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교수,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도전장 내밀다
[김홍일의 혁신우혁신⑮] 김진우 하이 대표
치매‧우울증‧불안장애 관리, 예방하는 디지털치료제
정신질환도 데이터 활용한 SW 통해 게임하듯 치료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이코노미스트]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열다섯 번째로 만난 창업자는 하이의 김진우 대표였다.[편집자]
스타트업 하이는 요즘 뜬다는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다. 디지털치료제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하고 관리, 치료하는 신묘한(?) 기술이다. 먹기 힘든 쓴 약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고, 수술의 공포감을 느끼지 않고도 질환을 낫게 하니 환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치료제다. 1세대 치료제인 합성 신약, 2세대 바이오 의약품에 이어 3세대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다.
다만 국내에선 허가된 디지털치료제는 아직 ‘0(제로)’, 상용화가 급히 풀어야 할 난제다. 하이는 범불안(정서)장애, 인지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마비말장애(신경언어장애) 등 4개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이 2개 더 있다. 이중 범불안장애 디지털치료제인 앵자이렉스는 임상 3상을 마치고 확증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올해 안에 임상 시험을 거쳐, 내년엔 식약처에 엥자이렉스의 품목허가를 신청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이의 가치와 성장성은 시장이 증명하고 있다. 2020년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현재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대구 교육청과 협업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했고, KMI한국의학연구소 전국 7개 건강검진센터에 정신건강검사 서비스 ‘마음검진’을 제공하게 된 것도 하이가 거둔 실적이다. [이코노미스트]가 복합 창업 생태계 허브인 디캠프 프론트원에서 김진우 하이 대표를 만났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대표) : 하이는 정확히 어떤 회사인가요.
김홍일 대표 : 디지털치료제를 낯설어하는 독자도 많습니다.
김홍일 대표 : 정말 쉽네요. 다른 치료제는 어떤가요.
김홍일 대표 : 역시 간단한 방법이군요.
김진우 대표는 코로나19 시대와 맞물려 디지털치료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불안, 우울, 불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국민이 늘고 있어서다. 실제로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1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 이상은 외로움을 느꼈다. 대면 활동이 줄면서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인 사회적 고립도는 34.1%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정신적인 상처는 우울증 같은 질환으로 번진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불리듯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인데도 한국 사회에선 의사 등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린다. 우울한 감정이 정신이 유약한 것이라는 편견 때문일 수도 있고, 감기처럼 한번 왔다가 자기가 극복하면 쉽게 낫는 병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사회적 편견이나 불이익을 우려해 치료를 고려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간 병을 더욱 악화하기 마련이다. 하이가 개발 중인 치료제처럼 누구나 접근하기가 쉽다면 이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김홍일 대표 : 약물이나 수술 대신 모바일 앱이나 웨어러블, 가상현실(VR)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질병을 치료한다. 말로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정말 효과가 있는지를 두고 고개를 갸웃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홍일 대표 : 왜 이런 낯선 방식을 택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홍일 대표 : 마치 의사나 개발자의 꿈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김진우 대표는 다른 명함을 갖고 있잖아요. 대학교 교수, 그것도 경영학 전공입니다. 학자로서도 상당한 업적을 이룬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험난한 사업가의 길에 뛰어들었습니까. 계기가 궁금합니다.
디지털치료제, 의사-환자 연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이런 점에서 김진우 대표의 교수 명함은 눈에 띈다. 김진우 대표는 1994년부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선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분야를 이끈 선구자로도 유명하다. HCI는 사람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최종 목표는 컴퓨터 시스템을 쓰는 데 있어서 최적의 사용자경험(UX)을 만들어내는 거다. 김 대표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에 UX 관련 기술을 자문하기도 했다.
김홍일 대표 : 교수 창업은 본인이 꾸린 연구팀의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영학 교수가 바이오 기업을 창업했다는 점에서 유별난 케이스인데요.
김진우 대표 : 당연히 팀 멤버 중엔 바이오 관련 전문가가 있죠. 창업가의 특기가 UX라는 점이 의아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사실 디지털치료제에 UX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예요.
김홍일 대표 : 치료제면 의학적인 요소를 더 강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홍일 대표 : 하이의 디지털치료제가 기관과 협약을 맺고 현장에서 쓰이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고객의 실제 반응도 좋았나요.
김홍일 대표 : 새미톡의 경험이 정말 유용했나 봅니다. 매일 아침 30분씩 실행할 만큼요.
치매, ADHD도 디지털로 고친다
김홍일 대표 : 이쯤 되니 디지털치료제가 허가받고 시장에 나와서 범용적으로 쓰이는 세상은 어떨지 참 궁금합니다.
김홍일 대표 : 디지털치료제가 중대재해처벌법과도 연관이 있나요.
김홍일 대표 : 이제 기업 경영진이 직원의 정신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됐군요.
김홍일 대표 : 하이의 행보가 더 바빠지겠군요. 교수와 대표를 함께 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김홍일 대표 : 김진우 연세대 교수는 UX 전문가로 성공했는데, 사업가로선 어떻습니까. 하이의 김진우 대표는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김홍일 대표 : 코로나19에 따른 무력감과 상실감이 깊은 생채기로 남아있는 국민이 많습니다. 하이의 가치 있는 디지털치료제가 빨리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기자가 본 김진우 대표
김 대표가 마음의 병이 얼마나 쉽게 오고, 또 얼마나 무서운지를 설명할 땐 왜 하이가 만들어졌는지 이해했다.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이가 많지 않은데, 접근성과 편리성이 강점인 디지털치료제를 통해 어떻게든 고치고 싶었던 거다.
현장엔 디지털치료제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도 김 대표는 이 생소한 개념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우리 감기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요. 병원에 가서 약을 타거나 주사를 맞죠. 디지털치료제도 똑같아요. 아파서 병원에 가고, 의사가 진단하고, 소프트웨어를 처방하는 거죠.”
물론 디지털치료제 시장이 실제로 무르익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원격의료 이슈도 해결하지 못했고, 건강보험 수가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다. 그래도 김 대표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장애물은 있겠지만, 디지털치료제 도입은 거대한 물결이라고 봅니다. 하이도 이 흐름에 기여하겠죠. 하이는 디지털치료제가 만든 새로운 안녕입니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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