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을 위해선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사자처럼 산토끼와 사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만 할 때 어떤 것이 이득이 되는지 따져보고 골라야 한다. 사자는 이미 늙어 힘이 예전만 못하다. 자신의 능력으론 사슴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런 다음 행동했더라면 최소한 잠자는 토끼 정도는 쉽게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 중 하나가 기회비용이다.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다른 것의 가치라는 뜻이다. 사자에게 사슴의 기회비용은 산토끼다. 산토끼와 사슴 가운데 먹잇감으로선 당연히 사슴이 앞선다. 그래서 사슴을 쫓아갔지만 잡아 놓은 산토끼를 잃어버렸을 경우의 기회비용은 전혀 따져보지 않았다. 사자는 사슴을 놓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회비용까지 부담해 이중의 손해를 본 셈이다.
기회비용은 의사결정이나 어떤 선택을 하는 동기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원리다. 자신의 선택으로 얻은 이익이 기회비용보다 크다면 잘한 행동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잘못된 것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잘못된 선택으로 기회비용이 생기는 예는 무수히 많다. 대표적인 것이 원금보장 상품이다. 원금보장.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해진다. 언제 돌발사태가 터질지 알 수 없는 투자에서 원금보장은 매력적이다. 시장이 불안할 때라든가 바닥을 헤맬 때 원금보장 상품은 ‘인기주’로 떠오른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숨어 있다. 원금보장 상품은 재테크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원금보장을 좋아하다간 노후자금을 모으지 못해 기회비용을 톡톡히 치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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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기회비용 치르는 원금보장 상품
퇴직금을 비롯한 은퇴자금은 까먹어선 안 되는 돈이다.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이와 달리 목돈 형성 등 증식이 목적인 일반 자금은 그와 달리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굴려야 한다. 자금 운용에서 안전제일주의를 따르는 사람에게 원금보장은 든든한 약속으로 들린다. 위험이 큰 불확실성의 시대에 원금을 보장해준다니 이렇게 고마운 투자상품이 또 있을까.
실제로 퇴직연금은 대부분이 원금보장형이다. 퇴직금만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원금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굳건히 깔려 있다. 100조원 넘게 쌓인 퇴직연금 중에서 원금보장형이 93%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식·채권에 투자한 실적배당형은 7%에 불과하다. 두말할 필요없이 수익률은 쥐꼬리 수준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평균 1.88%로 나타났다. 은행예금보다 못한 퇴직연금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상황이다.
수익률도 수익률이지만 원금보장형 퇴직연금은 다른 데 투자하면 낼 수 있는 수익, 즉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특히 보험 같은 장기 상품은 원금보장이 무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연금보험의 원금보장은 아무 때나 원금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연금수령할 경우에만 해당한다. 만약 일반 금융상품을 수익률 연 3%로 월 100만원씩 20년 붓고 5년 거치 후 연금을 탄다고 할 때 적립금은 3억8000만원에 누적 수익률은 58%에 달한다. 연 2%만 해도 적립금은 3억4000만원, 누적 수익률 41%이다. 여기서 20년 간 납입 후 5년 거치 후 이자 없이 원금만 탄다고 할 때 원금보장 2억4000만원에 대한 기회비용은 수익률 3%의 경우 1억4000만원, 2%는 1억원이다. 더구나 이 사례는 물가를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엄청난 실질적 손해를 입는 결과가 된다.
단기 상품이 원금보장을 한다면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그래도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원금보장형 마케팅이 먹혀드는 건 투자자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다. 개인은 주가의 바닥 국면에서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엔 위험은 과소평가된다. 그래서 원금보장형은 증시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많이 팔린다. 지난 2008년 하반기 미국의 금융위기 때 그랬고, 2011년 10월 유럽의 재정위기 때도 그랬다. 당시 이 상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원금은 지켰을지는 모르지만 돈 버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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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바닥 국면에서 원금보장이 인기
원금보장형은 오히려 주가가 정점을 칠 때 투자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증시가 좋을 때 원금보장형 상품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주가의 바닥 국면에선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힌 투자자를 상대로 원금보장 장사를 할 수 있다. 결국 원금보장형 투자자는 수익을 포기한 대가로 많은 기회비용을 물어가며 불필요한 보장을 받는 셈이 된다. 경제엔 공짜가 없듯이 투자의 세계에서도 저절로 주어지는 원금보장이란 없다.
목돈으로 좀 큰 돈을 단기적으로 투자할 때 원금보장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적립식으로 다달이 얼마씩 부어나갈 때엔 어느 정도는 위험을 안아야 한다.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이라고 한다. 그 대신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 시간은 수익과 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전문가들은 연금의 경우 연간 수익률은 최소 4~5% 수준이 돼야 수익성이 개선되고 은퇴후소득 대체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기준 40%이지만 퇴직연금은 12%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의 권장 소득대체율은 70%이니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원금보장에 목을 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액이 평균소득과 비례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비율이다. 원금보장을 고집하다간 나중에 생활비가 모자라 ‘은퇴 쇼크’를 겪을 수 있다. 무조건적인 안전자산 선호가 결국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실적배당 투자상품 비중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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