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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k - 유동성 장세는 럭비공···어디로 튈지 몰라

Stock - 유동성 장세는 럭비공···어디로 튈지 몰라

선진국 ‘유동성 파티’ 덕에 국내 증시 버텨 … 박스권 뚫긴 역부족



유럽 경제가 6분기째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독일을 비롯한 주요국 주가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경제와 주가 관계의 오랜 경험과 다른 모습이다.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도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구리는 경제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하는 금속이다. 산업 수요가 많기 때문에 경제가 좋아지면 가격이 오르고, 경기가 나빠지면 가격이 떨어진다. 올 초까지 둘은 전통적인 모습대로 움직였다. 2월 들면서 관계가 엉키기 시작했다. 구리 가격이 10% 하락하는 동안 미국 S&P500 지수는 11% 상승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주식시장을 가지고 있다. 시가 총액 규모가 전 세계 시장의 12%에 달한다. 이런 시장이 지난 6개월 사이에 80% 가까이 상승했다. 아베노믹스 때문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경기 따로 주가 따로 놀아일본 경제가 가장 오랜 기간 회복 국면을 누린 건 언제일까? 제 2차 세계대전 후 최호황기로 알려진 1960년 중반 이자나기 경기때일까? 아니면 버블이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일까? 다 아니다. 일본의 최장기 경기 회복은 2002년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70개월 간이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경제가 최악의 상황인 걸 감안하면 의외다. 대부분 20년 간 일본 경제가 짧은 회복, 긴 침체를 면치 못했을 거라 생각한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2.4%였다. 주가는 5년 반 동안 80% 정도 올랐다.

이렇게 경제의 장기 회복 국면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건 일본 경제가 저성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다. 과거 1970~80년대만 해도 경제의 탄력성이 커서 한번 회복이 시작되면 성장률이 7~8%까지 올라가는 게 보통이었다. 당연히 주가 상승률도 컸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인구 고령화에서부터 기업의 성장동력 약화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에 시달린다. 그래서 경기 부양책이 나오면 일본 경제가 잠깐 회복된 다음 다시 약해지는 과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아베노믹스도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플레이션 목표를 정하고 이에 맞춰 유동성을 공급하는 진일보된 면이 있지만, 그동안 무수히 시행한 정책과 어떤 근본적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에 비해 주가는 많이 올랐다. 6개월 사이에 일본 주식시장이 2002년 이후 경기 회복 기간에 필적할 만큼 올랐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확신이 주가를 움직이는 힘이겠지만, 그걸로 모든 걸 치부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일본과 유럽의 주가 상승, 그리고 경제와 주가 사이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왜 발생한 걸까? 유동성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 공급된 유동성이 본격적인 역할을 한 거다. 이런 기반이 있기 때문에 경제가 좋지 않아도 주가가 오를 수 있고, 만만한 투자 대상에 쏠림 현상도 나타난 것이다.

유동성 때문에 주가와 경제 관계가 뒤죽박죽이 된 경우는 수없이 많다. 국내 시장의 두 가지 예를 보자. 우선 1989년인데 1985년 3저 호황으로 시작된 주가 상승이 1988년 초 힘을 잃는다. 경기가 둔화되는 등 상승을 이끄는 힘이 약해진 때문이다. 당시 종합주가지수는 1988년 2월부터 10월까지 600포인트를 벗어나지 못했다. 상황은 11월 바뀌었다. 금리자유화를 위해 유동성을 풀면서 돈의 힘에 의해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로 빠르게 상승했다. 유동성에 의한 상승은 이후 장기 하락의 원인이 됐다. 유동성 장세가 끝난 후 주식시장은 3년간 약세를 면치 못했다.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돈이 경제 전체에 넘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식형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면서 유동성 장세가 본격화됐다. 2007년 2월에서 7월까지 5개월 동안 펀드로 40조원 넘게 유입되면서 주가가 42% 상승했다. 시장을 주도한 조선·기계 같은 중국 관련주는 주가수익비율(PER)이 40배가 될 때까지 상승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가 본격화하고, 국내외 경기가 둔화되기 시작했지만 돈의 힘이 펀더멘털보다 강했다.

당분간 유동성 장세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황이 끝나려면 금융완화 정책이 수정되든지, 고주가로 심리적 부담이 생겨야 한다. 하반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양적 완화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정책 강도는 양적 완화 철회로 인한 악영향을 희석시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직 정책을 변경하기엔 부담 요인이 많이 남아있다.



한국 증시, 주가 스스로 만들어 갈 힘 상실주가도 그렇다. 현재가 부담되는 수준인 건 분명하지만, 방향이 바뀔 정도가 아니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유동성 장세 때 주가는 고평가 부담이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상승한 후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 주식시장이 하루 7% 가까이 떨어지는 격렬한 등락이 있었지만 아직 1차 조정 정도로 봐야 한다. 일본 주가 하락에 따른 반응이 일본에 국한돼 아직 선진국 시장의 상승 탄력이 훼손되지 않은 때문이다.

유동성 장세를 판단하는 건 정말 어렵다. 실적 장세 같으면 예상 실적으로 주가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유동성 장세는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그리고 어떤 조건이 되면 방향이 바뀔지 가늠하기 힘들다. 돈의 힘이 주가를 움직이는 핵심 요인이므로 펀더멘털과 따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추가 상승 가능성에도 안심하고 주식을 살 수 없는 이유다.

현재 국내 시장은 스스로 주가를 만들어갈 힘이 없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1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 때문이다. 선진국과 주가 차별화가 심해져 이를 줄이기 위한 매매가 그나마 시장을 끌고 가는 힘이 될 정도다. 선진국 유동성 장세가 우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 역시 그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다.

선진국 시장이 유동성으로 움직이는 동안 우리 시장도 양호한 흐름을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박스권을 뚫고 올라갈 정도는 못 된다. 우리 시장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이 저평가됐다는 근거로 자주 PER을 든다. 현재 9배 수준이어서 선진국과 비교는 물론 과거 우리 시장 평균에 비해서도 낮다는 것이다.

1분기 실적 발표를 계기로 이런 분석이 힘을 잃었다. 올해 이익 증가율이 25%에 달할 거란 전망을 가지고 PER을 산정했지만 현실은 20% 넘게 이익이 줄었다. 유동성 장세에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주가가 어느 날 갑자기 변하기 때문이다. 평정심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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