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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전쟁에서 코드 전쟁으로

핵 전쟁에서 코드 전쟁으로

고도로 개인화되고 정밀 표적화되는 시대를 맞아 북핵에 대응하려면 스마트 무기가 최고일 수도
소프트웨어 무기가 전력과 수도, 식량, 통신 같은 기본적인 시스템을 와해한다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부를 수 있다. / 사진 : GETTY IMAGES BANK
역사를 긴 안목으로 본다면 북한이 올해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갖게 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말을 타고 화승총을 쏘며 등장한 군인에 견줄 정도로 시대에 뒤진 일일지 모른다.

한마디로 핵미사일은 너무도 20세기다운 구식 무기다. 요즘은 그때와 달리 전쟁이 많이 달라졌다. 사이버 무기, 인공지능(AI), 로봇이 이끄는 변화 덕분이다. 외과수술로 환부만 도려내듯이 정확한 지점을 와해시켜 인류 절멸의 위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 무기에 비하면 대량살상무기(WMD)는 못 봐줄 정도로 ‘멍청’할 따름이다.

만약 미국이 좀 더 혁신적으로 사고하고 멀리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북한 같은 불량 정권이 핵무기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 놓고 다시 김정은을 조롱할 수 있으리라. 작은 털북숭이를 머리에 얹은 고스트 버스터즈 찐빵귀신처럼 생겼다고 말이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 법학 교수인 존 유(한국명: 유준, 2001~2003년 미국 법무부에서 테러리스트를 대상으로 아주 예외적인 경우 약한 정도의 고문 같은 물리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조지 W. 부시 정부에 제공했다는 논란으로 잘 알려졌다)와 조지메이슨대학의 제러미 래브킨 교수가 공동으로 펴낸 신저 ‘사이버·로봇·우주 무기가 전쟁의 규칙을 바꾼다(Striking Power: How Cyber, Robots, and Space Weapons Change the Rules of War)’의 요지가 바로 그렇다.

저자들은 책에서 전쟁과 핵무기를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의 중대한 변화와 연결시킨다. 지금 우리는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중매체(mass media), 대중시장(mass markets)의 시대를 벗어나 상품과 미디어, 시장 등 모든 것이 고도로 개인화되고 정밀 표적화되는 시대로 진입하는 중이다. 나도 내년 3월 출간할 책을 쓰기 위해 그와 관련된 폭넓은 변화를 조사해왔는데 신기술에 의한 변화가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그들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세기 경제학의 초점은 ‘대중·대량(mass)’이었다. 경제적으로 성공하려면 우리는 공장에서 대중을 겨냥해 똑같은 상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야 했다. TV 방송사는 각계각층의 시청자 모두가 공통으로 관심을 갖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려고 노력했다. 그 같은 환경에선 무엇이든 크고 많을수록 유리했다. 유 교수는 “규모의 경제학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제조 원가가 낮고 무차별적 파괴를 초래하는 똑같은 무기를 대량생산해 모든 병력이 전부 그것으로 무장한 거대한 군대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사상 최초의 대중시장 전쟁이었다. 끔찍한 피해가 그런 사실을 입증한다. 당시 연합국의 피해는 사망 500만 명, 부상 1280만 명이었다. 그에 맞선 동맹국의 피해는 사망 850만 명, 부상 2100만 명이었다. 유와 라브킨 교수는 책에서 ‘효율성을 지상 목표로 삼은 우리는 소비자 상품의 대량생산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고 썼다. ‘효율성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으로까지 확장됐다.’ 핵무기가 그런 규모의 경제학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웠다. 최종 목표는 도시 전체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무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효율적인 ‘대중시장 살상기계’는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사고방식이 구식 취급을 받는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아마존이 AI를 사용해 소비자의 행동과 습관을 학습하고 맞춤형으로 개인을 상대로 직접 마케팅하는 방식을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는 대중시장의 일원이 아니라 ‘일인 시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개인 맞춤형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우리는 대중을 위해 대량생산된 상품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한 특별한 상품을 찾게 될 것이다.

