지수형 상품을 핵심 자산으로 구성하고, 반도체 등 개별 산업 ETF를 위성 자산으로 편입하는 방식이다. 다만 S&P500 등 대표 지수형 상품도 주식시장 전반이 하락하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원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TDF는 목표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과 채권 등의 비중을 조정하는 상품이다. 직접 자산배분을 하기 어려운 가입자에게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상품마다 자산 구성과 위험 수준, 운용 전략이 다르다. 가입 전에는 편입 자산과 수수료, 손실 가능성 등을 확인해야 한다.
직접 투자 상품을 고르기 어렵다면 디폴트옵션이나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디폴트옵션은 DC형과 IRP 가입자가 일정 요건 아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지정한 방법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원리금보장형부터 펀드를 활용하는 상품까지 위험 수준에 따라 선택지가 나뉜다.
디폴트옵션을 지정했다고 곧바로 적립금 전체가 해당 상품에 투자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상 적용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가입자가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할 수도 있다. 은퇴가 임박한 가입자는 손실을 회복할 시간이 짧은 만큼 안정성을 우선하고, 은퇴까지 시간이 충분히 남았다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성장자산을 편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의 성향과 목표를 분석해 알고리즘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계약에 따라 운용하는 서비스다. 투자 경험이 부족하거나 계좌를 장기간 방치하기 쉬운 가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자동 운용이 손실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운용 보수와 투자 방식, 손실 가능성을 비교하고 정기적으로 성과를 점검해야 한다.
해외 투자 상품에 가입할 때는 환율도 살펴야 한다. 환헤지형은 환율 변동의 영향을 줄이는 대신 헤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환노출형은 환율 변동에 따른 이익과 손실이 원화 기준 수익률에 반영된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투자 기간과 환율 전망, 비용 등에 따라 달라진다.
퇴직연금 유형을 선택할 때도 최근 수익률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DB형은 임금 상승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근로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고, DC형은 직접 운용을 통해 장기 수익을 추구하려는 근로자에게 적합할 수 있다. 다만 DC형으로 전환하기 전에는 회사의 퇴직연금 규약과 전환 조건을 확인하고, 기존 제도를 유지했을 때와 예상 퇴직급여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내기보다 은퇴 시점까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수준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정 산업이나 자산에 집중하기보다 투자 기간과 성향에 맞춰 분산투자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정기적으로 자산 비중을 조정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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