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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많은 도시정비법, 산으로 가는 재건축·재개발사업

[정비사업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②]
제정 20년, 수차례 개정에도 조합 비위행위 여전
제왕적 조합장과 거수기 이사회…처벌보다 견제 장치필요

 
 
낡은 다가구·다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역 주변 전경. [연합뉴스]
 
재개발·재건축 같은 도시정비사업의 주인은 통상 해당 구역에 토지 등을 보유한 조합원들이다. 조합원은 투표를 통해 조합장 등 임원 선출 및 해임, 사업승인 신청, 시공사 선정 등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다. 이 모든 권한은 2002년 말 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명시돼있다.  
 
그러나 조합원 대부분이 바쁘게 생업에 종사하는 동안 중대한 사업의 결정 권한 대부분은 이사회에 집중된다. 조합 예산과 협력사를 선정할 때마다 매번 총회를 열어 투표를 하기에는 시간적, 금전적 소비가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조합장·이사·감사 등 조합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다, 일반적으로 서로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도정법이 수차례 개정되며 비리 임원에 대한 처벌강도와 자격요건은 강화됐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더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핵심 결정은 이사회에서…업체선정 마음대로

철거업체 비용 부풀리기 문제로 수년간 조합장 비리 수사가 진행된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 4구역 모습. [중앙포토]
 
조합 이사회는 조합장과 이사로 구성되며, 감사는 이사회에 참석해 의견을 낼 수 있고 이사회 요청에 따라 조합 업무에 대해 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 도정법 제41조 및 도정법 시행령 제40조 등에 따라 각 조합은 조합장 1명과 감사 1~3명을 총회에서 선출한다. 토지등 소유자 수가 100명이 넘는 조합은 이사 5명 이상을 뽑게 된다.  
 
통상 이렇게 구성된 이사회 의결로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은 예산을 비롯한 조합의 통상적인 업무를 집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업 추진과정에서 설계사 등 협력업체를 선정하고 관련 비용을 집행하는 등 중요한 이권이 걸린 결정을 사실상 이사회가 맡게 된다.  
 
정비사업 관계자들은 이 같은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업체와 조합장, 또는 임원 집단 간 ‘짬짜미’가 발생하기 쉽다고 입을 모은다. 경쟁입찰 시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해당 업체에 유리한 기준을 내세우는 식으로 사실상 지명하거나 ‘계약 쪼개기’를 통해 한 업체가 할 수 있는 업무를 여러 업체에 나눠주기도 한다. 이렇게 뽑힌 업체나 조합 임원으로부터 자의적으로 자금을 차입하기도 한다.  
 
도정법 제45조에 따르면 이 같은 자금 차입 및 업체 선정건은 모두 조합원 총회 의결을 통해 결정해야 하는 사항이다. 도정법 제137조는 이를 어길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서면동의서 위조, 조합임원 선임 대가로 금품 및 향응을 제공받는 행위 등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도정법 제135조)에 처하는 등 도정법은 다양한 위반 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전문성·책임감 낮은 구성원, 비위행위 ‘브레이크’ 못돼

제21대 국회에서 처리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일부 [의안정보시스템]
 
문제는 평범한 조합원이 이 같은 위반 행위를 알아내고 법적 조치를 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조합은 정비사업 시행에 관한 서류 및 관련 자료를 15일 내에 온·오프라인으로 공개해야 하지만 조합원 개인이 이를 모두 살펴보고 위법 행위를 가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관련 자료’의 기준 또한 모호해 최근까지 한 서울 주택재건축 조합에서 법정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사회 의결을 통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며 정보 접근성이 높은 조합 임원이 견제 역할을 하는 방안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사 및 감사가 조합장의 비위행위에 동조하거나 ‘거수기’가 되어 무조건 찬성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 역시 도정법상 임원이 될 수 있는 요건이 지식이나 전문성보다 원주민 보호에 초점을 둔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정법 제41조에선 “정비구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자로서 선임일 직전 3년 동안 정비구역 내 거주 기간이 1년 이상일 것”, “정비구역에 위치한 건축물 또는 토지를 5년 이상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며 임원 선임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등 결격 사유 외에 다른 요건은 명시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는 정비사업 교육을 위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강제성이 없는 지원사업일 뿐이다. 서울시는 조합임원과 전문조합관리인, 공무원은 물론 일반 시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서울시 정비사업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이사나 감사에게 정기적인 수당은 없고 참석비 정도 지급되다 보니 전문지식이 있는 조합원은 임원 자리를 기피하고 조합장과 친분이 있거나 동네에 오래 거주한 노인들이 용돈벌이 식으로 이사회를 채우는 경우가 다수”라면서 “조합 이사직은 제대로 하려면 시간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자리인 만큼 법적으로 선임 기준을 높이고 정기적인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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