군에선 이런 초정밀 표적화를 목표로 드론을 사용한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자행한 것처럼 한 마을을 완전히 파괴하기보다 로봇 무인기를 만들어 표적화된 개인을 색출해 제거할 수 있다. 유와 래브킨 교수가 지적하듯이 오바마 정부는 2010년 ‘스턱스넷(Stuxnet, 기간시설 파괴 목적으로 제작된 컴퓨터 바이러스)’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마비시켰다. 다른 피해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유 교수는 “사이버 무기를 사용하면 이처럼 정밀한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게다가 시설을 파괴하지도 사람 목숨을 앗아가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를 통해 러시아는 미국인에게 새로운 세기의 ‘전쟁’에 관한 교훈을 가르쳤다. 그것을 과연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지난 미국 대선의 러시아 개입 의혹을 조사한 서방의 여러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정밀 표적화된 영향력 행사(최근 페이스북이 폭로한 가짜 광고 같은 수단을 동원한 작전)와 제한된 해킹으로 사실상 총 한 방 쏘지 않고 미국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고 결론지었다. 러시아는 거의 70년 동안 미국에 핵 미사일을 겨눠왔지만 정작 미국에 가장 와해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무기가 아니라 컴퓨터 코드였다는 얘기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는 총 한방 쏘지 않고 해커만 동원해 미국의 정권교체를 이뤄냈을 수도 있다. / 사진 : GETTY IMAGES BANK
이 모든 사안은 북한을 효과적으로 다룰 방식을 알려 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주 고풍스럽게 위협한 “세계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트럼프 대통령의 이 언급은 노아의 홍수 때 하느님처럼 40일 밤낮으로 비가 내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별 차이 없는 터무니없는 막말이었다).

유 교수는 ‘화염과 분노’ 대신 북한 미사일이 오작동하도록 만든다거나(이미 그랬을지 모르지만 쉿!), 북한군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삭제한다거나, 북한의 은행계좌를 지워버린다거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한물간 미국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에게 보내는 짝사랑 이메일을 가로채 공개하는 것 같은 일이 가능한 사이버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미국은 거의 탐지되지 않는 초소형 AI 드론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드론들은 벌떼처럼 협동 작전을 펼쳐 표적이 되는 주요 자산이나 인물을 제거할 수 있다. 장기적으론 AI로 무장한 위성 기반의 미사일 방어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다고 유 교수는 말했다. 위성으로 다른 나라의 내부를 정탐해 임박한 미사일 발사 조짐을 파악한 뒤 즉시 레이저로 그것을 파괴할 수 있는 기술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로봇과 소프트웨어 무기가 우리 세계에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무기도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며, 특히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전력과 수도, 식량, 통신 같은 시스템을 와해한다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로봇과 사이버 무기의 경우에도 핵무기 시대의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같은 억지력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한쪽이 공격하면 거의 동시에 상대방이 같은 식의 보복 공격을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함으로써 쌍방의 섣부른 사이버 공격을 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종 코드 전쟁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른다. 적어도 정신 나간 말썽꾼이 베벌리 힐스에 핵 미사일을 쏘지 않을까 걱정하기보다는 덜 두려울 것이다.

만약 미국이 스마트하게 움직인다면 전쟁의 핵 시대에서 벗어나 전쟁의 AI 시대로 진입함으로써 김정은의 핵 야망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기술을 잘 알고, 혁신적이며,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미국 대통령의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가망 없는 일이 아닐까?

유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도록 허용하느냐 아니면 재래식 전쟁을 벌이느냐 사이의 비극적인 선택을 강요 받기보다는 신기술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은 옵션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북한 정권이나 핵무기를 가지려는 다른 지도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좋다. 공들여 개발해서 그 쓸모없는 무기를 한번 만들어보라. 하지만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가? 이젠 석궁을 개발할텐가?’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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