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버려야 산다"…철강·석화 CEO들이 꺼낸 마지막 승부수
- [벼랑 끝 K중후장대]②
저수익 사업·설비 과감히 정리…‘몸집 줄이기’ 본격화
자동차강판·첨단소재로 자본 이동…고부가 체질전환 승부수
포스코그룹은 장인화 회장 주도로 100개가 넘는 사업·자산을 구조개편 대상으로 올렸다. 롯데케미칼은 이영준 화학군 총괄대표 체제에서 대산 석유화학 사업을 HD현대와 통합하고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 중단에 들어간다. 현대제철은 서강현 전 대표 시절 결정한 미국 전기로 제철소 투자를 이보룡 신임 대표가 이어받아 실행하고 있다. 올해 LG화학 지휘봉을 잡은 김동춘 사장은 ‘선택과 집중’을 내걸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 있다.
말이 아닌 실행으로…사업 구조조정 본격화
가장 먼저 대대적인 ‘덜어내기’에 나선 것은 포스코그룹이다. 2024년 취임한 장 회장은 그룹 차원에서 저수익·비핵심 사업과 자산을 구조개편 대상으로 올렸다. 철강 본원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소재 등 성장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포스코그룹은 202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85건의 구조개편을 완료해 2조2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구조개편 목표도 당초 2027년까지 128건·2조8000억원에서 2028년까지 129건·3조5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사업을 계속 끌고 갈 것인지보다 경쟁력이 있는지를 먼저 따지는 방식으로 경영의 우선순위를 바꾼 셈이다.
그룹 차원의 구조개편과 별개로 철강 본업의 실행은 이희근 포스코 사장이 맡고 있다. 저수익 사업을 재편하는 동시에 고부가 제품과 성장시장 중심으로 철강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이 사장의 과제다.
석유화학에서는 구조조정의 칼날이 공장으로 향했다. 이영준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대표가 이끄는 롯데케미칼은 지난 6월 대산 사업을 물적분할한 뒤 HD현대케미칼과 통합했다. 통합법인 H&L어드밴스드는 지난 9월 공식 출범했다.
H&L어드밴스드는 정부가 승인한 사업재편 계획에 따라 향후 3년간 기존 롯데케미칼 대산 NCC 110만t의 가동을 중단하고 수익성이 낮은 범용 설비 가동도 줄인다. 공동 대주주인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는 통합법인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하고 총 1조2000억원의 추가 출자를 추진한다.
여수에서도 사업재편이 진행 중이다. 여천NCC가 여수 2·3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1공장을 롯데케미칼과 통합하는 방안이 정부 승인을 받아 추진되고 있다.
생산량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감산을 넘어 공장을 닫고 경쟁사끼리 설비를 합치는 단계까지 들어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철강·석화업계에서는 업황이 회복될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범용 제품의 공급 과잉이 장기화하면서 더 이상 이런 대응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경쟁력 있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적극적인 사업재편에 나설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줄인 자리 어디로…미국·자동차강판·첨단소재로
버리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그다음이다.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자본과 인력을 어디에 다시 배치하느냐에 따라 체질 개선의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철강·석화 기업들은 중국과 가격으로 맞붙어야 하는 범용 제품 대신 기술 장벽과 수익성이 높은 제품,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제철의 미국행은 서강현 전 대표 재임 당시 본격화됐다. 서 전 대표 체제에서 현대제철은 국내 건설경기 침체와 중국산 저가 철강재 공세에 대응해 미국 현지 생산과 고부가 제품 확대에 승부수를 던졌다.
현재 바통은 이보룡 대표가 넘겨받았다. 지난해 말 현대제철 대표에 선임된 이 사장은 올해부터 회사를 이끌며 미국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 건설을 비롯한 사업재편을 실행하고 있다. 생산기술과 연구개발(R&D), 판재사업 등을 두루 거친 ‘철강통’이라는 점에서도 전임 대표와 역할이 구분된다.
석유화학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나타난다. 롯데케미칼은 대산에서 범용 제품 생산능력을 줄이는 동시에 첨단소재·정밀화학 등 고부가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옮기고 있다. H&L어드밴스드 역시 정유·석유화학 간 수직계열화를 통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 스페셜티 소재와 친환경 제품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CEO로 선임돼 올해 3월 대표이사에 오른 김동춘 LG화학 사장도 ‘선택과 집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도체소재와 전자소재, 첨단소재 사업을 두루 거친 김 사장은 모든 사업을 끌고 가기보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서고 있다.
범용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구조를 고부가 제품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첨단소재와 생명과학 등 성장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과제다. 포스코그룹 역시 구조개편으로 확보한 현금을 철강 본원 경쟁력과 미래 성장사업 강화에 다시 투입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가격으로 경쟁해야 하는 사업은 줄이고 기술과 시장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사업에 자본을 다시 배치하는 것이 리더들의 전략”이라며 “무엇을 버렸는지가 아니라 버린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었는지가 향후 2~3년 철강·석화 수장들의 경영 성적표를 가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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